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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조반마)’ 지각 참관기

by 낮달2018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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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선일보> 반대 옥천마라톤대회 

▲ 대회 시작 시간에 대지 못하여 놓친 장면이다. 마라톤 출발 직전. ⓒ 조반마 옥천대회 누리집
▲ 드디어 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떠난다. ⓒ 조반마 옥천대회 누리집

앞서 밝혔듯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조반마)’는 처음이다. 아니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조차 처음이다. 마침 집에 들렀던 아들 녀석과 전날에야 동행하겠다고 나선 딸애와 함께였다. 물론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조반마’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대회에 참석하는 게 어정쩡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을 이야기하면서 아들에게 동행을 청했고, 제 동생과 함께 딸애도 따라나선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가는 길 운전은 내가 했다.

 

아뿔싸, 지각이다

 

▲ 대회 티셔츠의 로고

예천, 상주를 거쳐 옥천으로 가는 길은 십수 년 전부터 익숙한 길이었다. 그러나 아는 길이라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가. 우리는 대회장에 지각하고야 말았다. 대회 시작 시각보다 한 십여 분쯤 이르게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지만, 결과는 10여 분을 늦고 말았다.

 

애당초 느긋하게 길을 나선 게 불찰이다. 내 경험에 비추면 안동에서 대전까지는 세 시간 남짓 걸린다. 옥천은 거기 못 미치니까 두 시간 반이면 넉넉하리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7시 반에 집을 나섰지만 정작 안동 시내를 벗어난 것은 8시가 가까워져서였다.

 

옥천에 들어설 때가 9시 56분쯤이었다.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내 목적은 다만 ‘조반마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조반마의 경기 종목은 4km 숲길 걷기부터 5km 건강달리기, 10km 단축마라톤, 20km 하프마라톤에 이르기까지 모두 넷이다. 마라톤은커녕 달리기조차 내겐 언감생심이었다.

 

나는 ‘4km 숲길 걷기’에나 참가하면 되리라, 마라톤도 아니고 숲길을 걷는 데 무어 그리 빡빡하게 시간을 지킬 일은 있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뿔싸, 도착을 5분쯤 남기고 나는 출발한 하프마라톤팀을 만나고 말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회장으로 나왔을 때는 달리기 종목은 모두 출발했고 숲길 걷기조차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각이 모처럼 마음먹은 조반마 참가가 어정쩡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접수를 하고 참가번호를 받고 숲길 걷기에 나섰지만, 사진기에 담아야 할 중요한 장면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숲길 걷기를 반쯤만 하고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결승점으로 돌아오는 마라톤 참가자를 맞이하는 게 더 나을 듯해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찮았다. 이미 하프마라톤 참가자 선두는 결승점으로 들어온 뒤였기 때문이다.

 

대회 본부로 돌아오자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이미 점심을 배식받은 이들은 곳곳에 무리 지어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대형 솥에다 삶아낸 국수였다. 고명이라고는 김치 두어 조각, 썬 김이 고작이었지만, 국수 맛은 괜찮았다. 스티로폼 도시락에 받아온 두부 맛도 그만이었다. 한쪽에서는 주류제조업체인 국순당에서 찬조한 생막걸리 ‘우국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대회장을 돌아다니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모두 무리 지어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주최만 해도 여러 단체다. 노사모, 시민광장, 평화재향군인회, 다음노사모, 한발연, 노삼모, 미디어행동, 민족문제연구소, 라디오21, 서프라이즈 등…….

 

노사모를 비롯 평화재향군인회, 미디어행동, 민족문제연구소, 서프라이즈는 익히 아는 단체다. 그러나 ‘시민광장’은 뭐고 ‘노삼모’는 무언가 싶었다. 돌아와 확인해 보니 시민광장은 유시민 팬클럽이고, 노삼모는 ‘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 파티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발연은 ‘한겨레발전연대’(옛 한겨레 사랑모임)이고, 라디오 21은 시민 정치방송을 지향하는 인터넷라디오 방송이다.

 

단체별로 참가한다는 것의 의미는 크다. 그것도 혈연이나 지연, 학연 따위가 아닌 시민 사회운동 단체의 회원끼리라는 것은 그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모두 ‘조선일보 반대’라는 쉽지 않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동지였다. 대회장에 가득 찬 것은 그런 그들의 유쾌한 나눔이었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에서부터 백발을 흩날리는 노인장까지, 참가자들은 유쾌하게 행사를 치러냈다. 그들이 제각기 들고 있는 팻말들이 오늘 행사의 성격과 그들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다.

 

조반마, 언론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응전

 

“조선일보 악성 기사는 당신의 영혼과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독극물입니다.”

“5678 서울도시철도 불쾌 지수 100! 시장 실적을 위해 천만 시민이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4대강 개발사업 중단하라!”

 

식사하면서 나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재미없지? 모두 단체 참가자들이야. 이런 행사는 개인적으로 참석하면 좀 썰렁해지지.”

“사람들의 구성이 참 다양하네요.”

“그래,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저이들이 가진 신념이란 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활동가들의 그것에 비겨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거지. 저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지만 어떤 정치인, 어떤 사상가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각성된 실천가들이야.”

“그런 거 같아요.”

 

모두가 원하는 대로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은 가능한 일인가……. 역사는 발전하는가 하고 나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이 무명의 시민들이 벌이는 메이저 수구 조폭 언론에 대한 거부와 저항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역사 발전의 일부가 되었다. 언론 권력의 반역사적 도전에 대한 시민사회의 응전은 그 승패를 떠나 시나브로 우리 시대의 전설이 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2010. 10.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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