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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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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궁성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니주바시(二重橋) 의거1924년 1월 5일 오후 7시, 김지섭(金祉燮, 1884~1928)은 일본 궁성(宮城)의 다리인 니주바시(二重橋) 부근에서 궁성의 문인 사쿠라다몬(櫻田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폭탄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자신의 동선을 계산해 보았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1924년 초 도쿄에서 제국의회가 열려 일본 수상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조선 총독이 참가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1923년 12월이었다. 의열단은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구들을 처단하고 일제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김지섭, 폭탄을 품고 석탄선을 타다 결사 대원으로 선발된 김지섭은 12월 20일, 상하이 푸둥에 정박 중인 미쓰이(三井) 화물 소속의 석.. 2026. 1. 5.
㉓ 소한(小寒), 추위보다 미세 먼지가 걱정이다 23번째 절기 ‘소한(小寒)’ 1월 6일(2026년도는 5일)은 2019년 들어 처음 맞는 절기, 24절기 가운데 23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다. 소한은 이름으로는 ‘작은 추위’지만, 우리나라에선 ‘가장 추운 날’이다. 절기 이름으로 보면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이것은 절기가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를 잘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놀러온 ‘대한’이 얼어 죽었다는 ‘소한’ 소한 무렵은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물려오는 시기다. 이른바 ‘소한 땜’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고 하는 속담이 생긴 이유다. 소한 때면 반드시 추운 법임을 강조하여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 2026. 1. 5.
[오늘] 36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 제도 폐지 [역사 공부 ‘오늘’] 1982년 1월 5일 야간 통행금지 해제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 1호’에 따라 1945년 9월 8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제도는 36년 4개월 만에 그 명운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6년 동안 존속되었던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81년 바덴바덴에서 결정된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야간 통행금지 제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2026. 1. 4.
[오늘] 압록강 진격 국군과 유엔군, 1·4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어주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로 1·4후퇴 시작되다1951년 1월 4일, 전년도 12월께부터 시작된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전선에서 밀리던 국군과 유엔군은 마침내 서울을 내주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고 1월 14일, 유엔군은 북위 37도 선의 중서부 전선에서 30만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른바 ‘1·4후퇴’가 시작된 것이었다. 일방적인 패퇴 끝에 전세를 뒤집고 압록강까지 진격할 때만 해도 승리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공군(관례대로 표기함)의 등장과 함께 승리는 신기루처럼 스러졌고 전황은 불과 서너 달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1·4후퇴, 중공군의 참전으로 뒤집힌 전세 그것은 이 전쟁의 승패가 단순한 전력의 차이나 명분 따위에 있.. 2026. 1. 3.
‘한마디하다’와 가톨릭의 ‘빛의신비’도 표제어로 올랐다 2025년 4분기 정보 수정 주요 내용국립국어원에서는 지난 12월 12일, 2025년 제4차 국립국어원 국어사전 정보보완심의위원회를 열어 4분기 정보 수정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표제어 추가(한마디하다, 빛의신비), 뜻풀이 추가(나다01, 띄우다02, 음미하다01), 뜻풀이 수정(고급02, 저급01, 생수02, 인센티브, 측정01, 함몰02) 등 모두 11개 낱말에 대한 정보 수정이 이루어졌다. 표제어 추가 “짧고 간단하게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 ‘한마디하다’가 마침내 표제어로 사전에 올랐다. 에는 “불편한 마음으로 언짢게 말하다”라는 뜻풀이로 진작에 오른 낱말이다. 우리는 대체로 들이 우리가 쓰는 낱말을 포괄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사전에 오르지 않은 낱말들도 적지 않다. [관련 글 : ‘수입산’.. 2026. 1. 2.
2026 병오년, 붉은 말의 해 ‘역동성과 변화, 번영’의 새해를 그리며2026년이 밝았다. 세밑부터 새해 벽두까지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의례적인 새해 인사를 입에 달고 다닌다. 새해라고 하지만, 첫날만 ‘신정(新正)’이라 하여 쉴 뿐이니 사람들은 이날을 의례적이고 행정적으로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뿐이다. 양력 새해가 밝았지만, 아직 온전한 ‘새해’는 아니다 한국인들이 해가 바뀐 것으로 여기는 때는 한때 ‘구정(舊正)’이라 불러야 했던 설날을 쇠면서다. 떡국을 먹고 나이도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게 바로 전통 명절인 ‘설’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총독부 훈령을 통해 설을 ‘구정’으로 격하하고, 설을 쇠는 행위를 탄압하며 양력설(신정)을 강요했다. 그러나, 한민족의 전통과 정신을 말살하려고 강제된.. 2025. 12. 31.
[오늘] 혁명의 완수-쿠바혁명군, 아바나에 진입 [역사 공부 ‘오늘’] 1959년 1월 1일, ‘7월 26일 운동’ 주력부대 아바나에 진입산타클라라 전투의 승리 이어 아바나 진입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라울 카스트로 등이 이끄는 쿠바의 청년 게릴라 전사들은 1958년 12월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독재자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하였다. 그리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7월 26일 운동’ 세력의 주력 부대가 아바나에 진입하였다. 그것은 1953년 7월 26일 시작된 쿠바혁명의 완수였다. 당시 쿠바는 1933년 9월 ‘하사관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쿠데타 이후 최고 권력자가 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194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 2025. 12. 31.
[오늘] ‘관제 뉴스 공급’ 시대, 퇴장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31일, 종영1994년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정부가 1963년부터 제작하여 영화관에 보급, 상영했던 대한뉴스>가 종영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대중매체에 소외되어 있었던 국민에게 뒤늦게나마 뉴스를 공급함으로써 소임을 다했던 이 ‘관제’ 뉴스는 2040호를 끝으로 종영했다. 종영, 관제 뉴스의 종말 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집집이 텔레비전 등의 매체가 보급되고 인터넷 시대가 가까워졌는데 이미 보고들은 뉴스를 강제로 다시 보게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면서였다. 1994년 8월 와 문화영화를 폐지하는 영화진흥법안이 최종 확정된 데 이어 이날, 는 마침내 종영된 것이었다. 는 TV 보급이 보편화 되기 전, 국민에게 나라 소.. 2025. 12. 30.
[오늘] 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원주민 300여 명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90년 12월 29일-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인디언 300여 명 학살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 병사 500여 명은 운디드니(Wounded Knee: 상처 입은 무릎) 내와 그 주변 언덕에서 북아메리카 수족(Sioux) 원주민 300여 명을 학살했다. 기관총까지 동원한 이 학살로 인디언 전사, 노인,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포함된 350명의 수족 가운데 30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멸망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끔찍한 비극이었다. 미합중국의 ‘서부 개척사’는 백인들에겐 ‘프런티어(Forontior)’ 정신의 발현으로 이룬 위대한 성취였지만, 인디언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정신’( 옮긴 이 후기)이었을.. 2025. 12. 29.
[오늘] 장태수, ‘원수의 돈’ 일제 은사금 거부하고 목숨을 거두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12월 28일, 장태수 24일 단식으로 순국하다1910년 12월 28일(음력 11월 27일) 수요일, 전북 김제 금구의 남강정사(南崗精舍)에서 일유재(一逌齋) 장태수(張泰秀, 1841∼1910) 선생이 예순아홉 살을 일기로 순국하였다.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하며 단식에 든 지 24일 만이었다. 장태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내부협판 장한두의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 1861년 약관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이래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일유재, 24일 단식 끝에 순국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장태수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2025. 12. 29.
[순국] 의열단원 나석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다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 동척에 투탄, 자결 1926년 오늘, 이틀 전 중국에서 인천항으로 귀국한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 1892~1926)는 찬바람이부는 경성 거리, 조선식산은행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싼 폭탄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주머니 속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의 산업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으로 일본제국의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이었다. 식산은행은 채권으로 확보한 일본 측 자본을 조선의 산업 기관과 개인에게 빌려주고, 그로부터 회수한 원금과 이자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금융기관이었다. 수탈기관 동척에 폭탄을 던지다 식산은행의 창구는 연말이라 일본인 고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벗기고 안전.. 2025. 12. 28.
이관술, 79년 만의 명예 회복, 이제 독립운동가로 ‘복권’만 남았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이관술 선생, 재심에서 무죄 선고‘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중에 처형된 독립운동가 이관술 선생(1902~1950)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47년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난 뒤 무려 79년 만이다. 이례적으로 검찰도 무죄를 구형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 기사 : 79년 만의 명예 회복…‘조선정판사 사건’ 이관술 선생 재심서 무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이관술, 재심에서 무죄 선고 지난 12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현복)는 이관술의 ‘통화위조’ 등 혐의 재심 사건 선고공판에서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공산당 간부였던 이관술 선생은 1945년 말에서 1946년 초.. 202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