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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쑥골통신

‘봄의 완성’도 우리의 ‘몫’입니다

by 낮달2018 2020. 3. 16.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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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없는 봄’도 축복입니다

 

▲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창조해 낸 시민의 탄생은 박근혜 권력의 바탕  ‘박정희 신화’의 퇴조이기도 합니다.

그예 ‘박근혜 없는 봄’이 왔습니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어조의 주문 선고를 듣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간에 기쁨과 감격으로 겨워하며 환호한 이들은 전국에 또 얼마였겠습니까.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른 지 133일 만이었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됨으로써 그동안 열아홉 차례나 촛불을 밝힌 수고로움은 넉넉히 보상을 받았을 터입니다.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해 낸 시민의 탄생은 박근혜 권력의 바탕이었던 ‘박정희 신화’의 퇴조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날, 후배 교사와 함께 선배 한 분을 모시고 가볍게 소주를 한잔했습니다. 혹시 우리처럼 박근혜 파면을 자축하는 모임이 있나 살펴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국민의 정치적 각성이 이루어진 것은 ‘그’ 덕분이라는 데 우리는 동의했습니다.

 

▲  ‘ 맺혔던 한이 터지듯  /  여울여울 붉 ’ 어진 그 꽃으로  ‘ 물이 드는 이 산하 ’ 는 곧 온 나라에 펼쳐지겠지요 .

지난 월요일에 북봉산에 올랐습니다.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겨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였습니다. 산길로 든 지 10분도 되지 않아 길섶에 빨갛게 봉오리를 맺고 있는 진달래를 만났습니다. 일러도 월말은 돼야 피리라고 여겼던 꽃을 예기치 않게 만나는 느낌은 각별했지요. 마치 그것은 ‘그 없는 봄’의 축복 같았습니다.

 

진달래, 생강나무꽃, 산수유가 피는 ‘축복의 봄’

 

스마트폰으로 꽃봉오리를 여러 장 찍고 일어서는데 잠깐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새파란 하늘과 진분홍으로 벙글고 있는 꽃봉오리, 그리고 멀리서 아련하게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봄 풍경이 주는 어지럼증이었겠지요.

 

우리 어릴 적에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먹지 못하는 철쭉이 ‘개꽃’인데 반해 먹을 수 있으므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까짓것 이유야 무엇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봄이 무르익는 시기면 가끔 산에 올라 한나절 산을 헤매곤 했지요.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연신 참꽃을 따 입에 넣어 산에서 내려오는 아이들 혓바닥은 죄다 보랏빛이었지요. 왜 산을 올랐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시절엔 무슨 이유가 있어 산에 가는 것만은 아니었지요. 참꽃을 먹던 그 시절을 나는 ‘먹어도 먹어도 / 배고픈 시장기’(허영자, 봄)라는 시구로 기억합니다.

 

시인은 봄의 역동성과 원초적 본능을 노래했겠지만 내게 늘 봄은 참꽃을 입에 넣던 시절의 조바심 같은 것이었습니다. 슬며시 왔다가 물러가는 봄은 나른하고 달착지근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때로 희망이지만 때론 일탈에 대한 유혹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게 봄은 이영도의 시조 ‘진달래’로 다가오는 아프고 비장한 시간입니다. ‘다시 4·19날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시는 총탄에 쓰러진 젊은이들을 보내고 남은 목숨의 욕됨을 오열로 노래했지요.

 

 

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만든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진달래’를 듣는 이유입니다. 운동권 가요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 노래의 서정은 피 흘린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아프게 반추하게 합니다.

 

‘봄의 완성’은 ‘우리의 몫’입니다

 

‘맺혔던 한이 터지듯 / 여울여울 붉’어진 그 꽃으로 ‘물이 드는 이 산하’는 곧 ‘그’가 없는 이 나라 골골샅샅에 펼쳐지겠지요. 그러나 이 봄을 ‘연연히 꿈도’ 서럽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 산 중턱에서 김유정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한 ‘동백꽃’, 생강나무꽃을 만났습니다.

진달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만났습니다.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한 ‘동백꽃’입니다. 꽃의 빛깔이 비슷해서 흔히들 산수유라고 부르기도 하는 꽃입니다. 하긴 내가 이 꽃과 산수유가 다른 꽃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지요. [관련 글 : 산수유와 생강나무]

 

산에서 내려와 아파트 뜰의 산수유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꼭 아흐레 전에 망울져 있던 산수유꽃이 바야흐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왕관 같기도 한 이 꽃은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 시름 많은 이 나라 햇나락’(박남준, 산수유 꽃나락)입니다.

 

▲  ‘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  시름 많은 이 나라 햇 나락 ’  산수유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

산수유꽃에서 어머니를 본 이는 이문재 시인입니다. 그의 시 ‘산수유’는 산수유의 개화를 어머니가 밝히는 ‘봄 안쪽’의 ‘불’로 비유함으로써 이 꽃에 온화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지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픈 화자에게 다시 따뜻하게 다가온 어머니가 밝힌 불빛은 얼마나 소중한 위로가 되겠는지요.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 따뜻하지만, 아침저녁 날씨는 여전히 쌀쌀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도 잠깐, 어느 날에 봄은 ‘대세’가 되겠지요. 지난 겨우내 촛불을 밝히고 봄을 고대했던 이들과 이 봄의 축복을 나누어야겠습니다. 난만한 봄소식 대신 우선 북봉산 자락에 당도한 봄을 전해 드리면서 이만 총총.

 

2017. 3.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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