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사를 지어 보나 마나 하고 나는 꽤 망설였다. 예전과 달리 평일에는 시간 내는 게 어려운데다가 마땅히 주변에 텃밭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탓이다. 후배가 권해 준 갈라산 아래 텃밭은 거리가 마땅찮아서 포기하고 같은 국어과 동료가 얻어서 대왕참나무를 심어 놓은 밭의 자투리땅을 얻었다.
안동댐 위 동악골, 전통 찻집 뒤편에 있는 내 텃밭은 대여섯 평 남짓인데, 땅이 척박해 보인다. 혼자서 갈기에는 버거워서 같은 학년을 맡은 동료 교사와 나누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은 고작 두어 이랑이 제격이다. 동료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 아내와 함께 가서 두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깔았다. 마땅히 이랑과 고랑을 구분하여 땅도 좀 일구어야 하나 대충 두둑을 만드는 걸로 때웠다. 처가에서 얻어 온 거름 한 포대를 헐어 뿌리긴 했는데 토질이 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청양고추 모종을 심고, 찻집에 부탁해 긴 비닐 호스를 물을 듬뿍 주었다. 아내는 상추씨를 뿌렸으면 했으나 역시 토질이 미덥지 않아서 대신 가지를 몇 포기 심었다. 계획 없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모종이 남으면 이랑이 부족하고 새로 이랑을 만드니 모종이 모자라는 식의 어긋남이 계속되다가 그만 잊고 한 열흘쯤을 보냈다.
어제저녁을 먹고 아내와 딸애와 함께 밭에 들렀다. 맙소사. ‘땅이 척박해서…….’라는 변명은 더는 변명이 아니다. 가물기도 했지만, 척박한 사토에 내 고추 모종들은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흙이었다면 잎도 커지고 줄기도 굵어지면서 튼튼해져야 하는데, 일찌감치 꽃이 피고 있었던 몇 포기만이 엉성한 줄기와 잎에 걸맞지 않은 흰 꽃을 서둘러 피우고 있었다.
늘 지난 뒤의 후회다. 일찌감치 밭을 갈기 전에 넉넉하게 거름을 하여 땅을 걸운 다음에, 두둑을 만들고 모종을 심었어야 했다. 몇 해 동안 놀아 건조해진 거친 모래흙에 뿌리를 내린 내 고추가 빨아들일 거라야 고작 모종을 심으면서 휘휘 뿌려놓은 거름뿐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나마 임자의 정성이나마 있었던가. 불쑥 심어 놓고 열흘이나 지나서 기웃대니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농작물이 뿔이 나도 났겠다. 몇 포기 말라죽은 놈은 뽑아 버리고 비워둔 자릴 어떡하나 아내와 대거리를 하면서 밭을 나오는데 그래도 기분은 영 섭섭하다.
다음에 와서 저 밭 안쪽에 구덩이 서너 개 파 거름 잔뜩 묻고 호박을 심자고 아내와 약속을 한다. 길 건너편에는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다. 사진기를 들이대는데 짙은 향기가 물씬 달려든다. 날이 가물면 아카시아꽃이 좋아서 양봉하는 이들이 반색을 한다더니.
차를 끌고 밭을 떠나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아이고, 안 되겠다. 다음에 올 때는 금비를 한 줌씩 뿌려줘야겠다. 그건 그렇고 이건 기름값도 안 나올 텐데……. 애당초 기름값은 안 나오는 농사다. 그러나 요즘 기름값이 다락같이 올랐다. 경유 값이 휘발유 값보다 높아졌고 중고 승용차 시장에 디젤차가 쏟아지고 있다나 어쩐다나. 11년째, 주행거리 20만 Km를 바라보는 내 고물차는 시내 주행만 하면 3만 원 주유에 100Km를 제대로 타지 못한다.
아무래도 세상살이가 좀 더 팍팍해질 듯하다. 물가도 물가거니와 요즘 정부의 갈짓자 행보 앞에 국민은 어지럽다. 광우병 소고기는 여전히 답보상태인데, 대통령은 헛기침 사과만 하고 FTA 비준이 급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게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여당 대표는 13조 원 손해를 운운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우리네 가계와 그 손해는 아무 관계가 없다.
내일은, 서울에서 오랜만에 ‘아스팔트 교실’이다. 비 소식이 있다고도 하는데, 까짓것 비는 가문 내 밭에도 내릴 터이니.
2008. 5.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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