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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2 텃밭 농사 ③] 감자 캐기, 그리고 가지와 호박을 처음 따다

by 낮달2018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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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 우리가 수확한 호박과 가지. 아래 나물은 쇠비름이다.
▲ 92일 만에 감자를 캤다. 양은 얼마 안 됐지만 굵기는 그만했다.

6월 27일 월요일

 

아침에 텃밭으로 향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풀이나 한번 맬 참이었다. 일주일 전에 혼자서 밭을 다녀온 아내는 풀이 짓어서(‘풀이 무성하게 나다’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말이 아니라고 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찔끔찔끔 오긴 했지만, 여러 차례 비가 내렸으니 안 봐도 비디오다. 고랑에 빽빽하게 번지는 것은 바랭이다. 쇠비름이나 다른 풀도 따위도 나긴 하지만, 잡초의 주종은 바랭이다.

▲ 꽤 오래 돌보지 않아 밭은 풀이 무성하게 나 있다.
▲ 가지도 여러 개 달렸고, 고추도 작지만 열매를 맺었다. 다 제대로 작물은 자라는 법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비록 풀은 무성하지만, 제법 꼴을 갖춘 밭의 모습이다. 고구마순도 왕성하게 자랐고, 그간 고추 하나 못 맺었다고 지청구를 먹였던 고추도 조그마하지만 여러 개의 열매를 맺었다. 아내와 나는 제가 알아서 다 하는 걸 임자는 그새를 못 참고 입을 놀렸다면서 자책해 마지않았다.

 

심은 지 90일 지나 감자를 캐다

 

감자를 심은 게 3월 25일이다. 90일에서 100일 사이에 수확한다고 하여 월말께나 캐기로 했는데 아내는 감자 줄기가 짜부라진 걸 보더니 안 되겠다, 오늘 캐야겠다면서 호미를 들고 나섰다. 겨우 대여섯 포기쯤 심은 이랑이 둘일 뿐이니 캐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아내와 나는 금방 감자를 캤다. 고구마와 달리 감자 캐기는 수월하다. 대충 줄기를 잡고 뽑으면서, 뿌리 부분을 슬슬 호미를 긁어주면 무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감자를 챙길 수 있다.

 

다행히 감자 씨알이 그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굵다. 양은 지난해의 반이 채 안 되지만, 그래도 감자에서 싹이 날 만큼 오래 먹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아내가 감자를 그늘에서 고르는 동안, 나는 감자를 캐낸 이랑 주변의 풀을 매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아내까지 달려들어 한 시간 반가량 땀을 흘렸더니 밭은 깨끗해졌다. 사람 손이 이리 무서운 것이다.

▲ 1시간 반가량 땀흘려 매니, 이렇게 깨끗해졌다. 사람의 손이 참 무섭다.
▲ 베란다에서 집에 가져온 감자를 신문지를 펴놓고 말리고 있다.

시간은 이미 정오. 땀을 팥죽같이 흘렸더니 아내는 오늘은 안 되겠다. 이쪽 밭은 내일 새벽에 와서 맵시다, 하고 작업을 마쳤다. 아내는 아직 작지만, 가지와 고추 몇 개를 따고, 그 옆 담 주변을 살피다가 호박 한 개를 땄다. 호박은 아이 머리통만 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밭에서 따온 어린 청양고추를 날된장에 찍어서 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삼겹살을 구우면서 가지를 부쳐서 먹었다.

 

6월 28일 화요일

 

▲ 고구마와 땅콩을 심은 밭에도 고랑에 바랭이 등 풀이 새카맣게 돋아났다.
▲ 두 시간 노동으로 밭은 이렇게 깨끗해졌다.

오늘 새벽에 아내가 서둘러 일어났다. 나는 잠이 좀 부족한 듯하여 아내에게 차를 맡기고 반잠을 잤다. 도착하니 6시가 넘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고구마를 심어놓은 이랑부터 시작해서 풀을 매기 시작했다. 이랑 하나 매는데 거의 반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래서 어느 세월에 다 매노 했지만, 두 시간쯤 지나자, 작업은 끝났다.

 

수돗가에 앉아 나는 흙으로 범벅이 된 호미를 차근차근 씻었다. 참 호미는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그만 농기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말이다. 호미가 미국 아마존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것은 그게 정원 손질용 농기구로서는 최적이라는 걸 미국인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양에 호미와 같은 농기구가 없었다는 것은 호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는 아니다. 같은 일도 서양 사람들은 쪼그려 앉아서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삽이나 쟁기 같은 주로 남자들이 다루는 대형 농기구와 달리, 주로 여성들이 종일 다루곤 했던 호미는 주로 땡볕에서 밭을 매는 용도로 쓰였다. 남자들이 전혀 밭매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는 여성의 장시간 노동용이었다. [관련 글 :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 우리가 쓴 호미. 자루와 날에 묻은 흙을 수돗가에서 씻었다. 오랜 연륜이 자루에 날에 선연히 나타난다.

호미가 힘이 센 이유다. 나는 천천히 씻은 호미를 뜰에 얹어 말린 다음에 그걸 몇 장의 사진으로 찍었다. 아내는 주먹보다 조금 큰 호박 두 개를 따고는 세상에 없는 행복한 얼굴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10시쯤 되었다. 만약 새벽에 가지 않았다면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을 거였다. 한낮의 볕을 피해 일하는 법은 땡볕에 시달리면서 저절로 터득하곤 하는 것이다.

 

쇠비름나물로 비벼 먹는 점심 식사

 

▲ 쇠비름나물. 쇠비름은 채송화과의 한해살이풀인데, 삶아서 된장으로 무치고 밥에 고추장으로 비벼 먹으면 독특한 풍미가 있다.
▲ 쇠비름은 채송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아침을 거른지라, 아내는 급하게 어제 뜯어온 쇠비름나물을 무쳤다. 밭이나 길가에서 자라는 이 한해살이풀은 우리 동네에서는 여름철 별식으로 먹었다. 쇠비름을 삶아서 된장에 무치고, 고추장을 넣어 밥을 비벼 먹는 것이다. 빨갛고 두툼한 줄기가 질길 듯하지만, 이 풀의 풍미는 입이 짧은 나도 만족시켰다.

 

여름이면 아내는 농약을 치지 않은 밭 주변에 나는 어린 쇠비름을 뜯어와서 별식으로 내놓곤 했다. 쇠비름은 모든 식물 중 오메가3 지방산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고 먹어도 부작용이 없는 수은까지 다량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쇠비름나물을 고추장으로 비벼 먹으며 아직 여름은 멀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며칠 장마가 이어진다고 하더니 날씨가 꽤 더워졌다. 서울에는 열대야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웬일인지 우리 집에는 새벽에 선선해지다 못해 선득해지기까지 한다. 그건 어쩌면 이번 여름이 만만치 않을 조짐인지도 모른다.

 

 

2022. 6.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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