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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5년, 그리고 글쓰기

by 낮달2018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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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5년과 나의 글쓰기

▲ 지난해 10월 4일, 머리기사로 오른 내 글. 의성 탑리 버스터미널의 김재도 선생 이야기다.

2006년 12월 첫 기사, 그리고 15년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쓴 때가 2006년 12월이다. 2004년, 노동조합 전임으로 일하다가 학교로 돌아온 그해 나는 담배를 끊었다. 조직 활동에서 놓이면서 그간 늘 모자라기만 했던 시간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수업하고 쉬는 시간, 흡연에 쫓기던 생활이 끝났고, 나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다음 수업 교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그렇게 다가온 넉넉한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나는 그 무렵 장만한 디지털카메라로 주변의 절집과 정자를 찾아다녔고, 곁들여 그 답사기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쓴 글은 쟁여 놓기 위해서 블로그를 연 것도 그 무렵이다. [관련 글 : 나의 블로그 편력기] 블로그는 ‘다음’에서 처음 열었으나 천리안의 ‘애플’에 머물던 때, <오마이뉴스>에 답사기 한 편을 보냈더니 기사로 채택되어 실렸다. [관련 글 : 물돌이동 주변을 거닐다]

 

첫 기사를 쓰고 일주일 후 나는 블로그를 <오마이뉴스>로 옮겼고, 기사 쓰기는 한동안 안동 주변의 풍광을 찾아다니며 계속되었다. 이듬해 8월까지 나는 23편의 기사를 썼으니 매월 평균 2~3편의 기사를 쓴 셈이다.(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쓸 수 있는 것은 기자 회원이 <오마이뉴스>에 로그인하여 자신의 ‘방’에 들어가면 그간 보낸 기사와 받은 원고료 내역 등이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시절

 

2007년 9월 초 블로그에 쓴 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백만 부, 난쟁이 일가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이 <오마이뉴스> 주 화면에 실렸다. 그때, <오마이뉴스>에서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오블)에 오른 글 가운데 기사가 될 만한 글을 링크하여 기사로 싣기 시작했는데, 내 글이 거기 뽑힌 것이었다.

 

▲ 낮달 그림으로 대신한 내 프로필

그 무렵, 시답잖은 글로 공연히 아까운 지면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기사 쓰기에 시들해졌다. 대신 블로그에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글을 쓰면서 이웃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글은 심심찮게 <오마이뉴스>에 링크되어 실렸다. 블로그에 글을 끄적여 두면, 기사가 되었고, 거기에 원고료까지 들어오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오마이뉴스>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종료한 2018년 연말까지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이 기사가 된 것은 모두 800여 편에 가깝다. 내가 오블에 쓴 글이 1700여 편쯤이니 거의 절반쯤은 기사가 된 셈이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기사 쓰기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월 6일에 실린 기사(천인공노희로애락사이)가 351번째 기사니 나는 기사보다 블로그에 쓴 글이 갑절이 넘는다. 15년 동안 나는 매년 평균 23편 정도의 기사를 썼으니, 이는 매월 2편꼴에 불과한 것이다. 당시 나는 공적 내용을 다룬 글을 기사로, 개인적 소회를 다루는 글은 블로그에 기록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2017년에 나는 블로그 10년을 맞았고 조회 수는 마침내 천만을 넘겼다. [관련 글 : 블로그 10, 다시 새 10년으로]그러나 이듬해인 2018년에 <오마이뉴스>가 블로그 서비스를 중지한다는 공지를 받고 나는 부득이 그해 10월에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겼다. [관련 글 : 티스토리블로그를 열면서]

 

오블 종료로 <티스토리>로 옮기다

 

한동안 이웃 블로거와 교류하면서 꽤 재미난 시기도 있었지만, 그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모두가 조금씩 시들해지는 법이니까.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나는 단기필마로 티스토리로 옮겨왔다. 한꺼번에 옮길 수 없었던, <오마이뉴스>에서 백업해 준 옛글 1743편을 틈나는 대로 티스토리에 올리면서 나는 3년을 보냈다.

 

따로 마실 가는 일이 없으니, 이웃을 사귈 일도 별로 없다. 나는 가끔 새 글을 쓰고, <오마이뉴스> 기사도 새로 올리는 정도로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다. 티스토리는 오블에 비기면 블로거 숫자도 매일 오르는 글도 비길 수 없을 정도의 망망대해다. 나는 내 글을 보관하는 글 창고쯤으로 여기며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나의 수상내역 ⓒ 오마이뉴스
▲ 2018년에 받은 으뜸상 메달

이달의 뉴스게릴라, 으뜸상, 그리고 ‘올해의 뉴스게릴라’까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는 해도 나는 자신을 ‘저널리스트’로 여기지는 않는다. 쉬지 않고, 새로운 기사를 꾸준히 쓰는 프로 기자 못잖은 시민기자들에 비기면 나는 여기로 기사를 쓰는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5년쯤 드문드문 기사를 쓰다 보니, 뜻밖의 상도 제법 받았다. 2009년 10월과 2010년 11월, 그리고 10년 뒤인 2020년 11월에 ‘이달의 뉴스게릴라 상’을 받았고, 2018년 6월에는 명예의 전당 ‘으뜸상’을 받았다. 이 상은 머리기사에 해당하는 ‘오름’과 그 아래의 ‘으뜸’ 기사를 합하여 100편을 쓰는 이에게 주는 상이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난 연말에 ‘202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을 받았다. 많이는 아니지만, 오래 기사를 쓰다 보니 이런 행운도 만날 수 있었던 듯하다. 코로나 시국이어서 시상식은 없고 어저께 상패를 택배로 받았다.

▲ 2021 '올해의 뉴스게릴라'를 공개한 오마이뉴스 지난해 12월 31일자 기사

그간은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5명 이내로 선정해 왔는데, 올해는 매월 1명씩 하여 12명을 선정한 듯하다. 150자의 수상 소감은 <오마이뉴스>의 시상 기사와 함께 실렸다. 거기에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첫 기사를 쓴 지 15년 만에 ‘2021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블로그 글 포함, 1100편 넘게 글을 쓰면서 저는 소년기 못잖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예전 같진 않지만, 앞으로도 글감들을 뒤적이며 궁싯거리는 시간을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패, 택배로 왔다.

글쎄, 궁싯거리는 시간을 이어가겠다고는 했지만, 나이 들수록 떨어지는 순발력이나 글감을 고르는 감각, 글을 써내는 속도 따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서평을 더러 쓰곤 하는데, 요즘은 책 읽기가 너무 힘들다. 얼마 전 쓴 임헌영 선생의 책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은 읽는 데만 무려 1주일이 걸렸다. 보통 책보다 갑절은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집중해서 읽고 그걸 새기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어쨌든 세밑에 날아든 희소식에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새해를 맞았다. 코로나19로 막힌 답답한 상황,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 바라야 할 것은 이 유례 없는 팬데믹의 종식밖에 없음은 확실하다. 일상의 회복 혹은 복원만큼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2022. 1.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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