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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잎’의 계절, ‘조역’에서 ‘주역’으로

by 낮달2018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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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아파트 화단의 백목련이 꽃을 떨군 뒤에 잎사귀를 무성하게 드리우고 있다.
▲ 아파트 화단의 아그배 나무의 잎도 싱그럽다. 오른쪽 뒤는 산수유다.
▲ 아파트 앞 도로변의 가로수 이팝나무도 싱그러운 잎사귀를 자랑하고 있다.
▲ 성질 급한 이팝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고 있다.

아침에 산책길에 나서면서 아파트 화단에서 꽃을 떨구고, 시원스럽게 푸르러지고 있는 백목련 잎사귀를 보면서 문득 나는 중얼거렸다. 아, 이제 ‘잎의 계절’이로구나. 그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절로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조어(造語)였다.

 

3월에서 4월 초순까지가 난만한 ‘꽃의 계절’이라면 찔레꽃과 장미가 피는 5월까지의 시기는 말하자면 ‘잎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른 봄을 수놓는 꽃들은 대체로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진 자리에서 잎이 돋는다. 봄의 전령 매화가 그렇고, 생강나무꽃과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 살구꽃, 벚꽃, 복사꽃이 그렇다.

 

식물 대부분은 잎을 내고 난 다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살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봄을 난만한 꽃의 계절로 만드는 이들 식물은 잎과 꽃의 순서를 바꾸어 화려한 봄을 증언한다. 이들은 서둘러 꽃을 피우고 난 뒤에야 비로소 눈록(嫩綠) 빛 잎을 내는 것이다.

 

꽃이 꽃가루받이로 씨앗을 맺고 후손을 퍼뜨리는 일을 하는 번식기관이라면, 잎은 호흡도 하고, 광합성을 해 양분을 만들어내어 생장을 돕는 식물의 영양기관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꽃에 주어지지만, 꽃만큼이나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진 잎으로 말미암아 꽃은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다.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잎들은 목련을 비롯하여 아그배, 이팝나무, 벚나무, 감나무, 찔레, 탱자나무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이팝나무, 감나무, 찔레 등이 잎이 먼저 피는 나무인데, 이팝나무 가운데 성질 급한 녀석은 이미 꽃을 피웠다. 산책길을 돌면서 찍은 50여 장의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나는 꽃 못잖은 잎의 아름다움을 새록새록 맛볼 수 있었다.

▲ 이웃 아파트 단지 안의 벚나무. 그 잎사귀가 눈에 익다.
▲ 원불교 교당(위)과 어느 집 정원의 감나무 잎사귀가 연록빛으로 피어 있다.

잎의 시절이라고 해서 꽃이 없는 게 아니다. 산책길 곳곳에 울긋불긋 철쭉이 현란하고, 우리 동네 빈터에 심은 파도 꽃을 피웠다. 원불교 교당의 정원에는 샤스타데이지도 서둘러 피었고, 양옥의 담장에 수국도 탐스럽게 피었다. 아, 아까시나무도 꽃을 피웠다. 주렁주렁 늘어진 풍성한 꽃을 보면서 나는 잠깐 사라진 벌들은 얼마나 돌아올지를 생각했다.

▲ 부곡동의 들길 수로 옆에 피어난 찔레 잎. 곧 찔레꽃도 피어날 것이다.
▲ 부곡동의 대학으로 가는 길섶의 탱자나무도 꽃을 떨구고 잎을 내었다.
▲ 우리 동네 빈터에 대파도 꽃을 피웠다.
▲ 원불교 교당의 정원에 샤스타데이지가 서둘러 피었다.
▲ 부곡동 산 어귀에 아까시꽃이 주렁주렁 피었다. 올해는 처음 본 아까시꽃이다. 아카시아는 전혀 다른 나무다.
▲ 봉곡동의 어느 집 담장에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다.
▲ 교회 앞 꽃사과 나무 옆 살구나무에 풋살구가 잔뜩 달렸다. 4월은 꽃과 잎과 열매가 어우러지는 시기이다.

아, 교회 앞 꽃사과 옆에 서 있는 살구나무엔 시퍼런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4월은 꽃과 잎과 열매가 어우러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5월이 오면 찔레꽃이 흐드러지고 화려하게 핀 장미가 온 도시를 붉게 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계절은 빠르게 여름으로 옮겨갈 것이다.

 

 

2023. 4.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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