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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이문열, 다시 ‘홍위병’을 불러내다

by 낮달2018 2020.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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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열의 지겨운 ‘홍위병론’, 철 지난 현실 인식

▲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 ⓒ KBS 누리집

작가 이문열이 다시 ‘한 건’한 모양이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늘 오전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 출연해 또 그 특유의 신념과 현실 인식을 피력한 것이다. ‘홍위병’과 ‘의병’에 이은 제3탄인 셈이다.

 

그의 현실이나 역사 인식의 범주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긴 것처럼 이번 발언도 ‘홍위병’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번 발언의 요지는 옛 ‘홍위병들이 권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각 분야에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국회에서 MB악법 저지를 외치며 농성하고 있는 야당이나, ‘권력의 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나선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은 모두 한통속에 불과하다.

민경욱
네. 참 어려운 질문을 제가 좀 드리겠습니다. 지난 2001년에 이른바 홍위병 파문이 있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시민단체를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이제 시간도 7년이 지났고 정권도 바뀌었습니다. 돌이켜봐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이문열
네네. 지금 각박하게 의심을 한다면은 그때 그 호위병들이 각 분야의 권력 핵심에 들어가서 재미를 보다가 이제 내놓게 되니까 각 분야에서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중략]

민경욱
네. 선생님께서는 보수 우파의 입장에 서신 것으로 저희들한테 보여졌었는데요. 지난 연말에 한 강연에서 ‘지난 10년간 내가 보수 우파에 앞장서서 대변했지만, 과연 잘한 일이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 감정이 없는 두 아이를 불러다가 마주 보고 따귀를 때리게 한 것처럼 지식인들에게 따귀 때리기를 시킨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언급을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였습니까?

이문열
그게 바로 이제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보수의 논리 중에서도 자기들의 어떤 기득권 혹은 자기들의 이익 상실, 적이라든가 민주주의로 분식해서 그것도 자유 민주주의였지만은, 그래서 이제 우긴 것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이 사회에 많은 안정의 노력이 되었었을 테고 또 지금은 이제 진보가 그걸 되풀이하고 있는데 진보가 하고 있는 걸 가만히 보면 내가 아하, 지난번 10년 동안에 나도 그냥 문제없이 동조해서 저게 저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의가 아니고 기득권층이 자기 기득권 어떤 상실에 대한 것을 표출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지금 하는 걸 보니까.

지금 보니까 최근 국회 중심으로 일어난 것에 가장 대표적인 게 되겠지만은 민주고 무슨 뭐 언론이고 뭐 사수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주도 언론도 아니고 지난 10년의 그 방향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이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하는 거 아닌가, 그걸 보면서 아, 그러면 지난 10년 동안 소위 보수 쪽이었던 기회도 저와 같은 기득권 상실에 대한 어떤 아쉬움 혹은 불만, 불평, 이런 것들이 같이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무턱대고 동조한 거 아닌가, 구별하지 않고 그냥 전부 다 합쳐 가지고 동조한 것이 아닌가, 그런 정도의 가벼운 어떤 인심 같은 것을 표현했습니다.

-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1/6) 중에서 발췌

▲ 광우병 소고기 수입 중단 요구 촛불 시위

형식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두루뭉수리로 비난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긴 하지만, 그 인식의 귀결점은 물어보나 마나다. 여전히 그는 ‘홍위병’론에 대한 신념을 거두지 않고 있으며, 한때 보수에 대한 비판적 언사도 결국은 ‘가벼운 인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그의 잠재적 적의

 

이 씨는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을 ‘교만의 병’으로 진단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은 기득권 유지의 목적인데 거기에도 온갖 자기주장을 덧붙여 자기 기득권 유지가 곧 민주화되는 것처럼 우기다 보니까 싸움이 더 맹렬해지고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에 대해서 일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라는 변화’가 그동안 보수를 대변해 온 자신에게 ‘보상’이 되었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 씨는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 영향을 받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며, 별 변화를 느끼지 못하며, ‘1년 동안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아주 뜻밖이다. 스스로 보수의 대변자를 자처한 이 씨였으니 보수 세력들이 외치는 지난 ‘좌파 정부 10년의 적폐’를 일시에 몰아내고 있는 현 정국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자발성과 순수성을 충분히 위장할 수 있는 분산되고 무형의 비조직적 배후 세력’(지난해 6월 발언, 이하 같음)에 의한 촛불집회를 ‘사회적 반작용(의병 운동)’은 아니었지만, 공권력을 신속하게 투입하여 그 광기를 일거에 잠재우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그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와 호주산을 제치고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던가.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공영방송의 경우 정부에 인사권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그의 주장대로 지금 KBS는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전임사장을 몰아내고 새 사장을 선임한 이래, 이른바 ‘땡전·땡박’ 뉴스로 급전직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편향된 불공정 방송’으로 지탄받던 ‘시사 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는 폐지되지 않았는가.

 

▲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수인(手印)]

근현대사 교과서는 좌경·친북의 때를 빼고, 도덕 교과서에서도 ‘평화교육’을 제거함으로써, 뉴라이트의 새로운 역사관으로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좌경의식과 촛불에나 참여하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좌빨’ 전교조를 여지없이 박살 내는 현 정국은 가히 보수 우익의 세상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그는 그러나 ‘대운하 공약’에 대한 아쉬움은 솔직히 고백한 듯하다. 그는 ‘대운하 공약은 폐기되지 않았는데, 사회의 논의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라고 하면서 ‘대통령 선거의 큰 공약 중 하나였던 대운하를 폐기했는지, 그리고 폐기했다면 그 공약을 걸고 선거에 나온 대통령한테 찍은 많은 투표자들이 있는데 그 투표자들한테 어떤 식으로 양해를 받았는지 그걸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얘긴즉슨,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걸 대운하를 하겠다는 것이 국론분열이 된다고 단정하는 논의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의사결정에서도 이상하게 언론이 그냥 만들어가는 모양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글쎄, 과문한 탓인데,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의 공약은 모두 ‘선’인지, 그리고 그걸 포기하면 지지자에게 포기해도 되는지를 물어봐야 되는 것인지는 처음 알았다. 그런 논리대로 말할 것 같으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70%의 유권자의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거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진보 담론에 대해 보이는 적의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국민 작가가 따로 있을 만큼의 정치·문화적 전통이 없는 나라이니, 굳이 그걸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 이 나라에서 글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잘 팔리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이문열이 여전히 과거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민주주의와 자유, 진보 담론에 대해 적의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아쉽기 짝이 없다.

 

그는 지난해 여름, “‘여론 조작’의 단적인 예로 쇠고기를 말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공영방송 사수라면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 같은 이상한 말을 한다.”라고 일갈했는데, 그 ‘이상한 말’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홍위병’들은 ‘이상한 말’을 지껄이며 국회와 영하의 거리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다.

 

나는 이문열이란 작가가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는 선량과 언론인들의 주장과 외침을 해득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그들을 ‘홍위병’이라 싸잡아 부르는 것과 같은 지극히 명쾌한 논리만큼 그의 반대편의 논리도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다. 단지 그를 포함한 보수 세력들은 그 진실 앞에서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이 씨는 현재 <조선일보>에 ‘소설 안중근 불멸’을 연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안중근 의사를 ‘거의 우리 근대사의 모든 문제점을 다 담아서 어떤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종합적인 코드 같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인터뷰만으로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작가 이문열이 그리고 있는 안중근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바라보는 뉴라이트들의 역사 인식과 얼마만큼 같고 얼마만큼 다른지다. ‘한일합방은 합법’이라 주장한 이 씨였으니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합법을 지연시킨 걸림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09. 1.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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