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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로 다가온 꽃, 「꽃다지 」

by 낮달2018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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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꽃다지와 민중가요 ‘꽃다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들판의 꽃다지. 워낙 꽃이 작아서 간신히 찍어낸 사진이다.

화초 ‘꽃다지’를 알게 된 것은 1990년 어름에 나온 김호철의 민중가요 ‘꽃다지’ 덕분이다. 해직 기간이었는데, 꽤 서정적인 노래여서 감상적인 여운을 풍기는 그 노래가 금방 입에 익었다. 나는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에 담긴 주저와 그리움, 안타까움, 그리고 쓰라린 상처를 금방 내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듯하다.
 
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퇴행이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이 시민사회에 감돌던 때다. 근무하던 여학교에서 9월 신학기를 맞았는데, 문득 새날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지는 느낌 때문에 꽃다지를 떠올렸었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는 구절의 뜻이 별나게 마음에 닿아와서 나는 혼자서 그걸 되뇌곤 했었다. 그립더라도 뒤돌아보지 말자. 정말 뒤돌아보지 말자……. [관련 글 :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한편 ‘꽃다지’는 1992년 3월 ‘노동자 노래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이 통합하여 창립된 전문 노동가요 집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꽃다지는 그동안 ‘통일이 그리워’, ‘서울에서 평양까지’, ‘민들레처럼’, ‘바위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같은 민중가요의 히트곡들을 발표해왔다.
 
노래를 부르면서, 혹은 꽃다지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나는 굳이 꽃다지를 찾지 않았다. 흔한 풀이지만, 노란 4장의 꽃잎을 찍은 이미지를 바라보았을 뿐, 그걸 실제 풀밭에서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오다가 꽃다지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요즘 들어서다.

▲ 요즘 들에는 꽃다지가 지천으로 피었다. 옆에는 쑥이 한창이다.
▲ 꽃다지 한 포기가 쑥과 다른 풀들 사이에 피어 있다.
▲ 꽃다지 꽃잎을 근접촬영하였다. 바람에 흔들리고 손이 떨려 초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꽃다지는 볕이 잘 드는 초지, 숲 가장자리, 길가, 공터 등에 흔하게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중국, 일본,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분포한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이 식물의 모양은 땅에 찰싹 붙어 방석처럼 퍼져 있다. 꽃다지 이름은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외 3인, 1937)에 의한 것으로 꽃이 다닥다닥(닥지닥지) 핀 모습에서 유래했다.
 
꽃은 ‘열 십(十)’ 자 모양으로 노랗게 피는, 십자화과에 속하는 화초다. 전체적으로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는 꽃다지는 냉이와도 잘 어울려 핀다. 그러나 사람들은 냉이는 잘 캐지만, 꽃다지는 별로 캐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꽃다지의 꽃말은 ‘무관심’이란다.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의 꽃다지 사진들
▲ 꽃다지는 튀겨 먹거나 전을 부쳐도 좋다. ⓒ 자닮 모바일사이트

어린 순은 나물로 식용할 수 있어 옛날 어려웠던 시절엔 죽으로 쑤어 먹었던 구황식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꽃다지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꽃다지 나물은 꽃 피기 전 어린 순을 살짝 데쳐 물에 담가 떫은맛을 제거한 뒤 나물무침을 하거나 초무침으로 먹기도 하고, 참기름을 넉넉히 넣고 겉절이 양념을 하여 생채로 먹기도 한다.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향이 은은하고 단맛을 내며, 전이나 튀김도 가능하고 달래를 섞어 초고추장에 무쳐도 별미라고 한다.
 
워낙 꽃이 작아서 사진으로 찍으려니 마땅치 않았다. 삼각대 없이 찍었더니 번번이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데다가 간간이 부는 바람으로도 흔들리기 일쑤였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사진 몇 장을 얻었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십자 모양의 노란 꽃잎은 꽤 예쁘다.
 
노래 ‘꽃다지’는 징역을 살면서 노역장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꽃다지를 노래한다. 거기 황량한 감옥에도 봄이면 꽃다지가 피었는가, 화자는 자리에 들어 올려다본 천정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를 본다. 그리고 그 꽃은 동지의 모습으로 다시 떠오르고, 그 꽃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사랑과 그리움을 깨우치는 것이다.
 
2019년에 산 ‘파업가 30주년 기념 김호철 헌정 음반’의 첫 곡으로 수록된, 류금신과 최도은이 부르는 맑고 담백한 목소리의 ‘꽃다지’를 다시 듣는다. 담담하게 1절을 노래하던 목소리는 2절에서 물기를 띠기 시작했고 왜 이럴까, 저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관련 글 :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이 노래가 서른 살이 됐다]
 
올해는 이미 늦었다. 내년에는 연한 꽃다지 어린 순을 따서 전을 부치든, 초무침으로 먹든, 겉절이 양념을 하여 생채로 먹든 꽃다지나물을 먹어 보리라고 마음먹는다.
 
 

2023. 4.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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