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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2 텃밭 농사 ④] 땅은 늘 ‘들인 땀만큼 돌려준다’

by 낮달2018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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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보름 찾지 않은 밭은 마치 묵정밭처럼 버려져 있었다.

텃밭 농사 세 번째 이야기를 쓰고 두 달이 훌쩍 흘렀다. 우리 내외는 한 주나 열흘에 한 번쯤 텃밭을 들러 가지나 풋고추, 가물에 콩 나듯 하는 호박을 따 갔을 뿐, 편안하게 잘 지냈다. 고추 농사를 그만두고 풋고추나 따 먹자며 고추 서너 그루만 심은 덕분이다.

 

소꿉장난 같은 농사긴 하여도, 우리의 고추 농사 이력은 10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농사를 지으며 쑥쑥 자라나는 고추를 기뻐하고 병충해에 상심하면서 익은 고추를 따 그걸 말리고 하는 과정이 만만찮았다. 그러나 병충해와 싸우며 스무 근 넘게 고춧가루를 수확한 지난 이태가 우리 고추 농사의 전성기였다. 그래서 한 해쯤 쉬어가는 해로 올해를 시작한 것이었다.

▲ 손바닥만 한 땅에 심은 부추가 꽃을 피웠다.
▲ 고추밭 옆 담 아래에 심은 취나물이 꽃을 피웠다. 어느새 가을이 온 것이다.

한가위를 앞두고 근 2주 만에 텃밭에 들렀다. 지난달 26일에 예초기로 집안의 풀을 베고 나서 처음이었다. 집안의 잡초는 뽑는 게 맞지만,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하니, 나는 벌초에 쓰려고 트렁크에 실어두었던 예초기를 지고 한바탕 마당 안을 돌면서 풀을 베었다.

 

아내는 심는 흉내만 조금 내고 만 고구마와 땅콩의 수확 시기를 궁금해했다. 고구마를 언제 심었는지 모르겠다고 성화여서 내가 일기를 찾아보고 4월 29일이라고 알려주었더니 넉 달이면 캐는 게 맞는다면서 명절 쇠고 와서 캐자고 했다. 아무렴, 그렇게 하자고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나는 속으로 나면 나고 안 나면 그만이지, 왜 그리 안달복달을 하는지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보름도 전에 예초기로 베어낸 흔적이 남아 있는 마당의 잡초들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늘 그러듯 마구 덤불을 뻗은 호박 줄기를 들추면서 호박 덩이를 찾았지만, 모두가 주먹보다 적은 놈뿐이었다. 다음에 와서 따 가지, 하고 아쉬움을 달래지만, 그놈은 다음에 오면 꼭지가 빠지고 없을지 모른다.

▲ 열매를 맺은 호박. 며칠 후에 이놈은 영글어져 있을까.
▲ 한 줄만 캔 고구마. 꿀고구마는 건강한 선홍색의 빛깔이 좋았다.
▲ 두어 포기 뽑아본 땅콩. 비록 씨알은 작아도 충분히 익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 껍질을 까 보니 땅콩은 엔간히 익었다.
▲ 베어낸 부추. 꽃이 피었다. 한쪽엔 캐낸 땅콩.
▲ 가지의 생산성은 우리가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 중에서 단연 최고다. 풋고추도 조금 땄다.

나는 너무 많이 달려서 가지가 처진 가지를 예닐곱 개 땄고, 아내는 고추를 조금 따고, 그 뒷줄의 대파를 한 움큼 뽑고, 꽃이 핀 부추도 베었다. 그리고 제대로 익었나, 하면서 땅콩 두어 포기를 뽑았다. 크지는 않아도 다닥다닥 달린 땅콩을 따고, 나중에 껍질까지 벗겨 보더니 엔간히 익었네, 이것도 추석 쇠고 캐자고 말했다.

 

장독대 앞의 밭엔 무성해진 고구마 덤불이 온 밭을 뒤덮고 있다. 개중에도 땅콩이 몇 포기 자라고 있을 거였다. 한 줄만 캐보자고 아내가 덤불을 걷어내어 가면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거름이 실하면 안 되지만, 뿌린 거름을 걷어낼 수 없어 그냥 심은 고구마는 비교적 잘 자라 새빨간, 선홍의 열매(열매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를 드러냈다.

 

정말 대여섯 포기쯤 캐고, 아내는 이거로도 추석에 먹을 고구마전은 하고도 남겠다며 기꺼워했다. 창고에 쟁여둔 검정 비닐봉지를 가져와 수확한 것들을 담기 시작하니, 고구마, 고추, 가지, 땅콩, 대파 등이 각각 한 봉지씩이었다.

 

그걸 차에 싣고 돌아오면서 나는 좀 푸근해져서 “밭은 이렇게 우리가 정성 들인 만큼 돌려주는구나! 빈 거로 왔다가 봉지봉지 들고서 가네”하고 말했고, 아내는 “아무렴, 말해 무엇하우!”하고 받았다. 그렇다. 비록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일군 농사지만, 땅은 받은 만큼 우리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2022. 9. 8. 낮달

 

[2022 텃밭 농사 ①] 고추 농사는 쉬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2022 텃밭 농사 ②] 제대로 돌보지 않아도 작물은 제힘으로 자란다

[2022 텃밭 농사 ③] 감자 캐기, 그리고 가지와 호박을 처음 따다

[2022 텃밭 농사 ⑤] 고구마와 땅콩 수확, 올 농사는 이제 파장

[2022 텃밭 농사 ⑥] 가을 들자, 호박이 부지런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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