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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by 낮달2018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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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고춧가루 20근을 거두다

▲ 시골 텃밭의 고추. 예년에 병충해가 심한 밭이었는데 올해는 방제 덕분인지 아직까지 고추가 익고 있는 밭이다.
▲ 집 앞 텃밭의 고추가 빨갛게 익고 있다. 이 밭에는 유난히 탄저가 심했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수확 후 이 밭을 포기했다.

좋은 모종으로 시작한 고추 농사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 한창 고추가 익어가는 고추밭. 위는 시골, 아래는 집 앞 텃밭이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대로다. 이후, 집 앞과 시골 텃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물이 오르면서 고추가 익어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너 차례 익은 놈들을 따냈다. 그러나 워낙 밭이 작으니 한번 따내는 양은 뻔할 수밖에 없다. 양이 엔간하면 고추 농사를 짓는 아내의 친구에게 부탁해 농업용 건조기로 말릴 수 있으나, 딱 한 번 빼고는 모두 집에서 햇볕과 가정용 건조기를 돌려서 말렸다. 

 

따서 말리고 빻고, 그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아내는 베란다에서 초벌로 고추를 말린 다음, 아파트 앞뜰에다 내다 놓고 종일 혹시 비가 내릴까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등 노심초사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인데 거기 너무 매달리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말려도 아내는 그렇지 않다, 이왕 지은 농산데 그리할 수 없다면서 한밤중에도 일어나 건조기의 고추를 뒤집곤 했다.

 

올여름 날씨는 어땠는가, 사흘돌이로 비는 오지, 아내는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지청구를 해댔다. 몇 해 전에 장만한 가정용 건조기는 올해 한 달 가까이 돌렸을 것이다. 우리 기계로 부족해서 딸애가 누구에겐가 빌려온 건조기도 써서 두 대로 돌린 날도 적지 않았다.

 

봄내 열심히 텃밭 사진을 찍어대 놓고는 익은 고추를 따내면서는 무엇이 바빴는가, 사진으로 챙기지 못했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게 성가시면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되는데도 좀 무심해졌던가 보았다. 이 글 쓰려고 사진을 챙겨보니, 7월 중순께 찍은 사진이 끝이다. 집에서 고추 말리는 모습도 따로 찍어둔 게 몇 장 안 된다.

▲ 울 고추농사는 기록이다. 이처럼 실한 고추를 생산한 것은 텃밭 농사 10년 이력에 처음이다.
▲ 아파트 베란다에서 초벌로 말리는 고추
▲ 거실 바닥에 발을 펼쳐놓고 말리고 있는 고추.

아내는 말린 고추를 위생 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일정하게 모이면 방앗간에서 빻아 왔다. 내가 두 차례나 빻아다 준 고춧가루가 열일곱 근(10.2kg)이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한 번 더 빻아온 걸 합하면 실하게 스무 근이다. 서른 근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고추 농사력엔 최고 기록이다.

 

그리하여, 모두 스무 근을 이루다

 

빻은 고춧가루의 고운 빛깔에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아내는 일단, 김장용 고춧가루 걱정을 덜었다며, 근당 2만 원으로 쳐도 40만 원은 번 셈이라며 뿌듯해했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게 몽땅 당신 공이라고 치하해 주었다.

 

서둘러 고추 농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은 올해 끈질기게 내린 비, 태풍 따위로 농사를 망친 고추 농가가 적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도 예외일 수 없었던 탓이다.  대여섯 번이나 공들여 약을 친 덕에 그나마 건진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맹탕이 될 수도 있다고 우리는 안도하곤 했다.

 

장마 시작되면서부터 슬슬 번지기 시작한 탄저(炭疽)는 불감당이었다. 전문 농사꾼도 막지 못하는 병충해에 우린들 어쩔 건가, 8월 들면서는 따는 거 반은 무르거나, 이미 탄저가 번진 놈들이었다. 아내는 알뜰하게 병든 부분을 도려내고 건조기에 말려서 보탠 게 그나마 스무 근을 채울 수 있었다.

 

시골 텃밭의 고추는 그나마 병충해가 덜한데 집 앞, 올해 처음 시작한 텃밭은 상태가 최악이었다. 물론 거기서 따낸 고추가 훨씬 많기는 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이 밭에선 지난해도 탄저가 극심했다고 한다. 8월 말에 소량을 따내고 난 뒤, 아내는 아예 포기하고 성한 게 별로 없는 몇 이랑은 고춧대를 뽑아내고, 총각무와 무, 쪽파, 얼갈이배추를 심었다.

▲ 병충해의 습격은 무섭다. 멀쩡하게 익은 고추가 떨어지고 짓무른다. 골에 떨어진 고추들.
▲ 익은 고추들 가운데 병든 고추가 적지 않다.

요즘 배추 한 단에 2만 원이 넘는 상황이라 아내는 진작에 배추를 심을걸, 안타까워하여서 내가 그랬다. 우리 언제 배추 심어서 제대로 수확한 적이 있었나, 그것도 욕심이야. 잘 자라면 다행일 뿐 아닌가. 너무 기대하지 마.

 

아내가 유튜브에서 찾아본 채소 방제법을 보고, 물탄 소주를 분무기로 뿌려주는 등 온갖 신경을 기울인 덕분인지 두어 마디쯤 자란 채소는 아직 생생한 편이다. 아내의 성실이 빛을 본 셈인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을 쓰면 쓸수록 작물이 자람새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일부러, 아니면 지나는 길에 밭을 둘러보곤 하는데 그걸 작물들은 알아보았을까. 

 

어찌 농사의 기쁨이 그것뿐이랴 

 

오늘은 그간 오래 부려 먹은 건조기를 청소하여 창고에 갈무리했다. 시골 텃밭에 아직도 세 이랑쯤의 고추가 남아 있지만, 거기서 따로 익은 고추가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푸른 고추라도 좀 따서 반찬용으로 챙기면 될 터. 어쨌든 올 우리 고추 농사는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다.

▲ 가뭄에 콩나듯 따낸 박과 호박. 이들의 이바지도 우리가 누린 기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 집 앞 텃밭은 탄저의 습격으로 거덜이 날다. 몇 이랑 고춧대를 뽑아내고, 총각무와 무, 쪽파, 얼갈이배추를 심었다.

아, 밭 주변에 심은 가지와 호박, 박 따위의 작물에도 우리는 따로 고마움을 전하여야 마땅하다. 가지는 수도 없이 따서 챗국(냉국)으로, 나물로, 전으로 부쳐 먹고 남은 것은 잘라 말려서 갈무리했다. 호박도 잘 자라지 않는다는 타박을 들으면서 드문드문 달려서 심심찮게 따 먹었고, 박도 서너 덩이 따서 박나물의 미각을 즐겼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치기로 농사를 지으며 누릴 것은 빼먹지 않고 제대로 누린 셈이다. 땅을 어머니로 비유한 것 고대 인류가 아니었던가. 그들의 지혜는 인간의 이성으로 쌓아 올린 현대 과학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간 우리는 여러 차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는 이랬다가, 또 하루는 저랬다. 얼치기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는 때때로 기쁨과 감사에 겨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농사짓기가 주는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이제 내년에는 농사짓는다고 골몰하지 않아야지.”

“그래요,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 오며 가며 기름이나 축내는 거지 뭐.”

“그래도, 또 무슨 재미로 한 해를 나나. 농사라고 지으니 가지며, 호박이며, 고추, 감자는 올해 좀 잘 먹고 있는가?”
“그건 그려. 몰라요. 일단 내년 봄에 다시 생각해 보지, 뭐. 할지 말지…….”

 

 

2020. 9.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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