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Morning glory)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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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아침 식전에 다녀오는, 한 시간쯤 걸리는 걷기 운동 길에는 나팔꽃이 곳곳에 피어 있다. 나팔꽃은 동네의 담벼락에, 볏논 가장자리에, 탱자나무 울타리에, 산짐승의 출입을 막으려 세운 밭 울타리에 연파랑 꽃잎을 매달고 새초롬하게 피어 있다.
나팔꽃은 말 그대로 꽃잎이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짙은 남색이나 연보라, 연파랑 등의 산뜻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수더분하거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라 할까, 나팔꽃은 마치 제 할 일을 맵짜게 해치우고 앙큼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계집아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끔 요즘 들면서 나팔꽃이 흔해졌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만나는 나팔꽃은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자생하는 풀꽃일 뿐이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배운 동요(꽃밭에서)에도 나오듯 나팔꽃은 채송화, 봉숭아와 함께 어우러지는 꽃이었다. 그래서 나팔꽃은 우리가 가장 먼저 눈에 익힌 꽃이었다. [관련 글 :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인의 일상에서 유념하지 않으면 나팔꽃 따위는 눈에 띄기 어렵다. 그러나 일에서 놓여나 한결 느긋해진 은퇴자의 삶에선 그것을 구성하는 온갖 장면과 장면이 예전과는 달리 눈에 담긴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논밭에서 자라는 작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제가 아는 꽃의 목록을 떠올리지만, 마땅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기 쉽다. 세상에 숱한 꽃이 있지만, 그걸 마음에 담아놓는 것은 그 꽃의 이름을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에 나는 패랭이꽃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아마 그건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떠올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요즘이라면, 나는 나팔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굳이 그 이유를 주워섬기지 않아도 그냥 눈에 스스럼없이 담기는 꽃이고, 그게 아무 데서나 정갈하게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요즘 말로 ‘최애 꽃’이 아닐 수 있다. 그거 말고도 나는 찔레꽃도 좋아하고, 살구꽃, 사과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끔 아침 운동 길에는 사진기를 들고 나서는 것은 그런 일상을 구성하는 장면들을 렌즈에 담는다. 아침마다 갓 피어난 나팔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나팔꽃이 새벽 서너 시에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해 아침에 활짝 피는 ‘모닝글로리(Morning glory)’여서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나팔꽃잎은 고깔처럼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이 된 이유다.
그러나 꽃말과는 달리 나팔꽃은 쓸모 있는 꽃이다. 씨를 뿌리면 싹이 잘 트고 자라는 속도가 아주 빨라 기르기 쉬운 나팔꽃은 닷새만 지나면 싹이 트고, 한 달 후면 완전히 꽃을 피운다. 그리고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이나 이산화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들깨, 가죽나무와 함께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아보는 식물로도 널리 쓰이니 새치름한 겉모습에 비기면 속은 단단한 셈이다.
한방 약재로 쓰이는, 새까맣게 광택이 나는 나팔꽃의 씨를 ‘견우자(牽牛子)’라고 한다. 거기 ‘견우’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는 소가 끄는 수레에 나팔꽃을 싣고 다니며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 길에선 가끔 메꽃도 만난다. 나팔꽃도 메꽃과로 둘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을 감아올리는 습성을 가졌지만, 아침에 피는 나팔꽃과 달리 메꽃은 낮에 핀다. 나팔꽃이 한해살이풀로 씨로 번식하는 데 반해 메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줄기로 번식한다. 포기나누기로 번식하여 메꽃은 ‘고자화’라는 점잖지 못한 이름도 얻었다.[관련 글 : ‘고자화’, 메꽃은 그 이름이 억울하다]
꽃 빛깔도 나팔꽃은 남색, 보라색, 빨강, 분홍색과 각종 무늬가 다양하지만, 메꽃은 흰색과 분홍색만을 띤다. 나팔꽃이 씨를 약재로 쓰는 반면, 마의 뿌리처럼 도톰한 메꽃의 뿌리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춘궁기 때에 구황작물 노릇을 했다고 한다.
아침 운동 길에 만나는 나팔꽃은 죄다 연파랑 빛이다. 그 담백하면서도 기품 있는 빛깔은 내게 나팔꽃이 보이는 일종의 겸양과 절제처럼 여겨진다. 강렬한 원색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 존재를 넌지시 보여주고 있는 나팔꽃의 연파랑을 내가 오래 그윽하게 바라보곤 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
2022. 8.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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