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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우리 반 고추 농사(Ⅴ)

by 낮달2018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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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은 고추를 따다

▲ 수확한 고추. 크기는 잘지만 속은 꽉 찼다 .

지난 5월 이래 내가 노심초사 가꾸어 온 우리 반 고추농사를 오늘 걷었다. 점심시간에 마지막 사진을 한 장 찍고 화분을 교사 뒤편으로 옮겼다. 일부러 시켰던 것도 아닌데 그 동안 꾸준히 화분에 물 주는 일을 도맡았던 이웃 반 아이와 우리 반 아이 둘이 거들었다.

 

아이들에게 포기를 뽑으라니 그것도 수월찮은 듯 낑낑대더니 겨우 지지대와 함께 뽑아놓는다. 그나마 총총히 달린 몇 개의 고추를 훑어 따고 나서 화분은 뒤편 산기슭에다 갖다 엎었다. 지난 몇 달간 몇 그루의 고추를 훌륭히 길러 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 장한 흙인데, 그 양이 보잘것없다. 저 한정된 토양을 더 기름지게 하느라고 나는 몇 번씩이나 유기질 비료를 거기 듬뿍 파묻었던가. 내려오는데 문득 기독인들이 ‘아멘’ 이라 중얼대는 이유가 처음으로 짚어지는 듯했다.

 

마지막 열매를 따낸 고춧대는 아직 싱싱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것을 펜스 너머로 던져 버렸다. 남은 것은 아이들에게 이걸 보고하는 일뿐이다. 그전에 일을 거들었던 녀석들이 먼저 귀띔을 할까. 중간에 일찌감치 고백했듯 이건 내 농사였지, 아이들의 농사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담임의 농사를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살갑게 다가오거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일감을 주고 작물의 성장을 같이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다.

 

고작 여섯 포기를 기르면서 그렇게 나누는 일도 번거로웠고 무엇보다 심드렁한 아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제 공부에 바빴고, 작물의 생장 따위에 관심을 둘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건 제도의 문제지 아이들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로 나는 지난 몇 달간의 시도를 정리한다. 화분이 아니라 땅에다,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으로 그것을 가꾸어 낼 자신이 없다면 섣불리 시도할 일은 아니라고. 애당초 무슨 대단한 계획을 세웠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애당초의 계획대로라면 익어서 딴 고추를 말려 이를 빻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이 마지막 단계는 치르지 못했다. 워낙 적은 양이어서 따로 빻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말린 고추는 김장용 고추를 사서 빻을 때 함께 넣는 걸로 끝이 났다.

 

첫 기록부터 새삼스레 뒤져 볼 생각은 없다. 고추가 익기 시작할 무렵부터 찍어 둔 몇 장의 사진으로 이 얼치기 농사꾼의 영농일기를 마친다. 어느새 10월도 끝, 수능이다 뭐다 해서 공연히 스산해지는 고등학교 2학년 큰아기들을 기르는 나의 ‘사람 농사’는 내년 2월까지다. 바라건대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깊고 그윽하게 성장하기를, 그리하여 이 답답한 시대를 넘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밝혀 찾기를.

▲ 마지막 사진. 흙은 마를 대로 말랐고 마지막 열매 몇 개가 달려 있다.
▲ 마지막 풋고추까지 수확했다.

 

 

2007. 10. 27. 낮달

 

우리 반 고추 농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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