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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2제 - ‘육육(肉肉) 데이’와 ‘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

by 낮달2018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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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는’ 유통업체들 광고

▲ 육육데이, 육육위크 등으로 광고하고 있는 유통업체들의 광고 전단 발췌

현충일이다. 아침에 국기를 꺼내 베란다 창틀에 달린 홈에 조기로 달았다. 6시가 안 되어서인가, 위아래로 둘러보아도 아직 게양된 국기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처럼 국기 게양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건 개인주의화의 결과이기도 하고, 의식 문화에 대한 태도가 느슨해져서이기도 할 터이다.

 

그런데 오늘 자 신문 기사에서 ‘육육 데이’라는 신조어를 만났다. 이는 현충일인 6월 6일의 반복된 소리를 ‘고기 육(肉)’ 자로 비틀어 ‘고기 먹는 날’로 광고한 것이다. 명색이 순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인데 그걸 고기 먹는 ‘육육 데이(day)’로 부른 것으로, 이에 소비자들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기사다. [관련 기사 : ‘현충일이 고기 먹는 날?’…고기 팔기 혈안, 순국선열 잊은 ‘육육데이’]

 

한우를 싸게 판다는 행사를 자랑하면서 붙인 이름이 업체마다 거기가 거기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肉(육)월이 왔어요’ 행사, 이마트는 ‘육육 위크’ 행사,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육육 데이’라는 이름으로 고기를 판다. 소비자들은 싸게 판다는 고기도 워낙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다 ‘현충일’을 소비 촉진 행사에 무람없이 가져다 쓰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현충일에는 마땅히 고기를 삼가야 한다는 건 일종의 도그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현충일이 고기 먹는 날이 됐는지 안타깝다”라고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유념할 만한 정서다. 이에 대형마트 가운데서도 농협 하나로마트는 그 정서가 아팠던 모양이다.

▲ 농협중앙회 쇼핑몰에 떴던 '肉(육)월이 왔어요'(위)는 논란이 되자, 사라졌다(아래)

강요할 수는 없지만, 경건하게 보내는 게 호국 영령을 기리는 일이라는 데 어깃장을 놓을 사람은 없다. 실제로 일부 유통업체에서는 현충일에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영리를 목적으로 한 유통업체지만, 현충일에 싸게 파니 고기를 먹고 즐기라고 권하는 게 받아들이기가 민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 거다. 농협중앙회 쇼핑몰에 떠 있던 ‘肉(육)월이 왔어요’라는 광고 문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에게”, 어떤 아파트 광고

▲ 문제의 광고 문안. 더 팰리스 73의 분양광고다.

서울 서초구의 고가 아파트 ‘더 팰리스 73’ 분양 광고가 논란을 일으켰다. 2027년 9월 준공 예정인 이 주거복합단지에는 분양가가 100억 원에서 400억 원에 이르는 아파트와 호화 오피스텔 73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 광고 문구(카피)로 등장한 문장이 말썽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더 팰리스 73은 미국의 유명한 현대 건축가로 198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참여하고,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서리풀공원을 품고 사는 곳이라는 등 차별화된 최고급 주거단지다. 이를 강조하는 동시에 극소수 부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내세운 이 문구는 단박에 논란에 휩싸였고, 오늘 오전 누리집에서 사라진 뒤 결국 시행사가 사과했다. [관련 기사 : “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에게”···대놓고 내세운 아파트 광고]

▲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부자들을 위한 '더 팰리스 73' 조감도

“부유층의 우월의식을 자극하고 서민들에게는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 광고를 내세운 회사가 그걸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 이 광고는 이 땅에 난만하게 무르익은 “한없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 씁쓸하지만, 이 땅은 ‘불평등’과 차별을 선망하는 부류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2023. 6.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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