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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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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 장신구에서 눈 보호기기까지 선글라스 이야기 선글라스의 계절이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선글라스는 극소수의 한량들이나 끼는, 일종의 특권적 장신구였다. 5·16 쿠데타 후에 찍은 사진 속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와 그 휘하 장교들의 모습이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당시에 그걸 선글라스라고 부른 이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그걸 ‘색안경’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보안경’과 함께 지금 ‘선글라스’를 대체하는 우리말 순화어가 되었다. 그 무렵, 선글라스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라이방’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이웃 마을의 동무들에게서 들었다. 그들은 한창 멋을 부리는 형들 덕분에 새로운 유행어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색안경’의 어두운 기억들 단순히 색안경과 동의어라고 알고 있었던 .. 2020. 7. 21.
한글날, 공휴일로 복원! 나라글자를 기리는 국경일, 22년 만에 공휴일로 복원 내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국가공휴일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11월 8일부로 입법 예고했다. 처음 공휴일로 지정된 1949년 이래 한글날은 41년 동안 국경일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1991년에 ‘경제’에 발목이 잡힌다. 1990년 공휴일 제외 사유 “노동생산성 떨어진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쉬는 날이 많아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군의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들의 끊임없는 공휴일 재지정 청원에도 불구하고 한글날은 복원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한글날이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격상된 게 고작이었다. 이번 ‘관공서의 .. 2020. 7. 20.
180일, ‘나라’가 ‘국민’을 ‘버린 시간’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2년’, 혹은 ‘야만의 시간’ 오늘로 각각 180일, 60일이 지났다. 용산 참사와 평택 쌍용차 파업 농성 이야기다. 올 1월 20일에 벌어진 참사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는 뜻이다. 참사의 희생자 다섯 분-이상림(72), 양회성(58), 한대성(54), 이성수(51), 윤용현(49)-은 지금도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장례를 기다리고 있다. 180일 동안, 무려 180번의 추모문화제가 베풀어졌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전하기 시작한 미사가 100일을 넘기면서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남일당 본당’이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정부에 촉구한 이래 각종 시국선언마다 용산 문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명박 정부.. 2020. 7. 20.
내가 일할 때는 아내가 차마 요구하지 않았던 일 [퇴직 이후, 생활의 복원] 재활용 쓰레기 배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들거나 재활용 쓰레기를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에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장의 폐기물 보관 용기에 서둘러 집어넣고 종종걸음을 치는 젊은 남자를 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제 더는 집안일이 여자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일이 된 것이다. 퇴직하기 전에만 해도 내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내가 바빠서 손이 모자라거나, 내가 하던 작업을 정리하느라고 가끔 쓰레기장에 들르는 일이 고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손수 버린 기억은 따로 없다. 뒷날, 아내는 '종일 일하다 들어온 이한테 그거까지 해 달라고 하기가 거시기해서' 차마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 2020. 7. 17.
‘곤드레밥’이나 ‘콩나물밥’이나 어제 지어 먹은 곤드레밥 어제 아침에 곤드레밥을 지어 먹었다. 얼마 전부터 웬일인지 안동에 살 때 음식점에서 맛본 곤드레밥이 자꾸 생각났다. 마침 산나물이 한창 나는 철이다. 인터넷에서 ‘곤드레나물’로 검색해 보았더니 강원도 쪽에 산지가 여러 곳인 듯했다. 곤드레나물도 말린 것과 생나물을 삶아서 냉동한 것 등이 있었다. 담백한 강원도 나물, 곤드레 대체로 말린 것이 값이 더 나갔고 냉동한 게 싼 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려다 개인 판매자인 단양 쪽의 농장에다 냉동 나물 4Kg을 주문했다. 4Kg이면 얼마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물었더니 밥을 지어 먹는 거라면 20인분쯤이라고 알려주었다. 전화로 주문하고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고 바로 송금을 했다. 배송료는 물건을 받은 뒤 내가 내야 한단다. 잊어버리.. 2020. 7. 17.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바다보단 ‘자작나무숲’ ‘국립 김천 치유의 숲’에서 자작나무를 만끽하다 난생처음으로 자작나무숲을 만났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산(修道山, 1317m)에서다. 강원도 아닌 경상도 내륙에 자작나무숲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을 시청하던 딸애가 스마트폰을 검색한 끝에 김천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였다. 경북 내륙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 그다음 날, 수도산을 향해 떠난 것은 김천농협공판장에 과일을 구경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였다. 경매가 끝나는 정오까지 기다리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국립 김천 치유의 숲’을 입력하고 바로 길을 떠난 것이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십여 분 땀 흘리며 올랐다. 그때 나는 내 목적지가 도선국사가 창건.. 2020. 7. 15.
아이고, 저 소나무는 얼마나 힘들까?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과 ‘반(反) 자연’ ‘호숫가 숲길’이라면 굳이 여행을 즐기는 이가 아니라도 솔깃한 유혹일 수 있겠다. 거기다가 그 길이 내륙 깊숙한 골짜기의 막다른 마을로 가는 산길이라면 흥미는 자연 배가될 수밖에 없다. 토요일 오후 두 시, 어중간한 시간에 우리 내외가 산막이옛길을 찾아 나선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지난 목요일 ‘ESC’에서 소개한 충북 괴산의 ‘산막이마을과 길’ 이야기다. 기사가 전한 ‘숲길 걷기’가 당겼던 것도 있지만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모처럼 쉬게 된 토요 휴무일을 적당한 여행으로 채우고 싶어서였던 데다가 괴산이 한두 시간에 닿을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었던 까닭이다. 마을과 길에 붙은 ‘산막이’라는 이름은 뜻이 두 가지다. 하나는 ‘산으로 막힌 곳’, 다른 하나.. 2020. 7. 15.
‘들어내다’는 돼도 ‘들어나다’는 없다 ‘드러나다/들어나다’, ‘드러내다/들어내다’ “속에 가려져 있거나 잘 보이지 않았다가 잘 보이게 되다.”, “감추어지거나 알려지지 않았다가 널리 밝혀지다.”(다음한국어사전)의 뜻인 ‘드러나다’를 ‘들어나다’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 ‘드러나다’의 사동사인 ‘드러내다’를 ‘들어내다’의 형식으로 쓰기도 한다. 댓글에서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없어서일까. 분철(끊어적기)의 문법 의식? 글쎄, 이유를 굳이 찾자면 이들은 ‘드러나다’를 제대로 쓴 글을 읽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듣기만 하고 써 보지 못한 낱말을 적으면서 엉뚱한 문법 감각이 오작동(?)한 결과로 말이다. ‘엉뚱한 문법 감각’? 학교 문법을 배우면서 익힌 ‘분철(分綴:끊어적기)’에 대한 기억이 환기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발음 나.. 2020. 7. 14.
‘결손 가정’과 ‘정상 가족’ 사이 ‘결손가정’과 ‘정상 가족’ 구분도 ‘인권 침해’다 강원도 고성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면서 이른바 ‘관심사병’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관심사병’이란 군 당국에서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이르는 말인데, 정작 그걸 판정하는 기준이 영 ‘아닌’ 것 같다는 게 요지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적응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기초생활 수급자’나 ‘한 부모’ 가정 출신 병사는 으레 ‘관심사병’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예 한 부모와 미혼모 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국한부모연합’ 회원들이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1인시위에 나서게 되기에 이르렀다. 1인시위에 나선 한 부모들이 든 피켓에는 ‘오바마가 한국에 살았다면 그 또한 관심사병(병사)!’, ‘결손가정, 경제적 빈곤자 관심사병 분류는 명백한 인권침.. 2020. 7. 13.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2020. 7. 12.
화왕산 기슭에서 ‘용을 보다’ 돌담과 돌장승의 절집, 관룡사(觀龍寺) 기행 고통스러운 중생의 삶이 ‘이 언덕(차안:此岸)’에 있다면 바다 건너 ‘저 기슭’이 바로 피안(彼岸)이다. 그것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일’, 즉 바라밀다이다. 피안은 생사의 바다를 건넌 깨달음과 진리, 무위(無爲)의 언덕을 뜻하니, 열반 곧 니르바나의 경지를 이르기도 한다. ‘번뇌가 소멸하여 삶과 죽음마저 초월한 상태로서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바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고통 없는 피안의 세상으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가 바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반야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 ‘바라밀다(彼羅蜜多)’는 ‘피안의 세계로 간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절집은 흔히 깨달음을 얻어 도달해야 할 피안의 세계를 향하는 배와 같은 모.. 2020. 7. 12.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 2020.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