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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3 텃밭 농사] ④ 멀칭 비닐 아래 숨은 마늘 싹을 찾았다

by 낮달2018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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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거의 25일 만에 찾은 마늘밭. 중간에 빠끔한 부분 외에는 마늘 싹이 제대로 자랐다.

꽤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지난달 14일에 싹을 확인하고 난 뒤, 근 한 달 가까이 텃밭을 찾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빴고, 아내의 수술 등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중간에 혼자서 잠깐 다른 일로 한번 다녀갔지만, 호박 두어 개를 따 왔을 뿐이었다.

 

25일 만인데, 마늘 싹이 꽤 자랐다. 여전히 군데군데 빠끔한 부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 아내가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마늘을 심은 자리다. 수술 뒤라 허리를 굽힐 수 없는 아내가 풀이라도 좀 뽑아달라고 해서 선걸음에 풀을 맸다. 그런데 보아하니 비어 있는 비닐 구멍 쪽이 도두룩해서 손을 넣어보니, 자란 싹이 비닐 아래로 뻗어 있었다. 구멍에 심긴 했는데, 자라는 방향이 구멍 쪽이 아니어서 밖으로 뻗지 못하고 비닐 안쪽에서 자란 것이었다.

▲ 제대로 싱싱하게 자란 마늘 싹들이 대견하다. 첫 농사라 미심쩍어했지만, 땅은 뿌리내린 작물을 너그러이 품어준 것이다.
▲ 맨 앞에 비어 있는 구멍은 김치냉장고에 넣었던 마늘을 심은 자리다. 내년 봄이면 이 마늘들은 얼치기 농부의 실수를 확인해 줄 것이다.
▲ 좀 색깔이 연하고 누워 있는 싹들은 자라는 방향이 구멍 쪽이 아니어서 밖으로 뻗지 못하고 비닐 안쪽에서 자란 것을 빼어 준 것이다.

그걸 일일이 끄집어내어 구멍으로 빼 주면서 보니, 비어 있는 구멍도 겉의 흙을 헤치니 막 자란 싹이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김치냉장고에 넣었던 마늘 심은 자리에서도 좀 늦게 싹을 틔워서 봄이 되면 다른 싹들과 함께 어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첫 농사인데, 심은 마늘이 싹을 틔우고, 싱싱하게 자랐다는 사실이 대견스럽다.

 

수술 뒤 몸 관리로 짬을 내기 어려웠지만, 아내는 조금만 더 추워지면 부직포를 덮어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작정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하니, 부직포 100㎝×20m에 4천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파는 데가 있어서 바로 주문했고, 물건은 다음날 도착했다. 창고에다 부직포를 올려놓고 날씨를 보아가며 덮기로 했다.

 

아내는 어린 호박 3개에다, 제법 큰 호박은 2개를 땄다. 큰 호박은 현관에 묵혀서 늙은 호박으로 만들어 나중에 범벅을 끓여 먹자고 했다. 글쎄, 해마다 묵혔다가 결국 버린 늙은 호박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게 과연 될까 싶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 인터넷에서 소량으로 판매하는 부직포를 4천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샀다.
▲ 장독대 밭의 푸성귀들. 왼쪽 두 줄이 조선배추와 유채고, 오른쪽 아직 덜 자란 것은 시금치다. 시금치엔 비료를 뿌려주었다.
▲ 뜰에 올린 오늘의 수확물. 어린 호박은 2022년 농사의 마지막 수확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풋나물은 곧 식탁에 오를 것이다.
▲ 현관 안쪽에 보관한 늙은 호박 후보들. 묵혀서 호박 범벅을 끓여 먹기로 했는데, 글쎄다. 그게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장독대 앞 밭에서 아직 덜 자란 시금치 주변에 비료를 치고 물을 주었다. 아내는 조선 배추와 유채를 솎아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준비 없이 그냥 둘러보러 왔다가 우리는 또 호박과 푸성귀를 따서 돌아가게 되었다.  지난 한 달 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건만, 우리 텃밭은 오늘도 임자에게 제가 품은 것들을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다. 

 

 

2022. 11.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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