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가 진행하는 종편채널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룸’
요즘 이웃들로부터 ‘뉴스를 볼 만하다’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딸아이는 ‘재미지다’라고까지 표현한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게 된 나도 저녁 8시가 가까워지면 안경을 챙겨서 텔레비전 앞에 좌정하곤 하는 정도다.
공중파 방송의 뉴스를 보지 않게 된 건 전 정부 때부터니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요즘 그나마 <서울방송(SBS)>이 분전하고 있을 뿐, 이미 망가져 버린 공영방송 뉴스는 요즘 언론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보는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뉴스 챙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챙겨보는 뉴스는 물론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룸’이다. 처음에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어느 날부터 이 ‘종편’ 뉴스는 공영방송을 제치고 최고의 보도 채널로 자리 잡으며 이른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을 선도하고 있다.
8시부터 약 1시간 반쯤 진행되는 이 뉴스는 우리 사회의 현안 뉴스를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정부 여당에 불리한 뉴스는 알아서 빼 먹는 공영방송의 대체재 노릇을 완벽하게 한다. 그뿐인가. 이 뉴스는 주요 의제를 정확하게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내까지 공정하게 짚어 주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인터넷을 통하여 진보 언론의 기사를 확인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읽는 뉴스와 보고 듣는 뉴스가 주는 느낌은 좀 다르다. 텔레비전 정규 뉴스 시간에 인터넷 신문 못잖은 친절하고 깊이 있는 뉴스,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생광스러운 일인가.
뉴스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가. 재미있는 소식은 어떤 것인가. 소식도 여러 가지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소식이 있는가 하면 슬픔과 연민을 금치 못하게 하는 뉴스도 있다. 그런데 뉴스가 ‘재미있다’? 어떤 소식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는가.
날마다 예사롭지 않은 사건, 사고가 넘쳐야 재미있는 건 아니다. 사건이나 사고는 그 경위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그걸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진이나 화재, 대형 교통사고 같은 뉴스를 보면서 ‘재미있다’라고 할 미친놈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요즘 뉴스는 온통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차고 넘친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다.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측근과 함께 사유화한 사건이다. 이런 뉴스 앞에서는 분노하고 그 주역들에 대한 단죄를 요구하는 게 자연스럽다.
뉴스로 만나는 ‘희망’
그런데 그게 재미있어진 것은 분노하고 항의하는 단계를 넘기면서부터다. 퇴진이나 탄핵이 운위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희망’을 엿본 것이다. 기가 막히긴 하지만 현 상황이 지난 4년간 대책 없이 지속되어 온 정권의 실정, 무지와 무능, 무책임의 정치를 끝장낼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분노와 무력감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 꼬인 정국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밖에 줄 게 없었을 것이다. 명백한 문제 앞에서 그걸 멀거니 지켜보는 것밖에 달리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한 시민에게 주어진 정치적 선택이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정국이 촛불에 불을 댕기고, 이내 그것이 백만 촛불로 진화하는 걸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모처럼 어떤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선택과 내가 보태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역사적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 말이다.
생각하면 그 자신감의 기억은 까마득하다. 아마 그런 희망의 기억은 2002년 대선에서 만개하지 않았을까. 마치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것같이 무모해 뵈는 노무현의 도전과 꿈을 현실로 바꾼 것은 그들 시민의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이명박 정부 5년과 현 정부 4년 세월은 어떤 이들에겐 굴욕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유례없이 대규모 군중을 모았던 2008년 촛불의 기억은 아팠다. 노회한 정권은 항복하는 척하다 촛불이 사위자 이내 강경 대응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2016, 촛불이 만들어가는 ‘희망’
선거 때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외에 시민들은 권력과 세상에 맞설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게 시민들의 분노로 댕겨진 촛불은 정치 사회적 변화를 담보하는 희망과 가능성의 표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강고한 기득권의 연대 앞에서 무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8년, 아련했던 희망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날마다 매체마다 쏟아내는 관련 뉴스를 읽으면서 느끼는 절망을 다시 타오른 촛불의 존재가 희망으로 바꾸어낸 것이다. 민의는 정직하고 에두르지 않는다. 시민들의 외침이 좌고우면하고 있는 정치권을 추동하는 힘이 되고 있다.
12일 촛불에 이어 다시 내일도 전국 곳곳에서 촛불이 타오른다고 한다. 한 번 더 상경하는 대신 오늘 밤 지역 집회에 이어 내일은 대구에서 밝힐 촛불에 참여할 작정이다. 촛불이 던지는 민의가 이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믿는 한, 뉴스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2016. 11.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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