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반세기도 전의 그 풀, 일흔이 다 돼 ‘다시 만났다’

by 낮달2018 2022. 9. 20.
728x90

‘단풍잎돼지풀’, 혹은 ‘울산도깨비바늘’, 그리고 ‘방동사니’

 

단풍잎돼지풀

 

▲ 단풍잎돼지풀은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됐다.

난생처음 쇠꼴을 뜯기 시작한 게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아버지로부터 낫 쓰는 법을 배웠고, 강에 가서 한 망태 뜯어와 보아라, 나는 망태를 걸머지고 집을 나섰다. 마을 앞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고, 샛강을 건너면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샛강과 백사장 사이에 어느 해인가 이태리포플러라고 불렀던 미루나무를 잔뜩 심었다.

 

미루나무는 금방 쑥쑥 자라 뒷날, 이 버들 숲은 한동안 대구에도 알려져 주말이면 들놀이 장소로 찾는 이들이 많았다. 버드나무 숲 아래는 풀이 지천이었다. 나는 거기서 간단히 한 망태 쇠꼴을 뜯어 그걸 지고 돌아오곤 했는데, 거기 가장 많은 풀이 단풍잎 돼지풀이었다.

 

그 풀의 이름이 단풍잎돼지풀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 풀을 휴대전화로 찍어 꽃·나무·식물 이름 찾기 앱 ‘모야모’에 올렸더니 번개같이 두 사람으로부터 ‘단풍잎돼지풀’이라고 답이 왔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위키백과>의 표제어로 뜨는데 그 풀이가 아주 간략했다.

 

단풍잎돼지풀은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식물이다.

 

특징

높이가 3m로 자라며 표면에 거친 털이 밀생한다. 마주나는 잎은 단풍잎처럼 3~5개로 깊게 갈라지고 잎 양면에 강모가 있다. 갈래 조각은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에 흰색의 털이 밀생한다.

 

▲ 단풍잎돼지풀은 엄청난 성장 속도와 번식력 때문에 식물계의 ‘조폭’으로 비유된다.

쇠꼴 뜯기는 집에 소를 기르지 않게 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풀을 뜯을 때마다 내가 궁금했던 건 좀 낯설어 뵈는 그 풀을 소가 즐겨 먹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니, 소에게 해로운 풀이 아닐까 하는 의심증이 났다고 말해야 옳다. 그만큼 그건 여느 풀들과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뉴스 등으로 확인한 다른 정보는 이 풀이 1999년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인 이 풀은 주변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초토화하면서 혼자만 왕성하게 자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태평양전쟁 전후로 알려져 있으나, 근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풍잎돼지풀은 식물계의 ‘조폭’으로까지 비유되는 것은 엄청난 성장 속도와 번식력 때문이다. 땅이 비옥하고 키가 큰 풀과 경쟁하여 자라는 곳에서는 5m까지도 자란다. 꽃이 피면 한 그루에서 5천 개 정도의 씨가 생산된다. 게다가 송홧가루보다 더 많은 노란 꽃가루가 민가로 날아들고, 여러 가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가시박이나 미국쑥부쟁이처럼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이 급속히 번지는 이유는 하천 제방 공사나 둔치 공사에서 표토 교란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단풍잎돼지풀은 다 자란 다음에 제거하려면 씨앗이 유입되지 않는 조건에서 5년 동안 제거해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제거 과정에서 사람의 옷이나 신발에 붙어 이동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이지만, 단풍잎돼지풀은 나물로 맛이 좋다. 생으로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지만, 데쳐서 먹으면 독성이 사라진다. 최근 산야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나물로 채취하자는 운동이 확산하기도 했다. 어릴 때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단풍잎돼지풀은 폴리페놀 성분이 다른 식물에 비해 2배나 많은 것으로 밝혀져 식용하면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 그래서 이 성분을 이용해 산림환경연구소와 대학이 공동 연구해서 기능성화장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폴리페놀 물질은 체내 활성산소를 중화·제거하는 항산화 활성 능력이 우수해 피부노화와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억제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동사니

 

▲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 본 왕골을 닮은 방동사니.

어릴 때부터 흔히 봐온 풀인데, 왜 그 이름을 몰랐을까. 나는 그걸 ‘왕골 닮은 풀’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자라서 열한 살 터울의 누님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러나 동방삭이로 아무리 검색해 봐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그게 ‘방동사니’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누님의 답은 ‘동방산이’쯤이었을 성도 싶다.

 

단풍잎돼지풀과 함께 모야모에 물었더니 ‘방동사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위키백과>는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방동사니(Cyperus microiria)는 사초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한해살이풀로서 줄기의 높이는 10~60cm 정도이다. 잎은 실 모양으로 폭은 2~6mm 정도이다. 한편, 줄기 꼭대기에는 3~4개의 긴 총포조각이 달리는데, 그 중앙에는 5-10개의 길고 짧은 가지가 나며, 거기에 여러 개의 작은이삭이 달린다. 이때, 작은이삭은 약 20개 정도의 작은 양성화가 2열로 어긋나게 배열되어 이루어진다. 꽃받침은 없고 씨방은 3개의 모서리가 있으며, 암술대는 씨와 연속되고 마디가 없다. 3개의 암술머리가 있다. 주로 밭·길가·둑 등지에서 자라며, 우리나라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줄기·잎은 약용으로 쓰인다.

 

▲ 왕골

왕골은 같은 사초과의 한해살이풀로 방동사니 속의 하위 분류에 속한다. 내가 ‘왕골’을 닮았다고 한 것은 틀리진 않았던 셈이다. 왕골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신작로 가의 새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살던 고향 마을에서 본 기억이 아련하다.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모여 논에서 떠들썩하게 왕골을 수확하는 장면이다. 그 논 옆에는 우리가 올라서 놀던 거대한 칼바위가 서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왕골은 왕굴·완초(莞草)라고도 하는데, 온대지방에서는 1년생 또는 2년생 초본식물이다. 원래부터 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논에서 재배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때, 나는 왕골로 무얼 만드는지 몰랐으나 뒷날 학교에서 강화도 화문석이 바로 그걸로 만든 민속공예품이라는 걸 배웠다.

 

왕골은 쪼갠 줄기를 건조하여 자리·방석·모자 등을 만들고, 속은 건조하여 신·바구니·노끈 등을 만든다. 그리고 줄기뿐만 아니라 잎도 제지원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글쎄, 다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다. 고향 마을에서 쪄낸 왕골은 무엇을 만들었을까.

 

언젠가, 풀꽃 이름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내 삶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길 쓴 적이 있다. 주변의 풀꽃 하나라도 더 알게 된다면, 내 삶이, 혹은 생활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있고 거기 만족해한다고. 내 삶과 이어진 세계의 일부라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도 당연히 삶의 확장이라 할 만하지만 글쎄, 나날이 쇠퇴해 가는 기억력이 이걸 얼마나 갈무리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관련 글 : 꽃과 나무 알기- 관계의 출발, 혹은 삶의 확장]

▲ 이 풀을 알게 됨으로써 나는 내 삶이 풍성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2022. 9. 20. 낮달


▲ 울산도깨비바늘

이 글을 쓰고 나서 다시 들로 나갔을 때다.  휴대전화가 아닌 사진기로 한 장 찍을까 싶어 단풍잎돼지풀을 찾다가 갑자기 나는 헛갈리면서 당혹감에 빠졌다. 단풍잎돼지풀 대신 비슷해 보이는 다른 풀 하나가 눈에 아프게 와 박혔기 때문이다.

 

아, 내가 어릴 때 즐겨 쇠꼴로 베던 풀은 저게 아닐까 싶은 생각인 들면서 지금까지 쓴 글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다싶어서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다시 그걸 모야모에 보내 “이것도 단풍잎돼지풀인가요?”하고 물었더니 이내 날아온 답은 ‘울산도깨비바늘’이었다. 

 

울산도깨비바늘(Bidens pilosa)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울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로 전국으로 퍼져 길가나 밭, 과수원, 빈터, 산자락 등 각처에서 자란다. 높은 발아율과 휴면기를 거치지 않고도 발아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무기로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는데, 현재는 도깨비바늘 종류 중에 가장 출현빈도가 높다고 한다.

 

한 개체에 수십 개의 머리모양꽃이 피고 지면서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으면 뭉쳐있던 것이 방사선 형태로 벌어지면서 바늘 모양을 드러낸다. 이 바늘이 짐승의 털이나 옷 등에 붙어서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반세기도 전에 만났던 그 풀은 울산도깨비바늘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때 강변에 나갔다 돌아오는 아이들 바지에는 도깨비바늘 투성이곤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가 어릴 적에 만난 풀은 단풍잎돼지풀이거나 울산도깨비바늘 둘 중 하나다. 어느 것이든, 글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울산도깨비바늘 사진 하나를 붙여 두는 거로 변명을 대신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