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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난 제주 ①] 천년의 숲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비자나무숲(비자림)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다. 제주도를 처음 찾은 것은 1988년 여름, 당시 근무하던 학교 교직원 친목 여행으로였다. 공항 청사를 나서자, 야자수 몇 그루가 눈에 띄었는데 그때 느낀, ‘제주도에 왔다’는 실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탄 비행기도 처음이었었다.
이듬해 학교를 떠나 5년여를 거리로 떠돌았으니, 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다시 제주를 찾게 된 것은 20여 년 뒤인 2007년이다. 그것도 담임으로 고2 여학생을 인솔한 수학여행으로였는데 이는 2008년과 2009년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제주도 여행은 2010년 2월, 숙소와 렌터카를 제공하는 주유소의 쿠폰 당첨으로 떠난 가족여행이었다.
첫 여행의 여정은 한라산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수학여행의 여정은 용머리 해안, 성산 일출봉, 섭지코지, 천지연폭포, 한림공원, 민속자연사박물관, 산방산, 항몽유적지, 용두암 등 늘 그만그만했다. 가족여행도 그중 인상적이었던 유명 관광지를 답습하는 데 그쳤다.
여섯 번째 제주여행에서 마침내 ‘천년의 숲’을 만나다
그리고 꼭 12년 만에 여섯 번째로 제주를 찾으면서 나는 그간 미처 들르지 못한 데를 여정의 앞자리에 챙겨두었다. 첫날, 시간에 쫓겨 엉거주춤 우도를 다녀온 데 이어 둘째 날의 여정은 비자림과 사려니숲길이었다. 미처 들르지 못한 데라고 했지만, 기억하지 못할 뿐 잠깐이라도 들른 곳이 아닐까, 나는 긴가민가했다.
비자림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도 헛갈리던 나는 숲으로 드는 진입로의 후박나무와 구실잣밤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면서 여기가 한 번도 오지 못한 곳임을 확인했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비자나무숲은 한라산 동쪽에서 뻗어 내려간 종달~한동 곶자왈 지역의 중심에 있는 평지 숲이다.
숲은 남북 방향(길이 1.4km, 폭 0.6km)으로 길게 형성된 타원형 모양이며 448,758㎡(13만6천여 평) 면적에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자생해 있다. 단일수종으로 지름이 50~110cm, 높이가 3~17m, 300∼600살 정도로 추정하는 거목들이 군집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숲이다. 이 숲은 규모와 학술 가치가 커 1993년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비자나무 단일수종 2800여 그루 군집한 비자림
비자나무는 주목(朱木)과의 상록침엽수로,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부에서만 자라는 귀한 나무다. 옛날 여인네들이 머리를 빗을 때 쓰던 ‘참빗’ 같은 모양이어서 ‘비자나무’가 되었다. 비자나무는 재질이 치밀하고 광택이 있으며 향기로워 건축재, 가구재로 귀히 쓰였을 뿐 아니라 바둑판, 장기판, 장기쪽, 염주 등에 쓰였다. 특히 습기에 잘 견디었으므로 고급 관재(棺材), 조선용재(造船用材)로도 유명했다.
중국의 약초학 서적 <본초강목>에서는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기생충을 없애고 뱀이나 벌레에 쏘인 독을 치료한다”고 썼다. 또 우리나라 의서 <동의보감>에서는 ‘비자를 하루 일곱 개씩 7일간 먹으면 촌충이 없어진다’라는 처방을 기록했으니 비자는 약재로 효능이 있어 널리 쓰인 것이다.
이곳에 비자나무숲이 이루어진 유래는 마을의 무제(巫祭)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라산 1천 m 이상 고지대에 자생하는 비자나무 씨앗이 계곡물에 떠내려와 이 숲에서 싹텄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사실에 더 가까울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비자나무 열매를 채집해서 궁중에 바쳤는데 이를 제주 목사가 관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 최대 비자나무숲 앞, 인간의 ‘겸허’
비자나무는 나이테도 잘 보이지 않고, 열매로 자라는 데만 2년이 걸릴 만큼 느리게 자라는 나무다. 300~600살로 추정하는데도 그 크기가 압도하지 않는 것은 100년 동안 지름이 겨우 20cm 정도밖에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비자림의 나무들은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하는데, 1번 나무는 고려 명종 20년(1189년)에 심은 나무다.
키 14m에 둘레가 2m나 되는 나무는 보기에도 ‘1번 나무’의 품격이 있다. 800살을 진작 넘기면서 2000년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되어 비자림의 대표나무가 되었다. 이 숲이 ‘천년의 숲’이라는 사실을, 나무들은 그들이 견뎌온 세월로 보증하고 있는 셈이다.
천년의 숲 숲길은 왕복 40~50분이 걸리는 짧은 ‘송이길’과 60~80분의 긴 ‘오솔길’로 이루어져 있다. 비자나무 특유의 향을 코끝에 느끼며 걷는 숲길은 태고의 원시림을 떠올리게 했다. 선선한 숲 그늘에 서린 습기와 어우러진 비자나무 향과 함께 검푸르게 빛나는 고사리밭, 수백 년 연륜이 밴 나무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나무의 일부인 것처럼 짙게 낀 이끼 탓이었을까, 나는 시나브로 낯선 시간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자나무를 덮고 있는 것은 이끼만이 아니다. 콩짜개덩굴, 마삭줄, 송악 등 덩굴식물들이 비자나무들을 칭칭 감고 있고 숲 바닥에는 고비와 관중, 고사리 등 다양한 양치식물들이 뒤덮여 있다. 빽빽이 들어선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한 뼘의 하늘도 허락하지 않은 가운데 간간이 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치는 모습은 가히 원시림의 풍모다. 숲을 천천히 걸으니 막연하게나마 거기 서린 수백 년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벼락 맞은 비자나무와 연리목 비자나무를 거쳐 새천년 비자나무를 돌아오면서 우리의 경탄은 이어졌다. 9시 개장과 함께 들어온지라 인적 드문 숲은 고즈넉했고 우리는 숨을 고르면서 한동안 말없이 숲을 바라보기만 했다.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왜소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실감난다고 했더니 아내는 “어쩜!”하고 힘주어 동의해 주었다.
수백 살 먹은 나무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암괴석도, 깎아지른 낭떠러지도 없었는데도 우리는 문득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있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을 느껴서일까. 자연의 거대한 침묵 앞에서 비로소 인간은 겸허해지는 것일까.
숲길을 돌아 나오는데 이끼 낀 양치식물로 둘러싸인 ‘숨골’이 눈에 띄었다. 강이 없는 제주에서는 물이 생명처럼 중요했다. 그래서 빗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구멍을 숨골이라고 불렀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암석 틈 사이를 지나면서 정화되어 용천수를 이룬다. 숨골 내부를 지나오는 공기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므로 여름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뿜어낸다. 숨골은 이 숲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빽빽한 하층 식생과 덩굴로 원시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던 이 숲은 1999년 숲 가꾸기 사업 대상이 된 이후 비자나무만 주로 보이는 숲이 됐다. 덩굴을 제거하고 산책로를 깔면서 천연림은 자취를 감추고 조림 숲이 된 비자림은 탐방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개입’은 ‘숲’에 얼마쯤 허용해야 하나
왕조 시대를 거쳐 숲이 비자나무 단순림으로 지금껏 유지되어 온 것은 숲을 ‘가꾸어 온’ 덕분이다. 숲은 내버려 두면 송악, 줄사철, 등수국, 마삭줄 등 덩굴식물이 비자나무를 덮어서 광합성을 못 하거나 가지가 부러진다. 그리고 빨리 자라는 후박나무와 아왜나무가 금세 숲을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개입’은 숲에 얼마쯤 허용되어야 하는가는 여전히 비자림을 두고 벌이는 논란이 되는 것은 그래서다.
비자나무숲 생육환경 개선사업(2019)을 두고 비자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다른 나무 벌채는 숲 보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견해와 숲을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전문가 사이에서도 부딪히기도 했다. “다양한 식생이 존재해야 숲으로서 가치가 있다. 비자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베어내면 안 된다”라는 의견과 후박나무 등 활엽수가 햇빛을 가리는 등 비자나무 생육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세계유산본부 쪽 판단의 틈새는 꽤 크다.
단순림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명성은 허명이 아니다. 비자림 숲에는 풍란, 차걸이난 등 희귀한 난초 식물을 포함한 초본류 140여 종이 자생한다. 또 비자나무와 더불어 생달나무, 오동나무, 후박나무, 단풍나무 등과 같은 목본류 100여 종의 자생식물들이 공존한다. 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이 아름답고 장엄한 숲의 선물이다.
숲을 돌아 내려오는 길, 돌담 너머로 늘어뜨린 비자나무 가지에 매달린 가느다란 바늘잎이 햇볕에 반짝였다. 끝이 뾰족한 바늘잎은 수명이 2~3년에 그치는 소나무와 잣나무 잎과는 달리 6~7년이나 된다고 한다. 바늘잎 위로 꽃이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다.
담 위로 휘영청 몸을 뉜 비자나무 아래로 걷는 길은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라는 찬사가 오히려 무색했다. 일정이 없다면 얼마든지 더 머물러도 좋은 그 길, 언제 다시 오자고 했더니 아내가 그러자고,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자고 하면서 우리는 평대리 천년의 비자나무숲을 떠났다.
2022. 4. 30. 낮달
덧붙이는 글
다녀와서 비자림에는 15분마다 숲 해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설을 들으며 비자림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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