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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2 텃밭 농사 ⑥] 가을 들자, 호박이 부지런히 열렸다

by 낮달2018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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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에서 눈에 띄지 않아 애호박을 면하고 늙은 호박으로 자라고 있는 호박.
▲ 내가 아침 운동 삼아 하는 산책길에서 만난 어느 교회 앞 화단에서 익어가는 호박.
▲ 구미 샛강생태공원 둘레길에서 만난 늙은 호박. 둘레길 옆의 농막 위에 올라앉은 호박. 아주 풍성하게 익고 있다. 2021년 가을.

해마다 호박을 몇 포기씩 심곤 했다. 그러나 고추를 따낼 때까지, 호박은 가물에 콩 나듯 게을리 열매를 맺어 임자의 애를 태웠다. 그동안 우리 내외가 호박에 먹인 지청구는 얼마였는지, 그러나 우리는 호박의 게으른 결실이 호박 탓이 아니라, 그걸 심은 밭은 땅심에, 그리고 시원찮은 우리 솜씨에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호박 농사의 실망과 반전

 

고추 농사를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 뒤늦게 호박이 결실한다는 걸 우리는 해마다 잊어버리곤 했던 듯하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긴 여름내, 텃밭에 가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무성하게 벋은 덤불을 들추어 애호박을 찾는 일이었고, 그다음에는 으레 실망의 푸념이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고추와 가지 농사를 접으려 할 무렵인 한가위를 전후하여, 호박 덤불의 기세가 한층 거세지더니, 덤불만 들추면 조그맣게 맺은 호박이 수줍게 얼굴을 드러내곤 했다. 맞아, 찬 바람이 불어야 호박이 제대로 달린다더니, 우리는 잊었던 정보를 다시 찾아낸 듯 너스레를 떨어야 했다.

 

호박 농사는 왜 해마다 이 모양이냐고, 여름내 우리가 내뱉은 저주에 가까운 지청구를 들으며 자라난 호박은 뒤늦게 임자에게 자신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듯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실린 캐나다 교포의 농사 이야기 기사 제목이 ‘가을은 호박의 계절’이었다. 맞다, 그래서였던 거야. 나는 뒤늦은 호박 풍년(?)의 이유를 알아낸 듯 고개를 끄덕여댔었다.

▲ 우리 텃밭에서 자라나는 호박들. 윗줄 맨 오른쪽과 아랫줄 맨 왼쪽의 호박은 이미 때를 놓쳐 늙은 호박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서 호박을 검색해 본 것은 그래서였지만, 나는 ‘농사로’나 ‘위키백과’ 등에서도 가을이 호박의 계절이라는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호박은 4∼7월에 파종하여, 7∼11월에 수확한다는 정보에서 가을에도 호박의 수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호박, 열매와 잎을 두루 식용하는 버릴 게 없는 과채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1년생 채소로, 잎 ·어린순·씨앗·열매 등 대부분 부위가 식용이 가용하나 애호박·늙은 호박·호박고지 등 주로 열매를 식용하는 과채”(민속대백과사전)다. 호박은 과일과 채소류 중에서 녹말의 함량이 많아 오래전부터 구황식(救荒食)이나 대용식으로 널리 쓰였다.

 

게다가 맛이 좋아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주로 호박 나물, 호박선(膳: 토막 내어 칼집을 넣은 애호박 속에 고기, 채소를 다져 양념하여 넣고 쪄낸 음식), 호박전, 호박 지짐, 호박찜, 호박김치, 호박 찌개, 호박죽, 호박떡 등 다양한 음식으로 숙과(熟果 :익은 과일)와 청과(靑果:푸른 과일) 모두 애용되었다.

▲ 애호박과 늙은 호박, 단호박(맨 아래). 호박은 열매는 물론이고 잎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채소다. ⓒ 민속대백과사전&nbsp;이미지 합성

애호박은 주로 나물로 볶아 반찬이나 술안주를 쓰였다.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엮은 여성 생활 백과인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는 호박 나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먹같이 어리고 연한 호박을 갓 따 두께를 알맞게 썬다. 돼지고기는 얇게 저미고, 쇠고기는 곱게 두드려 많이 넣고, 파, 고추, 석이를 넣는다. 기름을 많이 부은 후 호박과 고기를 넣어 재게 볶아 고운 깨소금 뿌려 쓰고, 안주하려면 찰전병을 돈짝만큼씩 지져 섞어서 볶아 쓴다.”

 

빙허각 이씨가 쓴 책으로 사후에 펴낸 <부인필지(婦人必知)>(1915)에는 “동화(동아)와 호박은 더운 방에 두면 겨울에 상치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었다. 늙은 호박은 쉽게 상하지 않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이점이 있어 주로 겨울철에 호박김치, 호박죽, 호박떡 등으로 많이 활용됐다.

 

한해살이 쌍떡잎식물로 박목에 속하는 호박은 원산지가 열대와 남아메리카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무렵으로 추정한다. 호박은 열매는 물론 잎도 버릴 게 없다. 아내는 가끔 호박잎을 뜯어와 밥 위에 쪄서 내놓는데, 우리는 끓인 된장으로 간을 해 쌈을 싸 먹기도 한다. 물론 잎은 억세지지 않고 보드라워야 한다.

▲ 호박범벅과 호박전. 호박범벅은 먹은 지 꽤 오래되었고, 호박전은 자주 반찬으로 먹는다. ⓒ 민속대백과사전 이미지 합성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는 호박범벅을 꽤 즐겼다. 따뜻한 것도, 식어서 먹기 좋은 것을 가리지 않았다. 호박범벅은 늙은 호박을 찹쌀가루로 버무려서 되게 쑤어 만든 음식인데, 내가 그걸 즐겨 먹은 것은 거기 넣은 콩 맛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한다.

 

기다렸다가 늙은 호박으로 호박 범벅을 즐겨볼까

 

아내도 한때 가끔 범벅을 끓였지만,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 생각에 콩을 넣지 않고 묽은 죽처럼 끓여 낸 거였다. 내가 거의 입에 대지 않자, 언제부턴가 아내는 호박범벅을 끓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호박은 주먹보다 더 굵어지기 전의 애호박으로 주로 먹었다.

 

그래도 나중에 호박을 걷을 때 보면 눈에 띄지 않게 자란 늙은 호박 한두 개를 건지곤 한다. 그러나 요즘엔 그걸 소비할 데가 마땅찮다. 시골이라면 두고두고 보관하다가 다른 보양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겠지만, 누굴 주기도 그렇고 해서 보관하다가 결국 종종 밭에다 버리기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게다.

 

어쨌든 올해는 뒤늦은 가을에 호박이 부지런히 달려서 갈 때마다 서너 개씩 따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박꽃이 핀 데마다 들추면, 고개를 내미는 조그만 열매가 반갑고 귀했다. 이미 못 본 새에 성큼 자라버린 놈은 두었다가 늙은 호박으로 따서 모처럼 호박범벅이라도 한번 해 먹을까 생각 중이다.

 

 

2022. 10.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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