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215 [오늘] 작가 이균영, 불의의 사고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96년 11월 21일, 작가 이균영 교통사고로 스러지다1996년 오늘, 소설가 이균영(李均永, 1951~1996)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84년 ‘이상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작가이면서 단독 연구서 (역사비평사, 1993)로 단재학술상을 받기도 한 역사가는 그렇게 마흔다섯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이균영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1977년 신춘문예(단편소설 ‘바람과 도시’)로 등단하였지만, 한양대 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역사학도였다. 그는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에서도 활동하였다. 작가 이균영, 마흔다섯에 가다 1984년 중편소설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제8회 이상문학상 본상을 받았을 때 그는 서른셋의 청년이었다.. 2024. 11. 21. 절정 직전의 ‘피아골 단풍’, 그 자체로 완벽한 풍경 4색의 스펙트럼, 가을 지리산 단풍이 보여주는 ‘천의 얼굴’*PC에서는 사진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원본(1000×667) 크기로 볼 수 있음.지난 주말(10월 30일)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 피아골을 찾았다. 2019년 10월 31일에 이어 꼭 2년 만이었다. 그때도 아내와 나는 단풍을 보겠다고 피아골을 찾았었다. 우리는 연곡사를 거쳐 직전마을에 이르는 길을 오르면서 길 옆 계곡의 단풍을 구경했었다. ‘화염’으로까지 비유되는 지리산 단풍을 상상해 온 내게 이제 막 단풍으로 물드는 계곡의 가을은 좀 심심했다. 아직도 푸른빛을 마저 벗지 못한 채 드문드문 눈에 띄는 단풍나무들이 연출하는 붉은 점경(點景)을 투덜대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관련 글 : 되돌아보는 2019년 가을 ‘단풍’]2년 만의 피아골.. 2024. 11. 19. [오늘] 1998년 오늘-금강산 유람선 ‘현대 금강호’ 첫 출항 [역사 공부 ‘오늘’] 1998. 11. 18. 동해항에서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1998년 11월 18일 오후 5시 44분, 동해항에서 실향민과 관광객, 승무원 등 1400여 명을 실은 2만8천 톤의 대형 유람선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했다. 분단 반세기, 금단의 땅을 향하여 돛을 올린 금강호는 2시 50분에 북방한계선을 넘었고, 19일 오전 6시 금강산의 관문인 장전항에 닿았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된 관광객들은 사흘 동안 구룡폭포와 만물상, 해금강 등을 돌아보고22일 오전 6시25분 동해항으로 귀환했다. 이후 금강산 유람선 관광은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다.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치른 남북한이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 2024. 11. 18. 이토록 비현실적인 ‘단풍 터널’, 딱 이번 주까지입니다 [사진] 혼자 보기 아까운 팔공산 단풍길 풍경* 사진을 누르면(클릭)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늦가을 단풍 찾기는 2019년에 내장산에서 정점을 찍었다. 퇴직 이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는 ‘탐승(探勝)’의 시간으로 내장산 단풍은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동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올해 아내의 지인은 두 번이나 내장산을 찾았다가 차를 대지 못해 되돌아왔다고 하니, 새벽에 길을 나선 2019년의 선택이 새삼 흐뭇하게 되짚어지지 않을 수 없다.(관련 기사 :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화요일 점심때가 겨워서 집을 나선 것은 굳이 어딜 가겠다는 마련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가산(901m)과 팔공산(1,192m) 사이에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한티재.. 2024. 11. 17. [오늘] 우당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2년 11월 17일 –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1932년 11월 17일, 예순여섯의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이 중국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 36호 감방에서 눈을 감았다. 11월 5일, 상하이에서 영국 선적의 남창호(南昌號)로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된 지 12일 만이었다. 다롄경찰서에서 열흘 넘게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본적지 조회조차 거부했다. 그의 유해를 모시러 간 딸 규숙에 따르면 그의 안면을 확인하니 ‘선혈이 낭자하였고 타파오(大袍, 중국 의복)에도 선혈이 많이 묻어 있었다’. 우당이 상하이를 떠나 다롄으로 향한 것은 만주의 연락 근거지 확보와 지하공작 망 조직, 주만(駐滿) 일본군 사.. 2024. 11. 17.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난생처음 본 내장산 단풍터널… ‘가을의 본좌’는 단풍부터 다르다가을이 ‘단풍의 계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야 없지만, 단풍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단풍을 보겠다고 길을 떠나도 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걸음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 일쑤다. 한 열흘쯤 늦추거나 당기면 맞아떨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수월치 않은 것이다. 가을 단풍의 본좌 그간 단풍 이야기를 두어 차례 기사로 썼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와 대구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이다. 도리사 단풍은 핏빛이라는 기억을 돌이키려 두어 차례, 팔공산 단풍길은 꽤 여러 해에 걸쳐 찾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나.. 2024. 11. 16. [오늘] 일본의 강압으로 불평등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 체결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1월 17일,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가 골자인 조약1905년 오늘,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첫 단계였던 이 조약의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었다.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5조약’으로 불리는데 우리 세대는 6, 70년대 국사 교과서에서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우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일한협약’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부른다. 강압에 의한 불평등조약 체결 일본이 .. 2024. 11. 16. 청년 노동자 전태일, 스스로 자신을 불살라 ‘인간 선언’을 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11월 13일 -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준수 요구 분신“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은 금요일이었다. 오후 1시 40분께,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한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화염에 휩싸여 몇 마디의 구호를 절규하듯 외쳤고, 이내 자리에 쓰러졌다. 청년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받았으나 14일 오전 1시 30분에 숨졌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1948~1970). 대구에서 태어나 상경, 1965년 ‘시다’(견습공)로 평화시장 ‘삼일사’에 입사해, 1966년 ‘통일사’에 미싱사(재봉공)로 들어갔고 1967년에는 재단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 2024. 11. 12. 2024, 우리 동네 도서관의 가을 봉곡도서관 뜰에서 깊어 가는 가을*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사는 곳 인근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복된 일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를 기르는 어버이라면, 그리고 가끔 도서관으로 나들이하여 책을 빌리고 그걸 읽는 사람이라면 지척의 도서관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안동에서 오래 살다가 구미로 옮아오면서 첫 집을 구할 때, 나는 도서관 근처라는 데 듬뿍 점수를 주고 이 동네에서 터를 잡았다. 그러나 퇴직하기 전까지는 도서관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업도 많았고, 월 2회 일요일엔 방송통신고 수업이 있었으니, 막상 짬을 내기 어려웠었다. 4년 뒤인 2016년 퇴직하고 맨 처음 한 일이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는 일이.. 2024. 11. 11. [오늘] 1948년 오늘-도쿄재판, 일본전범 7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다 극동국제 군사재판, 일본 전범들에게 사형 선고1948년 오늘,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재판장 윌리엄 웹 경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11월 4일부터 시작된 판결에서 재판부는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등 16명에게는 종신형,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등 2명에게는 각각 20년, 7년의 유기금고형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자에 대한 심판은 마무리되었다. 60여 명 이상의 전쟁 범죄 용의자로 지명된 자 중 28명이 기소되어, 판결 전 병사자 2명과 소추 면제자 1명을 제외한 25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동경재판, A급 전범 25명 실형 선고 극동국제군사재판을 설치한 법적 근거는 직접적으로는 일본이 1945년 9.. 2024. 11. 11. [오늘] 일제, 동화정책의 최종판 ‘창씨개명’을 명령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9년 11월 10일, 일제 ‘조선민사령’ 개정 창씨개명 강제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중 개정의 건’(제령 제19호)과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제령 제20호)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창씨(創氏)]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본식 성씨를 만드는 ‘창씨(創氏)’가 핵심이었던 이 제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조선식 성명제(姓名制)를 폐지하고, 이 영(令)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호주가 새로운 일본식 성씨(姓氏)를 정하여 신고할 것.2. 조선에서도 서양자(壻養子,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를 인정하며, 서양자는 처가의 .. 2024. 11. 10. [오늘]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11월 9일-김원봉, 항일비밀결사 ‘의열단’ 조직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 한 중국인의 집에 모인 독립지사들은 밤새워 논의한 끝에 이튿날인 급진적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결사의 성격은 조직 후 만든 공약 10조의 첫 조항인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에서 유래한 단체명[의열(義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의열단의 단원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으로 고문에 김대지와 황상규, 단원은 김원봉·윤세주(1900~1942)·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13명이었다. 단장에는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선출되었다. 의열,.. 2024. 11. 8. 이전 1 2 3 4 ··· 185 다음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