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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다시 6월, 지금 익어가는 것들

by 낮달2018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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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의 노랗고 빨간 빛깔도 좋다. 사진을 찍어놓고 바라보는 살구나무는 더 좋다.

무릇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물리적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한다. 그 변화는 성장이기도 하고 쇠퇴이기도 하다. 아직 어린 녀석은 자랄 것이고, 다 자란 놈은 조금씩 노쇠해 갈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더는 성장하지 않는 것은 인간뿐이다.

생명 다할 때까지 재생산하는 식물

그러나 식물은,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재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수백 살 먹은 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유다. 기후 변화가 시간을 헛갈리게 하기도 하지만, 풀과 나무는 때맞추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번식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6월 들면서 결실이 이른 살구가 익기 시작했다. 인근 가마골까지 걸어가면서 어저께는 봄에 살구꽃을 소담스레 피우던 나무에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는 걸 확인했다. 며칠 뒤에 사진기를 들고 가 살구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봄에 심은 작물 중에서 감자가 수확이 제일 빠르다. 아마 중순에 캐도 될 터인데, 아내는 월말까지 기다리잔다. 감자가 흙 속에서 굵어지는 마지막 시간을 기다려 주자는 것. 그런데, 열매 중 살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내가 살구를 좋아하니까, 의성과 경산의 벗이 각자 자신이 기른 살구가 익을 때 한번 오라고 청해주었다.

살구를 좋아하는 건 그 맛 때문이기도 하고, 조금만 힘을 주어 쪼개면 씨가 발라져 나오는 깔끔한 과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살구는 복숭아나 자두와 같은 과실과 달리 짧은 시간에 유통되고 마는 듯하다. 그래서 살구가 나온다 싶으면 이내 잼을 만드는 생과가 쏟아져 나오는가 싶다.

내가 운동 삼아 걷기를 시작한 지는 5년도 넘은지라 길 주변의 풍경도 훤하다. 어디쯤 무슨 꽃이 피고, 어디에 무슨 열매가 열리는가를 안다는 말이다. 봄에 우리 동네와 그 길 주변의 ‘꽃 지도’를 그릴 수 있듯이 결실기에는 ‘열매 지도’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을 만큼이다.

사진기를 들고, 길 주변을 찍으며 보낸 몇 년의 풍경은 거의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변화가 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나무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못 보던 나무가 다시 눈에 띌 때도 있는 것이다. 살구가 그렇고, 포도와 자두가 그러하다.

한 몇 해 동안 소담스러운 꽃을 보여주던 교회 앞 살구나무는 베어졌고, 대신 가마골 어귀의 농가에 선, 오래 묵은 살구나무를 올해에 다시 만났다. 살구는 꽃도 그렇고, 열매도 그렇고 볼수록 사랑스럽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무도 보기 좋다. 특히 살구 사진을 여러 장을 소개하는 이유다.

▲ 휘영청 늘어진 가지에 달린 살구. 저멀리 보이는 산과 주변 풍경이 아웃포커스 효과로 흐릿하다.
▲ 마치 일지매 형식의 살구 가지. 이 나무도 꽤 오래 묵은 고목으로 봄에는 살구꽃이 아주 좋았다.
▲ 가마골로 가는 어귀에 있는 농가의 살구나무. 살구나무 아래로 드럼통과 하우스 등에 쓰이는 방한 솜이불이 놓여 있다.

우리 동네에서 찍은 앵두는 다 익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석류는 병충해를 입어 열매 표면에 벌레가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부득이 가마골 근처 농원의 대문간에 벋어 있는 석류를 찍었다. 석류는 아직 꽃이 많고, 꽃에서 열매로 옮아가는 중이다.

어쩌다 한 번씩 찾는 산에서 찍은 맹감(청미래덩굴 열매, 경상도에서 ‘망개’)은 이제 겨우 열매를 맺고 살을 찌우는 중이다. 살구나무 옆의 과수원에선 복숭아가 익고 있다. 묵은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 심은 나무인 듯한데 글쎄, 좀 어설프다.

▲ 우리 동네 단독주택 울타리 너머에 핀 앵두. 그 빛깔이 '앵두 같은 입술'과도 닮았다.
▲ 내가 한번씩 찾곤 하는 낮은 산의 맹감. 이제 겨우 굵어지려 하는 열매. 그 아래 빨간 열매는 지난해 열매다.
▲ 가마골의 한 농원 대문간에 벋은 석류. 대부분 꽃인데, 서둘러 맺어가고 있는 열매를 찍었다.
▲ 석류나무 있는 농원 소유인 듯한 과수원의 복숭아. 몇 개가 익어가고 있다.

조금 더 가서 가마골로 드는 어귀에 자두밭이 있다. 적과(摘果)를 안 했는지 가지마다 다닥다닥 자두가 달려 있어 아내와 함께, 아주 내놓은 밭인가 싶어 머리를 갸웃하기도 했다. 슬슬 익을 때도 됐는데, 이 밭의 자두는 아직도 짙푸르다. 어제는 과원과 붙은 밭에서 김을 매는 할머니가 있어 여쭈어보니, 여든 넘은 노인이 돌보는 밭이란다. 적과 하긴 했는데, 제대로 못 했는 갑다, 하고 할머니는 웃었다.

포도와 감, 호두는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들판 길옆의, 포도 두세 그루와 경상도에서 ‘추자(楸子)’라 부르는 호두 대여섯 그루, 감도 서너 그루를 심은 조그만 과수원에서 찍은 것이다. 청포도로 보이는데 저건 언제쯤 익을까 생각하면서 스쳐 지나가곤 한다.

▲ 가마골 어귀의 과수원. 제대로 적과를 하지 않은 듯한 자두밭의 자두. 아직 짙푸른 빛이다.
▲ 가마골 들판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과수원의 포도.
▲ 위 과수원의 감. 감꽃이 떨어진 자리에 감이 자리잡았다.
▲ 경상도에선 '추자'라고 하지만, 추자와는 다른 호두.

산딸기는 들길에서 간선도로로 나오는 길옆에 핀 것이다. 요즘은 저걸 따 먹는 아이들도 없다. 맛이 괜찮은데, 하면서 문득 우리가 너무 많은 먹을거리에 쌓여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마지막 사과는 우리 동네의 단독주택 담장 밖으로 가지를 내민 놈이다. 제법 발갛게 익은 놈도 있는데, 가을까지 저게 남아 있을까 싶다.

지금은 좀 어설퍼 보이는 이들 열매는 곧 익어서 밭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새봄을 기다리는 재생산을 위한 순환에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의 사정과는 무관한 저들의 질서와 순환이다.

▲ 간선도로로 나오는 농로 옆에 핀 산딸기. 이 녀석도 이제 끝물인가 보다.
▲ 우리 동네 단독주택 울타리 너머로 건너온 사과. 이게 익을 때까지 붙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익어가던 ‘평화’는 어디에

2018년 6월에도 ‘익어 가는 것들’에 관한 글을 썼다. ‘총알구멍의 침묵-평화도 익어 간다’라고 하면서. 그해 4월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했고, 6월에는 북미가 정상회담에서 ‘완전 비핵화·안보 보장’ 4개 항을 합의했다. 내가 ‘평화도 익어 간다’라고 쓴 이유다. [관련 글 : 6월에 익어 가는 것들, 혹은 화해평화]

그러나 4년, 상황은 엄청나게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했고, 보수 정권 시대가 열렸다. 남북 간 교류는 얼어붙었고 대화에 대한 기대도 멀다. 정말 무슨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과 복안을 가진 건지 아니면, 전 정권의 정책과 상반되는 정책으로 일관해서 그런지 알쏭달쏭한 새 정권의 속내도 궁금하다.

이번 6월 25일은 정전(1953)한 지 69년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8천만이 하나 되는 통일의 시간은 과연 올까. 익어 가는 열매들이 펼쳐 보이는 재생산의 순환을 바라보며 통일을 다시 생각해 본다.

▲ 대부분 논에선 이미 모내기가 끝났다. 모내기 끝난 논 위로 새 몇 마리가 날고 있다.

 

2022. 6.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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