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50년 넘게 자연 그대로 보전해 온 광릉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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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 주말, 오래 별러 온 광릉숲을 다녀왔다. 가물에 콩 나듯 서울을 드나들면서 어느 날부터 서울의 고궁을 차례로 가보고, 자투리 시간을 내어 박물관을 다녀오기 시작했었다. 간송미술관과 리움미술관도 그 목록의 맨 위에 있었으나, 리움은 그 전날 다녀왔고, 간송은 휴관 중이라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광릉숲이 서울의 경계를 넘으면 이내 닿는 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광릉숲까지는 54km, 차로 한 시간 반쯤 걸렸다. 아들 녀석이 이틀 전에 국립수목원(아래 수목원) 누리집에서 주차장 이용 차량을 예약해 우리는 정문을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떠나서 만나는 공간으로는 ‘자연’만 한 데가 없다
수목원에는 인터넷으로 주차장 이용 차량을 사전 예약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고 미예약 차량은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다. 하루 예약이 가능한 차량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각각 300대 이하라고 한다. 물론 대중교통·자전거·보행으로 오는 이들은 예약 없이 현장 입장할 수 있다.(누리집 ‘관람 안내’ 참고)
수목원을 내 답사 목록에 올린 지는 꽤 오래됐다. 언젠가 일간지에서 ‘식물의 한살이’를 설명해 주는 숲 해설사의 이야기를 읽다가 ‘꽂히면서’였다. 그때 나는 잠깐 퇴직 뒤 숲 해설사가 된 자기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느긋하게 답사객을 기다리는 참을성 하나 갖추지 못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으면서 그것을 상상으로 끝내버렸다.
여행이든 답사든, 떠나서 만나는 공간으로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만 한 데가 없다. 흔히들 놀거리나 먹을거리가 잔뜩 있는 유원지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게을러 직접 몸으로 놀기보다는 풍경을 기웃거리거나 그 풍경 속으로 잠기는 걸 즐긴다. 지난 4월에 다녀온 제주 여행에서 상기도 새록새록 눈에 밟히는 풍경이 비자나무숲과 사려니숲인 것은 그래서이다.(관련 기사 : 제주 여행만 여섯 번째, 이 대단한 숲을 왜 지금 알았을까)
주차장과 매표소 주변에 우뚝 솟은 나무와 울창한 숲의 모습이 이미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는 방문자센터를 지나 천천히 수목원의 푸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목원 방문은 대구와 경남수목원, 그리고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이어 네 번째였다. (관련 기사 :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 여름휴가 대신 가면 딱이네)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선정
국립수목원이 임업연구원 중부 임업시험장에서 독립하여 국내 최고의 산림 생물종 연구기관으로 신설된 것은 1999년이었다. 수목원은 1920년대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산림 생물종 연구의 전통을 이으며 특히 산림생물 주권 확보에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다. 또, 조선조 세조 대왕 능림(陵林)으로 지정된 1468년 이래로 550년 넘게 자연 그대로 보전돼 온 광릉숲을 보호·관리하고 있다.
수목원에는 1124ha(약 340만 평)의 면적에 총 6752종의 식물종과 4487종의 서식 동물, 20종의 천연기념물, 14종의 광릉 특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2010년 6월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 : 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국제조정이사회에서 광릉숲을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다.(아래 국립수목원 현황 참조)
광릉숲은 설악산(1982), 제주도(2002), 신안 다도해(2009)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한반도에서는 백두산(1989), 구월산(2004), 묘향산(2005)에 에어 7번째로 생물권보전지역에 지정되었다. 광릉(光陵)은 남양주에 있는,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으로 그곳을 포함한 24,465ha의 숲을 광릉숲이라 이른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수목원과 광릉숲을 같은 뜻으로 쓰고 있지만, 실제 광릉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수목원의 면적은 전체 광릉숲의 4.6%에 불과하다.
광릉숲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화재의 피해 없이 550여 년간 자연림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 광릉숲이 천연활엽수림인 서어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는 온대 북부의 대표적인 극상림(極相林 : 구성 수종이나 양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안정된 산림)인 이유다.
‘국립’의 수목원에 들른 것은 백두대간수목원에 이어 두 번째인데,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시 ‘국립’의 격을 갖춘 수목원이라고, 2018년 개원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여기 비기기는 어렵겠다고 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550년간 보존된 온대 북부의 대표적인 극상림
550년간 제대로 보존된 숲이라면 그 격조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수목원의 전문 전시원은 1984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87년에 완공했다. 식물의 용도, 분류학적 특성 또는 생육 특성에 따라 조성한 전문 전시원은 수생식물원, 식·약용식물원 등 24개다. 수목원은 총 102ha의 면적에 3,873종류의 식물을 심어 일반 방문객은 물론 전문가들에게 현장학습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 전시원은 관상 가치가 높은 나무를 모은 관상수원, 아름다운 꽃나무를 모은 화목원, 습지에 생육하는 식물을 모아놓은 습지식물원 이외에도 수생식물원, 식·약용식물원, 희귀·특산식물 보존원, 소리 정원, 덩굴식물원, 손으로 보는 식물원, 난대식물 온실 등으로 구성되었다.
난대식물 온실 뒤의 산림박물관은 우리나라 산림과 임업의 역사와 현황, 미래를 설명하는 각종 임업 사료와 유물, 목제품 등 4,900점에 이르는 자료들이 전시하고 있는데, 1987년 개관했다. 박물관 뒤쪽에는 산림생물 표본관( 2003), 열대식물 자원연구센터(2008) 등의 시설이 있다.
우리는 안내도에 얽매이지 않고 곳곳에 서 있는 전시원 이름과 이정표를 가늠자 삼아 천천히 수목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뜨고 풍경을 살필 필요도, 바삐 길을 서두를 필요도, 반드시 찾아야 할 곳도 없다. 그게 숲속에 든 사람들이 저도 몰래 익히는 느긋한 여유다. 어딜 가도 비슷하게 펼쳐지는 푸른 숲에 온전히 마음과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진입로로 들어올 때만 해도 길을 가득 메우던 탐방객들은 어느 골짜기, 어느 숲으로 들었는지 비어 있는 숲길에 문득 우리만 남겨져 있었다. 사위는 조용했고, 우리가 나누는 두런거림이 숲으로 나직이 퍼졌다가 사라지곤 했다. 가끔 만나는 탐방객들도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관상수원을 거쳐 양치식물원을 둘러보면서 아내와 나는 고사리가 그렇게 종류가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산림박물관에서 잠깐 쉰 다음 우리는 숲 생태 관찰로(Eco-trail)를 걸었다. 숲을 있는 그대로,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이 데크 길에서는 태풍에 쓰러진 전나무의 천이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그 길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통나무집(육림호 휴게소) 옆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 육림호에서 우리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잠깐 더 쉬었다. 수목원은 어디나 사람들이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쉼터다. 그늘은 두껍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건 콘크리트 숲의 후덥지근한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청량한 대기다. 길고 깊게 숨을 내쉴 때마다 육신의 정화(淨化)를 실감할 수 있다.
통나무집 앞은 침엽수원, 늘 푸른 바늘잎나무(침엽수)인 섬잣나무, 솔송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등 자생식물과 조경수로 인기가 있는 금반향나무 등 130여 종이 심겨 있었다. 침엽수림은 세계의 펄프와 목재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으나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점차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하니 기후 위기는 현재형이다.
90살 넘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침엽수림 옆으로는 전나무 숲이었다. 수목원의 전나무 숲은 1927년께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종자를 증식하여 조림한 곳으로 나무 나이는 모두 90년 이상이다. 전체 약 200m 구간의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 전나무 숲길,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 전나무 숲길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이다.
사람이 숲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물질과 향기 덕택이다. 이 물질을 ‘피톤치드’라고 하는데, 살균작용을 하는 이 화합물은 숲에서 주로 휘발성의 형태로 존재해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기도 한다. 그런데 피톤치드는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뿜어내는 물질이니 이타적인 생물은 ‘식물’뿐이라는 건 진실일지 모른다.
전나무 숲길은 길지 않지만, 숲길 끝 쉼터에서 우리는 한참 쉬었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천천히 수목원을 빠져나왔다. 나는 잠깐, 광릉숲 근처에 숙소를 마련하고 한 2박 3일쯤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말았다.
언제 광릉숲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내외에겐 수목원 방문은 처음이면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숲의 생명에 비기면 인간의 수명이란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것인가 말이다. 우리는 아쉬움 속에 광릉숲, 그 한가운데의 국립수목원을 떠났다.
2022. 5.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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