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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④ 춘분, 태양은 적도 위를 바로 비추고

by 낮달2018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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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매화 옆에 핀 라일락 꽃눈, 라일락이 피려면 아직도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21일(2024년은 3월 20일)은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 경칩(驚蟄)과 청명(淸明)의 중간에 드는 절기인 춘분이다. 태양은 적도(赤道)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를 파종한다.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에 바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음력 2월 중에는 매섭고 찬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생긴 까닭이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꽃샘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꽃샘추위도

 

▲ 춘분 때의 태양의 위치.

춘분을 즈음한 때의 속신(俗信)도 적지 않다. 모두 농사의 결과나 일기를 과학적으로 내다보지 못하던 때의 앞날을 예측해 보고자 한 안간힘 같은 것이다. 당연히 과학보다는 주술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런 예측을 통해서 앞날을 대비하고자 한 노력과 지혜의 일부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날 날씨를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수한(水旱, 장마와 가뭄)을 점치기도 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따르면,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이날은 어두워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해가 뜰 때 정동(正東) 쪽에 푸른 구름 기운이 있으면 보리에 적당하여 보리 풍년이 들고, 만약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한다.

 

이날 운기(雲氣)를 보아, ()이면 충해(蟲害), ()이면 가뭄, ()이면 수해, ()이면 풍년이 된다고 점친다. 또 이날 동풍이 불면 보리값이 내리고 보리 풍년이 들며,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하였다.

 

서양에서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부터 봄으로 보며 춘분은 기독교에서 역법상 부활절 계산의 기준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일본에서는 춘분과 추분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계절 변화를 앞두고 자연을 기리며, 생명을 소중히 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있어서라고 한다.

▲ 늘 오르는 산에서 만난 진달래 꽃망울. 이미 꽃은 피기 시작했다.
▲ 피는지 모르게 핀 생강나무꽃. 가지 끝 갈색의 잎눈에서 잎이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꽃이 이르다고 하는데 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볕이 잘 드는 지역에는 꽃이 이르고, 그늘진 산의 북쪽 사면에는 개화가 늦어지는 것이건만 가끔 그런 착시가 어지럽다. 매화는 진작에 피었고, 어저께 산에는 망울져 있던 진달래도 피었다. 정작 생강나무꽃이 오히려 더딘 느낌이다.

 

지난주에 우리 내외는 시골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선산 오일장에 가서 할머니가 파는, 재에 담아두었던 씨감자를 샀다. 씨눈을 중심으로 잘린 데다가 재에 묻혀 생기를 잃은 감자 쪽을 심으면서도 연신 우리는 이게 싹이나 틀까 근심하였다. 2, 30일 후에 나오는 싹을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선산 오일장에서 산 씨감자. 잘라서 재에 담아둔 것이어어서 우리는 밭에다 바로 삼으면 되었다.

올봄은 유난히 따뜻하여 오는 봄을 의심할 새가 없었다. 그러나 가끔 꽃샘추위가 번갈아 찾아오는 여느 봄에는 조금은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봄을 기다리곤 했다. 최하림 시인이 노래한 춘분을 읽으면서 머리를 주억이는 까닭이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

 

봄은 때로 하느님을 찾을 만큼 춥다가도 버들가지가 보오얗게 움터오르고, 아이들이 부르는 강아지노래와 함께 온다. ‘왜 이리 봄이 빨리 오냐고 근심하다가 혹시 찾아온 봄이 뒷걸음이라도 칠까 봐 시인은 숨을 죽이고속삭인다. ‘봄이 왔구나라고. 춘분 무렵에 찾아오는 봄은 그런 것이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어저께는 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서원 안팎에는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고, 봄나들이 나온 아이들과 어른들로 붐볐다. 아내와 함께 나는 서원 옆 시냇가에 서서 하오의 햇살이 부서지는 서원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관련 글 : 한강 정구의 백매원’, 100년 뒤 사람이 즐기다]

▲ 매화가 아득하게 핀 성주 회연서원. 아무 뒷날 조경을 하면서 심은 거겠지만 매화는 서원에 제격이다.

산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살구나무는 이제 겨우 씨눈을 틔우고 있지만, 그게 망울을 맺고 피어나는 것은 내 상상을 앞지를 게 틀림없다. 다음 절기 청명은 다음 달 5, 식목일과 겹친다. 벚꽃의 개화도 이르다 하니, 그때 이미 봄은 농염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을 터이다.

 

 

2019. 3. 20. 낮달

 

[()]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봄 절기

입춘, 봄이 멀지 않았다

우수(雨水), ‘봄바람새싹으로 깨어나는 봄

경칩 - , 우썩우썩 깨어나다

청명(淸明), 난만한 꽃의 향연, ‘한식도 이어진다

곡우(穀雨), 봄비는 촉촉이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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