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눈이 비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
2월 19일(2019년 기준, 2024년도 같음)은 우수(雨水), 입춘에 이은 봄의 두 번째 절기다. ‘비 우(雨)’에 ‘물 수(水)’, 말 그대로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고 하는 뜻이니 바야흐로 날씨가 풀려서 봄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때다.
옛 세시기(歲時記)에 “입춘이 지나면 동해 동풍(東風)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우수 이후 경칩까지 15일 동안의 기간을 삼후(三候)로 닷새씩 세분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첫 5일 동안[초후(初候)]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중후(中候)]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말후(末候)]은 초목에 싹이 튼다.
첫 닷새엔 우수 무렵엔 얼었던 강이 녹게 되면서 수달의 물고기 사냥이 쉬워진다. 다음 닷새엔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가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닷새간에는 봄이 완연해져서 풀과 나무에 싹이 트는 것이다.
예부터 “우수 경칩이 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라고 한 것은 이 시기를 지내며 절기가 봄의 문턱을 넘고 있음을 이른 것이다. 겨울 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이 시나브로 짙어져 가는 절기다. 산과 들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우수 무렵에 비로소 봄을 조금씩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해빙(解氷)의 절기
‘얼음이 녹는다’는 뜻은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겨우내 멈추어져 있었던 성장과 생명의 활기가 비로소 미동을 시작함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동장군의 시대가 끝나고 해빙(解氷)의 시절이 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수가 왔다고 금방 추위가 가시는 것은 아니다. 봄소식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꽃샘추위가 몰려오곤 하며 철 지난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말로 이제 ‘봄은 대세’가 아니던가. 정지용 시인은 시 ‘춘설(春雪)’에서 그런 우수 무렵의 감회를 감각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인은 아침에 문을 열고 밤새 내린 눈을 보면서 온 누리에 내린 봄기운을 느끼고자 비록 추위가 남았는데도 핫옷(솜을 넣어 만든 옷)을 벗어던지려 하는 것이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논·밭두렁 태우기는 겨우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각종 벌레를 구제하고자 하는 꽤 오래된 풍습이었다. 우리 어릴 적에는 볕이 따사로운 한낮이면 들에서 논두렁을 태우는 농부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논·밭두렁을 태우다 산불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행정기관에서는 논·밭두렁 태우기를 자제해 달라는 홍보를 하곤 했다.
그러나 논·밭두렁의 미세곤충은 해충(11%)보다 익충(89%)이 훨씬 많다고 한다. 따라서 논·밭두렁을 태우면 해충보다 익충이 더 많이 없어지는 셈이니 농사에 득이 되지 않는 셈이다. 태워버린 논·밭두렁의 생태계는 60일이 지나야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해 최소한 75일은 되어야 원상태로 복원되므로 친환경 농업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대보름과 겹치는 우수
올(2019년, 2024년은 24일) 우수는 정월 대보름과 겹친다. 대보름은 한가위와 함께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일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 농경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차고 이지러지길 거듭하는 달의 변화에서 꽉 찬 만월은 ‘풍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음양 사상에 따르면 달은 ‘음(陰)’, 즉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구조는 ‘달-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생산력의 상징인 것이다. 대보름에 풍요 주술의 일부로서 줄다리기와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 지신밟기가 치러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관련 글 : 대보름, ‘액은 보내고 복은 부른다’]
따뜻한 날이 계속되나 했더니 간간이 찬바람이 이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얼음이 녹고, 기해년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 지나면 봄은 더는 전언(傳言)에 그치지 않을 터이다. 창 너머로 북봉산을 내다보면서 그 산 가득 봄기운을 그려본다.
2019. 2. 18.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봄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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