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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3 텃밭 농사] ③ 홍산 마늘, 싹은 올라왔는데……

by 낮달2018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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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마늘밭. 홍산마늘이 싹이 났다. 그런데 중간에 빈 부분이 간간이 눈에 띈다. 아내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마늘을 심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홍산 마늘의 발아

 

마늘 심은 지 9일째인 어제, 텃밭을 찾았다. 드디어 유공 비닐의 구멍마다 마늘 싹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싹을 틔우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다. 아내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마늘을 심은 부분이 그렇다면서, 냉장고에 보관한 마늘은 싹이 안 트는가 보다, 자못 실망하는 눈치였다. 나는 기다려보자, 그러나 싹이 안 트면 방법 없다,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했다.

 

조금 있다가 아내는 비닐 구멍 안을 살펴보더니, 밑에 싹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첫 농사란 건 언제나 힘든 법이다. 마늘 농사 유튜브를 살펴보니 한 2주쯤 지나면 싹이 거의 다 올라오는데, 마늘 싹이 비닐 아래 가려져 있을 수도 있으니 찾아서 빛을 보게 해 줘야 한단다.

 

▲ 빈 자리가 커 보인다. 일주일쯤 말미를 더 주면 빈 구멍에서도 싹이 올라올까.
▲ 장독대 앞의텃밭에 뿌린 씨앗이 새싹을 틔웠다. 맨 오른쪽은 시금치, 중앙의 두 줄은 유채와 조선 배추다.
▲ 오늘도 호박 덤불에서는 화수분처럼 호박을 달고 있다.

개운치 않은 느낌이라도 어쩔 수 없다. 얼마간 시간을 더 주고 기다려볼 수밖에. 장독대 옆 텃밭에는 지난번에 씨를 뿌린 푸성귀의 새싹이 가지런히 싹을 틔웠다. 아내는 시금치와 유채(경상도에선 ‘일본말로 중국에서 온 잎을 먹는 채소’라는 뜻의 ‘시나나빠しななっぱ’로 쓰거나 ‘삼동초’라고 부른다), 그리고 조선 배추씨를 뿌려두었는데, 그게 참하게 싹을 틔운 것이다.

 

푸성귀를 거두다

 

아내는 새싹을 솎아 한 봉지의 나물을 챙겼다. 그리고 마당에 무성하게 벋어나간 덤불을 일일이 들추어가며 호박을 대여섯 개 땄다. 밭을 찾은 지 일주일이 넘은 탓에 맞춤한 크기를 넘은 호박이 태반이다. 그러나 그것도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면 필요할 때 쏠쏠하게 쓸 수 있다며 아내는 담담했다.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차리면서 아내는 된장을 끓여내고, 솎아온 새싹을 씻어서 내놓았다. 상추나, 배추는 물론이고, 채소의 새싹을 솎아오면 우리 집에서는 이걸 넉넉하게 넣고 된장과 고추장으로 밥을 비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그리해 주셨고, 자라서는 아내가 그렇게 해 준다.

 

어린싹은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았으니 ‘유기농’ 채소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싹을 넣어, 내가 늘 ‘명품’이라고 기리는 우리 된장과 고추장(우리 집에선 장류를 모두 직접 담가서 먹는다)으로 버무린 밥은 가히 꿀맛이다. 나는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 유채의 새싹. 부드러워서 된장에 비벼 먹으면 최고다.
▲ 내가 가끔은 '명품'이라고 말하는 우리 집 된장.
▲ 된장과 고추장으로 비빈 풋잎 비빔밥. 담백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일품이었다.

미각의 착오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우리 집 된장은 어릴 적 먹던 그 맛 그대로 어머니에게서 아내에게 전수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내는 어머니가 끓여내던 된장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을 먹으면서 내가 미각을 바꾸지 않고 70년 가까이 살게 해 준 아내의 은공을 가끔 느꺼워한다.

 

우리 집 된장, 그 오래된 그리움

 

장모님이 살아계실 적인 장모님이 쑤어주신 메주로 장을 담갔고, 돌아가신 뒤에는 아파트에서 메주를 띄울 수 없어, 꼼꼼히 골라서 메주를 사고 집에서 직접 장을 담근다. 이제껏 문제없이 장맛을 유지해 왔는데, 올 3월에는 된장 맛이 낯설었다. 한 입만 축이고도 나는 단박에 그걸 눈치챘다. 아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내는 낙심한 기색이 역력했고,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얼마간은 익숙한 입맛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조바심 같은 거였다. 나는 짐짓 대범하게 까짓것, 정 안 되면 버리지, 뭐 하고 위로했지만, 여전히 기분은 썼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반전이 일어났다. 아내는 제 나름대로 본래의 된장 맛을 찾으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다. 콩을 삶아서 넣고, 변해버린 된장 맛을 돌이키려고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 정성이 맛을 되돌린 것일까. 숙성이 이루어지면서 낯선 맛은 가시고, 익숙한 맛이 되돌아온 것이다. 그게 우리 된장이 ‘명품’(물론, 이는 내 주관적 미각일 뿐이다)이 된 내력이다.

 

그것은 옛 맛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새로운 미각을 선사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거짓말 보태지 않고, 된장만 있어도 식탁에서 행복해한다. 어릴 적 놀다 지치고 시장해져서 부엌의 어머니를 찾아가면 어머닌 내 손바닥에 식은밥 한 덩이, 그리고 된장 한 숟갈을 부어 주곤 하셨다. 그걸 삼키고 씹던 1960년대의 어느 봄날의 풍경을 나는 그리움 없이 떠올릴 수 없다.

 

 

2022. 10.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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