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237

77년 만의 귀환 - 석주(石洲) 이상룡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분들이니 이들의 국적 회복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등 독립운동가 예순두 분. 임시정부 수립(1919) 90년 만이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는 독립지사는 이상룡, 이봉희, 김대락 선생 등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는데, 이봉희1868~1937)는 선생의 아우이고,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은 선생의 처남이다. 석주가 류인식·김동삼 등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1907)를 세웠을 때, 백하는 문중 원로들과는 달리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경.. 2019. 2. 14.
줄다리기, 남녀의 성적 결합이 풍작을 낳는다 영주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와서 지난 정월 대보름에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왔다. 지방자치 시대의 민속 행사는 지역마다 다투어 벌어지긴 하지만 그 내용이야 거기가 거긴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안동에도 보름날 밤에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베풀어진다. 그런데도 굳이 아침 일찍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순흥에 이른 것은 ‘초군청’이라는 이름이 은근히 풍기는 흥미 때문이었다. 순흥 초군청은 개화기 때 농민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와 향중(鄕中) 사회의 질서회복을 위해 결성한 전국 유일의 순수 농민 자치기구다. ‘초군청’의 ‘초군’은 말 그대로 ‘나무꾼’이다. 그것은 ‘관군’이나 ‘양반’과 맞서는 ‘민간’과 ‘서민’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유일의 농민자치 기구 ‘순.. 2019. 2. 13.
윤동주는 정말 생체 실험에 희생되었는가 후쿠오카에서 순국한 윤동주 시인, 그 죽음의 미스터리 (SBS 특집) 아이들과 함께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을 공부한 것은 지난 학기였다. 그의 시를 읽거나,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는 거기 각별한 울림이 있다고 느낀다. 특히 「별 헤는 밤」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아주 특별하다. 뭐랄까, 자신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한 시인의 태도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진정성 같은 것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와 그의 시가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진정성과 고결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윤동주는 모두 100편에 못 미치는 시를 남겼다. 그러나 현행 18종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비롯하여, 「간(肝)」, 「길」, 「또 다른 고향」, .. 2019. 2. 12.
우리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까닭 왜 우리 지폐 도안 인물에 ‘독립운동가’가 없을까 마침 때가 되었다. 평소에는 입에 올리지 않는 ‘독립’이니 ‘운동’이니 하는 낱말이 줄줄이 소환되고 관련 논의의 밑돌을 까는 때 말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 망명지에 ‘가(假)정부’ 하나 세운 거지만 어쨌든 1910, 경술년에 나라가 망한 뒤 처음으로 ‘왕정’(대한제국)에서 ‘공화정’(대한민국)을 선포한 해니, 그 100돌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 지폐엔 독립운동가가 없다 온 나라가 이 10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어저께는 2·8독립선언 기념식이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고, 20일 뒤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4월 11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2019. 2. 11.
페이스북, 나는 ‘공유’되고 싶지 않다 디지털 ‘지진아’의 페이스북 출퇴기 지난주에 나는 페이스북(facebook)을 탈퇴했다. 페이스북 초기화면에는 ‘가입하기’는 있는데 ‘탈퇴하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단지성(!) 인터넷에 대고 물었다. 뜻밖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았나 보다. 친절한 누리꾼들은 로그인 상태에서 탈퇴하기를 누를 수 있는 주소를 올려놓았다. 나는 예의 주소로 가서 ‘탈퇴하기’를 누름으로써 약 두 달 남짓의 ‘페이스북 시대’(?)를 청산했다. 탈퇴하기로 결정하는데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페이스북에 가입한 것은 우연이었다. 전자우편함에서 발견한 지인의 이름을 따라갔는데 튀어나온 게 페이스북이었던 것이다. ‘가입하기’를 누를 때도 별 망설임은 없었다. 수틀리면 탈퇴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것은 아마 컴퓨터.. 2019. 2. 11.
다시 난설헌을 생각한다 ‘현모양처’가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위대한 문인 허난설헌 신영복 선생의 ‘난설헌 생각’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된 논란이 어지러웠다. 신사임당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엉뚱하게 동시대의 여성 허난설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란 글에서 신영복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 나오면서였습니다.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중에서 선생은 오죽헌을 .. 2019. 2. 10.
[오늘] 3·1운동의 ‘마중물’, 2·8독립선언도 100돌을 맞는다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2월 8일, 동경유학생들 ‘조선 청년 독립선언’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지만, 100돌을 맞이하는 게 3·1운동만은 아니다. 기미독립선언 한 달 전에 동경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과, 한 달쯤 뒤인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역시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2·8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망명지 상하이에서의 임정 수립으로 이어졌다. 동경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 동경유학생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최팔용(崔八鏞) 등이 조직한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은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였다. 이날 열린 조.. 2019. 2. 8.
성차별, 2013년 미국과 대한민국 미국의 성 편향 표현 대체법안 통과에 즈음하여 기사 두 개, 미국과 한국 며칠 전 뉴스에서 기사 두 개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외신으로 미국 워싱턴 주가 주(州)법 조항에서 경찰관을 뜻하는 단어 ‘policemen’과 신입생을 의미하는 단어 ‘freshmen’을 없앴다는 소식[☞ 관련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승무원의 복장을 치마로 제한한 아시아나 항공에 유니폼 바지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는 뉴스[☞ 관련 기사]다. 마침 고정희의 시 를 배운 뒤끝이라 아이들과 이 상반된 기사 두 건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주법 조항의 모든 단어를 ‘성(性) 중립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제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와 이제야 국가기구가 민간기업의 성차별적 관행에 제동을 건 나라의 차이는 어떨까 하고.. 2019. 2. 7.
가사노동,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 이 땅의 숱한 ‘구자명 씨’를 위하여 어버이 모두 돌아가시고 10년째 다시 설날을 맞는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은, 또 부모님을 뵈러 큰집으로 떠날 일이 없는 설날은 여느 날과 그리 다르지 않다. 객지에 나가 있던 아이가 돌아오는 거로 새삼 명절이란 걸 확인하긴 하지만 쓸쓸하기야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딸애를 데리고 아내가 장모님을 뵈러 떠난 빈집에 아들 녀석과 둘이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섣달 그믐날, ‘작은 설’의 반나절을 보냈다. 처가에 가 장모님 음식 장만하는 걸 돕다가 오후에야 돌아온 아내는 이내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제대로 감기가 온 모양이었다. 영화 구경을 하자던 아이들의 청도 한사코 마다한 아내를 남겨두고 우리는 시내에 나갔.. 2019. 2. 6.
‘낯섦’의 시간, 기해(己亥)년 설날에 2019, 기해년 설날을 맞아 육십갑자 가운데 서른여섯 번째, 기해년 설날이 밝았다. 1962년부터 공식적으로 연호를 서기로 쓰게 되면서 이 갑자는 사실상 역법의 기능을 잃었다. 다만 해가 갈리는 연말과 연시에 반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그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들의 띠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올해는 기해(己亥)년이니 돼지띠의 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법칙에 따라 갑자를 이루는 천간(天干, 앞글자)과 지지(地支, 뒷글자)는 모두 각각 음양, 오행(목·화·토·금·수), 오방색(五方色, 청·홍·황·백·흑)을 나타낸다. 기해년은 천간인 ‘기(己)’는 음양으로는 음(陰), 오행으로는 토(土), 빛깔은 황이다. 지지인 ‘해(亥)’는 음양으로는 음(사주에서는 양), 오행으로는 수(水), 색.. 2019. 2. 5.
갑을병정, 자축인묘…, 간지는 과학이다 간지(干支), ‘미신’ 아닌 ‘과학적 전통’ 이다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아침에 한 뭉치의 새해 특집호가 배달되었고, 텔레비전 채널마다 새해를 기리는 프로그램이 바쁘다. 무싯날처럼 심상하게 제야를 지냈고, 역시 여느 날처럼 새해 아침을 맞은 나는 아내와 잠깐 덕담을 나누는 거로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2010년은 범의 해, 경인(庚寅)년이다. 해를 간지(干支)로 표기해 온 우리의 전통은 꽤 역사가 깊다. 간지는 ‘동양적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으로 우주 만물이 주역의 이치에 따라 순행함을 나타낸다.’ 일찍이 중국에서 들어온 간지는 한국 민족문화와 민간신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태양력의 도입과 함께 급격하게 쇠퇴했다. ‘간지’는 미신 아닌, ‘과학적 전통’이다 한때 사람들은 자기 출생연도의 간지를 .. 2019. 2. 4.
말에 담긴 ‘차별과 편견’ 넘기 국립국어원 펴냄 말 속에 ‘차별’이 담겨 있음은 두루 아는 일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는 늘 그런 것을 의식하고 사는 편이다. 생각 없이 흘린 말도 뒤에 되짚어보면 그게 어떤 ‘차별’로 이어지지 않나 싶어 기분이 찜찜할 때도 많다. 글을 쓰는 것은 그나마 성찰할 여유가 있어 낫지만,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니 더욱 그렇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고 힘쓰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앉은뱅이 용 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잘 검색되지 않는다. 일본 속담에 ‘멸치의 이 갈기’와 함께 ‘앉은뱅이 용쓰기’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이 속담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일 수도 있겠다. 부모님 세대로부터 이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저도 몰래 그 속담을 인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원뜻보.. 2019.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