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1일 차 (2022.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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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섭지코지는 내 여정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들른 곳인데다가 특별한 감흥을 받은 곳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우도에서 나와 숙소에 바로 들어가려 했더니, 아내가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엔 일러서 들른 곳이 섭지코지였다.
섭지코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의 돌출한 해안 지형이다. ‘섭지’란,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라는 뜻이며, ‘코지’는 육지에서 바다로 톡 튀어나온 ‘곶’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낯설면서도 인상적인 지명이어서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제주 동쪽 해안인 섭지코지는 기막힌 해안 절경과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란 유채꽃밭으로 유명하다. 지척에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들머리의 신양 해변 백사장, 풀을 뜯는 제주조랑말, 바위로 둘러친 해안절벽과 전설의 선돌바위 등이 어우러지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시멘트로 만든 목재 모양의 울타리를 따라 까만 돌판을 깐, 완만한 물매의 길을 오르면 왼쪽에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동화에나 나올 법한 질감의 건물 하나가 떠오른다. 한때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였던 <올인>에 성당으로 등장했던 건물을 개축하여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 ‘과자의 집’이 되었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나무 모양의 콘크리트 울타리와 검은 현무암 돌담 등으로 이어진 길로 나아가면 봉수대에 이른다. 협자연대(俠子煙臺)라는 이름의 돌로 만든 봉수대는 하부 9m×8.9m, 상부 8.6m×8.6m, 높이는 3.1m의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대와는 기능 면에서는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는 점이 다르다. 협자연대 상부에는 지름 4.2m의 화덕 원형이 남아 있으며 정의현 소속 별장 6명, 봉군(烽軍) 12명이 배치되었다. 북쪽으로는 직선거리 4.5km의 오소포 연대, 3.2km의 성산 봉수대, 서쪽으로 직선거리 5.2km의 말등포 연대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연대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들어오는 봉우리는 제주말로 ‘송이’라고 하는 붉은색 화산재로 이루어진, 일명 ‘붉은오름’이다. 그 정상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는데, 등대는 오름의 붉은 흙빛, 그리고 하늘과 바다의 파랑과 대비되어 또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마땅히 있어야 할 유채꽃은 때가 지나서인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등대로 오르는 철계단에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거기 오르면 섭지코지의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지만, 우리는 먼빛으로만 해안을 훑고 나서 발길을 돌렸다. 이런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간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여행이라 하여도 여정 없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시간은 그 여행의 방해꾼이다.
설핏 해가 한 뼘 더 기울었다. 미리 검색한 맛집에 갔더니 점심때만 연다며 닫혀 있었다.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갈치 조림을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당신의 갈치 조림에 미치지 못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2022. 5.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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