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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한겨레>가 미우니 그 독자들도 밉다?

by 낮달2018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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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탄압, 삼성중공업 ‘대국민 사과문’도 실리지 않았다

▲ 1월 22일 자 한겨레 머리기사로 에버랜드 창고 미술품 무더기 발견 기사가 실렸다 .
▲한겨레 1면 하단 광고 여러 언론단체 등이 연합해 낸 광고로 한겨레 경향 살리기 캠페인에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오늘 아침, 각 신문은 태안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삼성중공업의 대국민 사과 광고를 실었다. 삼성의 사과는 사고가 일어난 지 47일 만의 늑장 사과다. 그것도 사고에 대한 검찰의 어정쩡한 수사 발표에 떠밀린 듯한 형국이어서 개운치도 않다. 그러나 우리 집에 배달된 <한겨레>에는 예의 광고가 실리지 않았다.

 

대신 1면 하단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전국언론노동조합·참여연대가 연합해 낸 <삼성 비자금 제대로 보도한 한겨레의 독자는 삼성의 사과도 받을 수 없나요?>란 의견 광고가 실렸다. 광고는 지난해 12월부터 금년 1월까지의 신문별 삼성 광고 게재 건수를 그래프로 보여주면서 삼성의 광고가 사라진 <한겨레>와 <경향>을 ‘먹고 살게 해 주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삼성 앞에 당당한 신문, <한겨레>·<경향> 살리기 캠페인’에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시민들이 동참할 방법으로 광고는 ▲ 삼성의 치졸한 광고 탄압 실태 알리기 ▲ <한겨레>·<경향> 격려 릴레이 의견 광고 동참 ▲ <한겨레>·<경향> 독자 늘리기 캠페인 동참 등을 제시했다.

▲일간지별 삼성 광고 건수. 한겨레 광고에 나타난 일간지별 삼성 광고 게재 건수

격려 의견 광고라니까 새삼 34년 전인 1974년 12월의 <동아일보> 광고 해약 사태가 촉발한 독자들 참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때야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에 극에 달한 때였지만 지금은 만개한 언론 자유가 흐드러지고 있다. 군부 독재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성장을 거듭했던 보수언론들이 걸핏하면 언론 탄압을 운운하며 자신을 언론 자유 수호자로 자처하는 시기니 말이다.

 

34년 전의 동아일보 사태가 권력에 의한 언론 탄압이라면 21세기, 2007년 말부터 시작된 이 일련의 언론 탄압은 재벌 광고주, 즉 자본에 의한 신종 탄압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게 이 땅의 자본주의 발전 추이를 반영한 거라고 눙칠 수도 있긴 한데, 이미 권력을 장악한 시장(자본)에 의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이 명백한 반증은 씁쓸하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 언론실천 선언, 제작 거부, 광고 해약, 시민들의 격려 광고로 이어지는 이 자유언론 실천 운동은 결국 정권에 굴복한 사주들에 의해 기자들의 대량 해고로 치달았다. 이 시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축출된 자유언론 투쟁의 주역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조선 자유언론 수호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자유언론 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 삼성의료원 광고. 한겨레 경향만 빠진 삼성의료원 암센터 진료 개시 광고다.

이들에 의해 조직된 해직언론인협회(1980), 민주언론운동협의회(1984)는 기관지로 <말>을 창간했고, 87년 6월항쟁 뒤 이들을 주축으로 자유언론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모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다.

 

34년 전에 일어난 <동아일보>의 언론 탄압이 자유언론 투쟁의 결과물인 <한겨레신문>의 광고 탄압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치 역사의 아이러니 같다.

 

알다시피 광고를 매개한 이 치졸한 삼성의 언론 탄압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이후 <한겨레>·<경향>이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데 대한 보복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신문사의 삼성 광고는 연 30억에서 150억 원에 이르고 조중동 광고 매출의 5∼6%, 중소언론 10∼15%를 차지하니 그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언론노조·참여연대·민언련 등이 밝힌 대로 <한겨레>·<경향>에 대한 삼성의 광고 통제는 “저열한 사적 보복”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우리의 대표 브랜드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라고 일갈했던 이건희 회장의 삼성이 지향한다는 ‘글로벌’ 기업의 스탠더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 비자금 따위로 그룹 오너 부인의 미술품 사재기에 골몰하는 글로벌 기업이 있겠는가.

 

오늘 자 신문의 머리기사는 우리 일간지들의 성향과 언론 자유의 수준의 바로미터가 될지 모르겠다. <미디어오늘>의 기사에서 따온 신문별 머리기사는 다음과 같다.

▲ 1월 22일 자 일간지별 머리기사. 미디어오늘의 아침 신문 솎아보기를 캡처했다 .
▲ 동아일보 1면(2008.1.22.) 머리기사는 한나라당 공천 관련, 오른쪽에는 지난 4년간 어느 기업서 일자리 많이 늘렸나 기사가 실렸다.

<한겨레>와 <경향>의 머리기사는 당연히 ‘에버랜드 창고 압수수색 결과’다. 오늘 자 <동아일보>는 머리기사 오른쪽에 최근 4년간의 ‘어느 기업서 일자리 많이 늘렸나’라는 기사에서 삼성이 3만 7392명으로 1위라는 것을 대문짝만하게 소개하고 있다. 3만 7392명이라는 숫자 위에 낯익은 삼성의 로고가 반짝 빛난다. 의도성 기사는 아니겠지만, <한겨레>와 <경향>의 지면 구성과 그것은 낯선 대비를 보여준다.

 

1970년대 유신쿠데타를 단행하고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았던 독재 권력에 맞섰던 <동아> 기자들의 자유언론 투쟁은 비록 소수였고 권력과 자본의 철퇴 아래 쓰러졌지만,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리영희 선생이 ‘한때 동아일보 보는 재미로 살았다’라는 술회가 가진 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언론이 민중과 소통하던 시대의 신화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34년, 한 재벌 그룹의 불법적 비자금 조성 등을 보도한 독립 언론에는 그 자본으로부터의 보복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전처럼 사람들은 이런 무형의 언론 탄압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며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따위를 새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생활에 쫓기며 살고 있다.

 

한때는 언론 자유의 표상이었던 예의 신문은 일찌감치 그것과 결별하고 권력·자본과 화해했다. 이 신문은 “특정 계층의 표현 기관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대변지”임을 자임하고, “독자가 알아야 하는 진실 앞에서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보도 원칙을 자랑한다. 그러나 2008년 1월 22일 아침 이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의 수사 속보를 12면 머리에 3단 기사로 보도했다.

 

독자가 알아야 할 진실도, 특정 계층이 아닌 민족 전체의 이익은 언론 매체마다 서로 다른 것일까. 1974년 동아일보 자유언론 투쟁 이후 34년, 그 투쟁의 결과로 자라난 한 신생 언론이 진실 보도로 재벌의 보복에 직면한 현 상황 앞에서 두 언론 매체의 자리는 멀고 아득하다. 그것은 각각 1면과 12면에 채워진 ‘같은 사건의 다른 무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8. 1. 22. 낮달

 

 

<한겨레>가 미우니 그 독자들도 밉다?

광고 탄압, 삼성중공업 '대국민 사과문'도 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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