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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성년이 되어서야 만난 ‘사과꽃’, 그리고 사과 이야기

by 낮달2018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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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과꽃’과 최상의 과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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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파트 뒷산 사과밭에 핀 사과꽃. 이제 겨우 꽃망울을 터뜨린 터라 꽃망울이 진홍빛이다.

사과꽃은 당연히 사과나무에 핀다. 사과가 과수원에서 주로 익어가던 시절에는 일반인들이 사과꽃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과는 겨울철은 물론 연중 가장 널리 유통되는 과일이지만, 사과가 어떻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래서다.
 
유년시절, 사과는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어랄 적 동네엔 사과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한두 그루로 지을 수 있는 농사가 아니므로 사과 농사를 짓는 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윗마을에는 집집이 낙동강 강변의 모래땅에다 조성해 놓은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지었다. 과수원 주위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봄가을로 소풍을 갈 때면, 그 마을 아이들의 도시락 보따리엔 으레 사과가 여러 개 담겨 있었고, 나는 그걸 늘 부러운 눈길을 바라보곤 했다. 과수원에서는 자투리땅에다 땅콩을 심었으므로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삶은 땅콩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논밭 농사를 짓는 집 아이들의 간식은 고작 찐 고구마가 다였지만, 사과와 땅콩은 살림살이가 한결 나았던 그 동네 아이들의 간식이었다.

▲ 사과꽃의 꽃망울은 진분홍색을 띠지만, 꽃이 벙글면서 색이 점점 연해져 만개할 때는 거의 흰색으로 바뀐다.

오일장에나 가야 사과를 살 수 있었던 때라, 우리는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면 사과 따위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여름 사과가 나올 즈음엔 동네 사람들은 보릿자루를 이고 과수원에 가서 그걸로 흠이 있는 사과를 바꾸어 오곤 했을 뿐이었다.
 
재래종 능금 먹다가, 서양 사과는 20세기에 재배 시작
 
어릴 적에 우리는 사과라고 하지 않고 ‘능금’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일상적으로 쓰던 말이라, 능금이 사과와 같은 말인 줄 알았다. 능금이 ‘재래종 사과’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에 진학해서다. 그래도 나는 오랫동안 ‘사과’ 대신 ‘능금’을 썼다. 내 기억 속에 빨갛게 익은 사과의 이름은 ‘능금’이었지 낯선 ‘사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과의 원산지는 자료에 따라 캅카스(코카서스)산맥, 중앙아시아, 발칸반도 등으로 갈린다. 이는 원산지는 중앙아시아고 이 원생종이 동쪽으로 중국 서부와 시베리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분포된 것과 서쪽으로 유럽 동남부인 코카서스, 터키에서 2차 중심지를 형성한 것 두 가지로 분화되었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서양 사과는 4천 년 이상의 재배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재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재래종 사과인 ‘능금’을 재배해 왔다. 송나라 손목이 저술한 견문록 <계림유사>(1103)에는 고려어 낱말 360개를 채록했는데, 능금을 ‘임금(林檎)’으로 표기하고 있다. ‘수풀 림(林), 능금나무 금(檎)’ 자를 쓴 이 낱말은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1527)에는 ‘니ᇰ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 서긍의 견문록 <고려도경>(1123)에는 “고려의 과실로 능금, 배, 참외, 복숭아, 대추 등이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 전기 문헌에서는 여러 품종의 능금이 나오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잣, 밤, 대추, 호두, 은행, 배, 복숭아, 살구, 오얏(자두), 앵두, 모과, 사과(楂果), 능금(林檎)의 재배법이 쓰여 있다.
 
<훈몽자회>에는 ‘금(檎)’을 속칭 ‘사과(沙果)’라 부르고, 작은 능금은 ‘화홍(花紅)’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과전서 식 박물학서인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의 과실류 등의 재배법을 다룬 ‘만학지(晩學志)’에는 오얏, 살구, 매실, 복숭아, 능금 류 등이 기록되어 있다.

▲ 대구에 처음 도입된 서양사과나무 후계목. 대구동산병원 선교박물관 옆에 있다. ⓒ 매일신문

재래종 사과인 능금을 재배하기는 하였으나, 오늘날 우리가 먹는 개량된 사과가 도입되어 경제적 재배를 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899년 의료 선교사로 온 우드브릿지 존슨(Woodbridge Johnson)이 대구 약전골목에 현재 동산의료원 전신인 제중원을 세우고 집 근처에 미국에서 가져온 사과 72그루를 처음 심었다. 존슨이 심은 사과나무는 잘 자라 뒷날 이름난 ‘대구 사과’의 원조가 되었다. 지금도 청라언덕에는 대구 최초 사과나무의 후손이 자라고 있다.
 
그 뒤 1901년에 윤병수가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다량의 사과 묘목을 들여와 함경도 원산 부근에 과수원을 조성하여 성과를 거둔 것이 경제적 재배의 시작이다. 근대 사과 연구는 1906년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설치하고 각국에서 각종 과수의 품종을 도입하여 품종 비교와 재배 시험을 하면서 진행되었다. 현재 사과에 관련한 연구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경북 군위)에서 맡고 있다.

▲ 사과는 제철 과일로 제사상에도 올린다. 진설한 사과. ⓒ 민속대백과사전
▲사과의 품종. 이들이 국내 생산의 90%를 차지한다. ⓒ 나무위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 품종은 1970년대 이전에는 주로 국광, 홍옥이었다가 뒷날 후지와 쓰가루(아오리) 품종이 도입되면서 이들 품종의 재배면적이 늘었다. 현재는 조생종(여름 사과)인 쓰가루(아오리), 중생종(추석 사과)인 홍로(紅露), 중만생종(10~11월) 양광(陽光), 그리고 만생종인 후지(부사)가 전체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사과는 생과든 과일샐러드든 우리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과일로 저장성도 좋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또 식초, 술, 주스, 잼 등으로 가공해 먹기도 하며, 집안 제례에는 제철 과일의 하나로 올리기도 한다. 나는 겨울철 과일로는 사과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해, 겨우내 사과를 즐기는 편이다.
 
사과를 즐기면서도 나는 먼빛으로 사과나무를 보았을 뿐, 사과꽃은 구경도 못 하고 자랐다. 사과꽃을 처음 본 건 어른이 되어서고,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은 퇴직 이후에 산책길에 나서면서다. 물론 내 산책길에 사과 과수원이 있는 건 아니고, 가정집 정원에 심어 놓은 한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날마다 만나면서다.
 
사과꽃은 내 ‘꽃 삼월’이 지나면 피기 시작한다. 3, 4월에 걸쳐 피어나는 매화, 살구, 복숭아, 배꽃, 벚꽃에 이어 사과꽃은 4월 중순께부터 슬슬 피기 시작한다. 내가 사과꽃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것은 2018년 봄이다. 동네 곳곳이 피어난 봄꽃들로 느꺼워하던 때다. [관련 글 : 살구와 명자 지고 사과꽃 피다]

▲ 2018년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나 들여다본 사과꽃.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었건만, 나는 이런 자태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동네의 한 단독주택 담장 안에서 담 밖으로 가지를 내민 사과나무가 꽃을 피웠을 때 나는 아연 환호했다. 그건 내가 그간 봐온 꽃 가운데 가장 담백하면서도 우아한 꽃이었기 때문이다. 매화나 살구처럼 섬세하지 않으면서도 의젓하고 당당하며 믿음직한 자태의 사과꽃 앞에서 나는 기꺼이 그 경배자가 되기로 했었다.
 
사과꽃에 매료, 꽃이 변했나 내가 변했나
 
그러나 이듬해에 사과꽃을 기다리던 나는 정작 꽃이 피자, 머리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내가 처음 만난 사과꽃과 같은 장소 같은 나무에서 핀 꽃인데도 어쩐지 작년의 느낌과는 멀찍이 떨어진 수더분한 모습의 꽃이어서다. 나는 잠깐 무언가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변화가 무엇 때문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처음 사과꽃을 보여준 동네의 사과나무에 이어 산책길 코스를 바꾸면서 두어 그루의 사과나무를 새로 만났다. 거기에다 무심히 지나온 아파트 뒷산 기슭에서 50그루 미만의 사과밭을 발견하면서 그동안 죽 사과꽃의 개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과꽃은 4월 중순께 잎과 함께 피는데, 올해는 일주일쯤 당겨졌다. 꽃망울은 진분홍색을 띠지만, 꽃이 벙글면서 색이 점점 연해져 만개할 때는 거의 흰색으로 바뀌는 듯하다. 처음 만났던 사과꽃과는 달리, 요즘 보는 사과꽃은 화려하지 않고 수더분해서 마치 검박한 여인의 모습 같다.

▲ 사과꽃은 만개하기 시작하면 점점 빛깔이 연해져서 나중에는 흰빛으로 바뀐다.
▲ 완전히 만개한 사과꽃. 분홍빛은 이미 스러지고 있다. 벌이 꿀을 빨고 있다.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한 아쉬움도 잠시, 나는 사과꽃의 담백한 인상에 다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진분홍 농염한 꽃눈에서 조금씩 빛깔이 옅어지면서 하얀 꽃으로 바뀌는 성장 과정도 마음에 든다. 그것은 마치 청춘기를 지나 성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것 같지 않은가.
 
사과나무는 꽃눈 하나에서 꽃이 다섯 송이 피는데 나무마다 1천 개 정도 꽃눈이 있어 5천 송이 사과꽃이 핀다. 충실한 열매를 얻으려면 이 가운데 90퍼센트 넘는 꽃을 일일이 솎아줘야 한다. 수분이 잘되도록 꽃을 따주는 이 작업을 ‘적화(摘花)’라고 한다. 잘 익은 붉은 열매마다 농부의 땀이 만만찮게 서려 있는 것이다.

▲ 꽃사과꽃. 사과꽃보다는 훨씬 정돈된 모습이다.
▲ 우리 아파트 화단에 핀 아그배꽃. 꽃사과꽃보다 꽃잎이 더 작아 새끼손톱만 하다.

사과꽃의 꽃말은 ‘명성’과 ‘유혹’이라 한다. 이브가 여호와의 금기를 어기고 아담을 유혹해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죄를 범했다는 창세기에서 유래한 상징을 담은 꽃말이다. 금지된 과일이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유럽 기독교 전통에서는 ‘선악과’를 사과라고 여긴다고 한다.
 
꽃사과꽃과 아그배꽃
 
산책길 주변에는 장미과 사과나무 속에 속하는 소교목인 꽃사과 나무도 있다. 일반적으로 식용하지는 않지만, 알사탕만 한 크기의 사과를 축소한 형태의 열매가 달린다. 사과꽃과 흡사한 꽃이 피는데, 사과꽃보다는 훨씬 정돈된 모습이다. 꽃사과꽃과 비슷한 친척뻘 꽃으로 ‘아그배’도 있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는데 꽃사과보다 크기가 더 작은 새끼손톱만 한 꽃이 핀다.

▲ 우리 아파트 뒷산 기슭의 사과나무. 올가을엔 여기 열린 사과를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과수원에서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사과. 2013년 11월, 경북 군위 화본.

가정집에 정원수로 심은 사과나무는 제대로 된 수확을 하기가 어렵다. 사람들 손을 타기도 하고 먹으려고 기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올가을엔 뒷산 기슭의 사과밭에서 사과가 익어가는 모습을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2023. 4.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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