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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1 텃밭 농사 ②] 거름 주고, 곁순 따주고…, 밭주인의 몫

by 낮달2018 202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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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름주기(5월 13일)

▲ 모종한 지 보름, 우리 고추는 무사히 땅속에 뿌리를 내린 듯하다. 고추는 아직 여리나 모종 때보다는 한결 실해 보인다. 묵은 밭.

5월 13일에 밭에 거름을 주었으니, 모종한 지 꼭 보름 만이다. 시비(施肥)는 전적으로 아내가 판단하고 시행한다. 아내는 틈만 나면, 농사짓기 유튜브를 열심히 읽는데, 그게 농사짓는 데 얼마간은 도움이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내가 건성으로 아내의 말을 듣고 마는 것은 그게 유튜버마다 조금씩 처방을 달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사 일정을 따르는 거야 대동소이하지만, 병충해 방제나 작물 재배법은 저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처방이 달랐다. 고추 하나만 해도 얼마나 많은 종류의 병충해가 있는가, 진딧물과 총채벌레부터 시작하여 무름병, 탄저 등등 병충해는 수도 없는데, 이걸 잡는 비방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글쎄, 잘은 몰라도 농사 유튜버 가운데 전문 농사꾼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주말농장 등 텃밭 농사를 짓는 이들은 자기 경험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아내도 그걸 모르는바 아니지만, 마땅히 믿고 따른 교본이 없으니 비슷한 방식으로 방제에 나서곤 한다.

▲ 새 밭의 고추도 뿌리를 제대로 내렸다. 가장자리의 몇몇 포기는 거름기가 없는지 잎이 누렇다.

모종할 때 뉘어 심은 파는 그새 빳빳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다. 아내는 그거로는 부족하다가 시장에서 어린 파를 더 사 와 심었다. 호박도 어느새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잎사귀가 싱싱하고 푸르다. 해마다 호박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어떨지 은근한 기대가 있다.

 

2. 장미와 보리밭(5월 19일)

▲ 6일 뒤, 한결 차분해진 우리 고추.

텃밭엔 한 주에 한두 번, 여의찮으면 한 번 정도 들른다. 둘 다 어디 매인 몸은 아니지만, 시간을 내는 게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텃밭을 찾는 날이면 들과 산을 새롭게 만나면서 눈 호강을 하면서, 계절을 새삼스레 가늠하곤 한다.

 

오가는 데 삼십 분씩 한 시간이 좋이 걸리지만, 연도의 들과 산을 바라보면서 활자와 도회의 메마른 풍경에 익숙한 눈은 녹색의 세례를 받는다. 꽃이야 도시에도 지천으로 피고 있지만, 시골 마을의 돌담 위에 피어난 꽃이나 익어가는 보리밭 따위를 바라보면서 계절을 가늠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는가. 

▲ 아내가 담 위 장미를 꺾어와 이걸 창고 처마에 걸고 찍은 사진. 올 장미는 풍성하다.

묵은 밭 뒤의 담 위에는 언제부턴가 장미꽃이 핀다. 올해는 유난스레 꽃송이가 더 크고 난만하다. 아내가 그 아래 나물을 뜯다가, 한 가지를 꺾었다. 그걸 집에 가져와 꽃병에다 꽂으려는 걸까. 그 장미 꽃송이를 집 옆 창고 앞에 쳐 놓은 빨랫줄에다 걸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 마을 어귀의 보리밭. 아마 한 달쯤 지나면 보리는 익을 거고, 보리를 베어내면 거기 모를 심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 보리밭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있다. 참외 하우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고향의 농민들은 더는 보리를 재배하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요즘 띄엄띄엄 눈에 띄는 보리밭이 반갑다. 사람들은 노는 밭에 자기 집 양식을 하려고 보리를 거짓말만큼만 짓는 것이다.

 

한 달쯤 지나면 보리는 누렇게 익을 게고, 보리를 베어내면 거기 모를 심을 것이다. 그렇게 시골의 사계는 흘러간다. 정작 주식인 벼나 볏논보다 보리가, 보리밭이 훨씬 더 정겨운 풍경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게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 전근대와 그 추억을 환기해 주어서일까.

 

3. 지지대 세우기(5월 26일)

▲ 지지대에 묶은 고추. 아직 덜 자라 빨강 끈을 느슨하게 묶어주었다.

다시 2주 뒤에 일기예보에 강풍 소식을 들은 아내가 서둘러 고추 모종을 묶어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서 텃밭에 들렀다. 아직 대는 약해 보이지만, 일단 포기마다 지지대를 하나씩 세워 묶어주었다. 옛 집터를 골라 만든 텃밭이라, 아직 들어내지 못한 돌이 적지 않으나 지지대가 들어가지 않는 데는 없다.

 

어정쩡하게 지은 농사지만 햇수가 좀 되다 보니 알루미늄 지지대는 200개가 넘는다. 쓰다 보면 땅속에 묻히는 부분이 굽거나 삭아서 부러지는 예도 있지만, 대체로 다시 쓰는 데는 지장이 없다. 세 포기 심어 놓은 가지까지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아마 아내는 고추가 더 자라면, 이랑 전체의 고추 포기를 한 바퀴 에워싸는 줄을 쳐 주자고 할 게 분명하다.

 

지지대를 비닐 끈으로 묶으면서 고추 아랫부분에 올라온 곁순을 따주면서 가지가 와이(Y) 자로 갈라지는 부분(이걸 디딜방아의 방아채에서 발로 디디는 뒷부분을 이르는 ‘방앗다리’라고 하는데 아마 모양이 비슷해서 그리 부르는 모양이나 사전 뜻풀이에는 이 뜻이 나오지 않는다)에 난 꽃이나 고추를 땄다. 곁순이나 방아다리에 달린 열매를 따는 것은 고추가 제대로 자라게 하기 위함이라 하는데, 우리는 그저 긴가민가하면서도 그걸 따르고 있다.

▲ 잘 뿌리 내린 호박, 잇이 푸르다. 그 앞은 배추, 오른쪽 파도 꼿꼿이 허리를 폈다.
▲ 첫 수확이라기보다는 고추의 곁순을 따주며 같이 딴 방앗다리 고추다. 크기는 실하지만, 아직 속이 덜 찼다.

방앗다리에서 따낸 설익은 고추 몇 개를 아내가 조그만 플라스틱 함지에 담았다. 방아다리에 달린 거라고 시뻐 보지만, 그 크기가 벌써 남다르다. 그렇다, 씨가 작년에 수확한 그 고추가 분명하다. 어른 손바닥 길이만 한 고추에 과육은 얼마나 두꺼웠는지, 올해는 작년의 반밖에 못 심었지만, 수확도 기대해 볼 듯해 나는 벌써 배가 부르다.

 

 

2021. 6.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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