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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함께 읽기

아이들의 글, 순위를 매겨주세요

by 낮달2018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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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념 백일장 입상작, 순위를 한 번 매겨주세요

▲ 어느 눈 오는 날 아침. 3층 교무실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서 문득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학교의 한글날 기념 백일장은 12일에 열렸다. 한글날인 9일은 ‘놀토’였고, 그다음 주 토요일인 16일에는 다른 행사가 겹쳤기 때문이다. 해마다 내가 제목을 챙겼지만, 올해는 시를 쓰는 동료 교사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제목은 ‘책’, ‘꿈’, ‘교실’, ‘향기’ 등 네 개였다.

 

글쓰기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남학생과 비기면 훨씬 섬세한 감수성의 여자아이들이지만 얘들에게도 이런 형식의 글쓰기는 쉽지 않다. 두 시간 동안 원고지를 붙들고 끙끙대긴 했지만, 정작 아이들의 글 가운데 ‘정말 잘 썼다’ 싶은 글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일주일쯤 아이들의 글을 책상 위에 묵혀 두었다가 담당 교사의 채근을 받고서야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그걸 다 일일이 다 읽어 내느냐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 글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좀 부풀려서 “두 문장만 읽어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잘 썼거나 될성부른 글’은 첫 문장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읽을 땐 기분이 참 좋다. 나는 그런 글을 쓴 아이의 감성에 어떤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곤 하는 것이다. 백일장 뒤에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연약하지만 건강한 영혼을 확인하는 것은 때로 벅찬 일이기도 하다.

 

시는 일차로 추린 글을 동료에게 맡겼고, 산문은 내가 최종 등위를 매겼다. 글에다 점수를 매기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잣대 따위는 없다. 있다면 자신의 취향과 기호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나는 이렇게 글을 뽑았다. 그런데 등위는 전적으로 나의 주관에 따른 것이다. 다른 선생님께서 뽑는다면 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등위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걸 읽는가에 따라 등위는 바뀔 수 있다. 글과 글 사이의 차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각각의 글들은 그 나름의 개성과 의미로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아래에 순서 없이 실은 세 편의 글은 이번 백일장의 입상작이다. 나는 물론 이 글들에 등위를 매겼다. 이 글을 읽으시는 이웃들께 부탁드린다. 댓글에다 이들 세 편의 글에다 순위를 매겨주시길.(다른 뜻은 없다. 나는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갈리는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아울러 이런 글을 쓴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주시길…….

 


 

 

내 꿈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심리 치료사였다. 내 마음에 어둠이 가득 차서 괴롭고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음의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에 나는 심리 치료사란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일을 통해 과거의 나처럼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심리 치료사가 되기를 꿈꾸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별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나는, 마찬가지로 낮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뻥 뚫리는 듯했다. 밤낮의 하늘을 보며 위안을 받아, 별과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나 기상 관측자를 꿈꾸기도 했다.

 

나는 또 식물을 키우는 원예가도 되고 싶었다. 사람이 아닌 식물과 함께 있으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꿈을 꾸었다.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을 만져주고 싶었고, 나를 위로해 준 것들과 생활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모순되게도, 어려움 가운데에서 내 꿈을 찾게 된 것이다. 비록 내가 나중에 무엇이 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작지만 큰 꿈을 꾸어 본다.

 

 

사람의 향기

 

 

우리 주변에는 항상 많은 ‘냄새’가 있다. 땀 냄새, 비누 냄새, 화장품 냄새, 풀 냄새……. 책상에서는 나무 냄새가 나고, 지우개에서는 고무 냄새가 난다. 어떤 사람들은 바람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한다. 냄새? 내가 좋아하는 풀 ‘냄새’가 겨우 ‘냄새’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향기’는 어떨까? 비누 향기, 화장품 향기, 바람 향기, 풀 향기. 그리고 땀 향기, 고무 향기……. 뭔가 이상하다. 땀 ‘향기’라고?

 

‘향기’란 ‘좋은 냄새’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같은 냄새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향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풀 ‘향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풀 ‘냄새’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향기’가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냄새’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아주 기분 좋은 ‘향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잘못된 성격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향기’가 되려고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를 버릴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향기는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좋은 ‘향기’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다. 남들이 나를 아무리 ‘향기로운 사람’이라 말해도, 내가 나에게서 ‘향기’를 발견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기억 속의 교실

 

 

초등학교 시절, 그때의 교실은 나무 바닥과 까칠까칠한 책상과 의자였다. 내가 살던 곳이 시골이어서 그랬던가…….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제외하고는 전자제품은 없었다. 온몸이 떨릴 정도의 추운 겨울이 되면 난로가 교실을 따뜻이 밝혀주었다.

 

그 난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손발을 녹이는 친구들, 고구마, 감자를 들고 와 그것들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 차가운 우유를 데워 먹으려 뜨거운 난로 위에 우유를 놔두는 친구들. 나는 그런 교실에서 자라왔다.

 

여름이 되면 사방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기 자리엔 바람이 오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친구, 무더운 날씨 속에 축구하고 온 뒤 땀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친구들이 있는 교실이었다. 비록 시설이 좋지 않고, 친구들도 적은 우리 교실이었지만 화기애애한 웃음이 넘치는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그런 추억의 장소이다.

 

지금의 교실엔 나무가 아닌 새하얀 바닥과 매끈한 책상, 의자, 또 빔프로젝터와 같은 기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더울 때면 에어컨을 켜 땀을 식히고 추울 때면 히터를 켜 몸을 녹인다. 아이들이 모두 mp3를 귀에 꽂고,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찾으며, 피엠피(PMP)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보는…… 정을 느낄 수 없는 교실이 되어버렸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미래엔 교실이란 장소가 사라지고 없겠지? 집에서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 속의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있겠지. 친구들과 시끌벅적 뛰놀던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함께 웃으며 공부하는 그런 교실은 사라지겠지.

 

차라리 예전의 교실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따뜻한 난로의 온기 속에서 함께 공부하는, 자연의 바람 속에서 전자제품이 아닌 친구들과, 화면 속 선생님이 아닌 눈앞의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는 그런 교실. 내 기억 속의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

 

 

 

2010. 10. 28. 낮달

 

 

그날의 댓글들

 

풍경과 시 2010/10/29 13:56

선생님! 진짜 순위 매겨도 돼요? ㅎ

저는요 <사람의 향기>에 1등을

나머지 두 작품은 공동 2등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의 향기>는

‘자신만의 향기를 가져야 한다’는 끝부분이 좀 교훈적인 냄새가 나긴 하는데요. 냄새와 향기를 구분한 발상이 참신해서 그게 제 입맛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기억 속의 교실>은 글이 좀 투박하지만 진솔하고요. <꿈>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글이 매끄럽게 이어지고요(‘나’라는 주어가 좀 많기는 하네요.)

이상, 제 취향대로 순위를 매겼습니다. 요건 순전히 샘의 강요로...

 

낮달 2010/10/30 08:32

순위 매기라고 올린 글인걸요?

풍경님이 매긴 순위, 어디서 많이 본 순위네요.^^

제가 매긴 순위는 좀 있다 공개합니다.~

 

거니리 2010/10/29 14:14

어리버리한 생활에

어수선한 교육청 상황을 전해 들으며

10월이 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영어글쓰기를 하여

방금 금은동 가려놓았습니다.

 

역시 진솔한 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1등 사람의 향기

2등 기억속의 교실

3등 꿈

저의 취향으로 정했습니다.

 

낮달 2010/10/30 08:33

영어쓰기도 쓰기는 쓰기는 아이들 솜씨가 나타나겠네. 국어 잘하는 녀석이 역시 영어도 잘하지 않나 싶은데...

 

해를그리며 2010/10/29 15:03

저는 ‘꽃들에게 희망을’의 마음으로 ‘꿈’에 한 표입니다.

자신의 어려움이 단지 어려움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갖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학생이 앞으로 겪을 더 큰 어려움에도 꾿꾿하게 극복할 것을 믿으면 한 표입니다. ㅎ

 

낮달 2010/10/30 08:34

‘꿈’은 서술의 흐름에서 만만찮은 개성을 자랑하지요. 아이의 순진한 마음도 드러나면서도 격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뽑힌 글이지요.

 

미나리 2010/10/29 16:20

나는 ‘기억 속의 교실’에 1표, ... 내 ‘취향’보다 애써 글을 쓴 아이를 위해!

 

낮달 2010/10/30 08:35

‘애써’라는 표현에는 나도 한 표!

 

지나가던 문외한 2010/10/29 16:58

“사람의 향기”는 문장에 문외한인 제 눈에도 상당히 세련되고 논리정연해 보이네요.

허나 사람의 마음을 잡는 건 뛰어난 문장력만은 아닌 듯하고...사람들의 취향을 보려 한다 하시니

저는 “기억 속의 교실”에 한 표 드리겠습니다.^^

 

낮달 2010/10/30 08:35

...교실이 뜻밖에 많이 뽑히네요...

 

호박 2010/10/29 17:42

‘향기’가 주제를 끌어가는 힘이 있군요. 1등입니다.

‘교실’에서 정이 느껴집니다. 2등.

소박하고도 낙관적 전망을 드러내는 ‘꿈’이 3등입니다.

ㅎ~ 요거 재밌는데요.

 

낮달 2010/10/30 08:36

재미있지요?

그런데 이게 상품의 차이가 2만 원 가까이 나면 작품 심사가 반드시 재미있지만은 않지요.^^

 

낙화암 2010/10/29 21:04

국어선생님 앞에서 등수 매긴다는 것이 우습지만

저는 단연 ‘꿈’에 일등을 주겠습니다

차분하고도 진솔하게 잘 썼네요

2등은 기억속의 교실이구요

그리고 사람의 향기를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인데

냄새와 내음은 어떻게 다르지요?

땀냄새 똥냄새 같은 것이 느껴지는 냄새보다

풀내음 갯내음 젖내음처럼 내음이 훨씬 어감이 좋으네요

 

낮달 2010/10/30 08:38

‘냄새’는 표준말, ‘내음’, ‘내음새’는 경상도 방언. 문제는 방언이 가진 의미의 울림이 훨씬 좋아서 시어로도 간택된다는 점이지요...

 

river 2010/10/30 09:53

순위를 정하는 거 좀주저되지만

저는 별점을 주고 싶어요

 

꿈에 ★★★★★

기억의 교실 ★★★★

사람의 향기에 ★★★

 

저는 글의 내용만 읽었습니다 ^^ ;

 

낮달 2010/10/30 20:41

저마다 다른 취향과 안목을 확인합니다.^^

 

플라치도 2010/10/30 16:46

기억 속의 교실 >꿈 > 사람의 향기 ^^

 

낮달 2010/10/30 20:42

아하! 그렇게 읽으셨다고요...^^

 

숨은그림찾기 2010/10/30 18:30

저 역시 ‘꿈’ 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힘든 시간의 과정 속에서 얻은 꿈이기 더욱 소중할테구요. 무엇이 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진정으로 바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이 진솔합니다...

하고 싶은 일엔 최선을 다 할테니까요~... ^^

또한 남을 돕고자 하는 그 마음도 참 이쁘네요…….

 

낮달 2010/10/30 20:49

의견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의 마음까지 읽으셨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매긴 점수입니다.

저는 향기>꿈>교실의 순서로 점수를 주었습니다.

장원 1명과 차상 두 명을 주다 보니 향기가 1위, 꿈과 교실은 공동 2위가 된 셈입니다.

처음에는 꿈에 최고점을 주었다가 나중에 바꾸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밀고 가는 힘과 완성도에서 향기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나 꿈이 보여주는 서술의 유려함에도 오래 미련이 남았습니다.

교실도 아주 소박한 마음을 드러내는 진솔한 글이었지요. 그러나 미래의 교실에 대한 상상이 비약이 있는 데다 부분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문장의 결이 아쉬웠습니다.

여러분들의 취향과 안목을 확인하면서 비록 순위를 정하긴 했지만 사람의 개성과 생각을 담고 있는 글을 계량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이웃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함께 2010/10/31 16:19

저는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도 좀 했는데 상을 받지 못해서 나름 국어선생에 대해 서운한 감정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내가 선생이 되어 아이들이 쓴 글을 보고나서 ‘내 글을 글도 아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어찌 어린 학생들이 그리 야무지고 감동적으로 글을 쓰던지......

 

낮달 2010/11/01 13:38

아이들의 글도 빛나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냥 기존의 글법을 따라가는 매끄러운 글보다 자기만의 진정성을 담고 있는 아이들의 글을 아름답게 빛나지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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