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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시인, ‘벼’와 ‘우리들의 양식’ 남기고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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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성부(1942 ~ 2012. 2. 28.) 선생

▲ <한겨레>(2012.2.29)에 실린 이성부 시인의 부음 기사 ⓒ <한겨레> PDF

‘벼’의 시인 이성부(1942~2012) 선생이 돌아가셨다. 시인의 죽음 따위는 세상이 별로 기리지 않는가, 지난달 29일에 <한겨레>에 난 선생의 부음 기사 외에 선생을 다룬 기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모모한 시인들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모모한 시인처럼 감옥을 다녀온 ‘투사’도 아니어서일까.

 

▲ 민음사에서 낸 이성부 시선집

나는 고교 시절 내내 이성부 시인의 이름을 바라보면서도 그의 시를 읽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시인 총서’가 몇 권 있었고, 그 책날개에 그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이 소개되어 있었다. 정작 내가 이성부의 시를 만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다.

 

고등학교 <문학>에서 그의 시 ‘벼’는 6, 70년대의 참여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루어진다. ‘어우러져 기대고’ 사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의 ‘노여움’, 그 ‘사랑’과 ‘그리움’, 그 ‘힘’을 노래하는 이 시는 교과서적으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공동체적 유대, 역사를 위한 자기희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공동체 의식’이나 ‘민중의 단결된 힘’, 벼의 ‘인고’와 ‘생명력’ 따위의 해석에 굳이 기대지 않더라도 이 시에서 다루어지는 ‘벼’는 민중들의 삶의 처음이자 끝이다. ‘벼’로 상징되는 민중 의식이나 생명 의지는 ‘민중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와 평등의 세계’에 대한 지향을 ‘피 묻은 그리움’이란 격정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비평가 최동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면, 이성부의 ‘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 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 이 넓디넓은 사랑’은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을 가르치는 벼의 넉넉함, 바로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인은 70년대 유신독재 시기에 ‘시국에 관한 문학인 101인 선언’과 진보적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의 전신) 창립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김지하나 고은 시인처럼 실천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한겨레> 기사에서 최재봉 기자가 밝히듯 그는 광주학살에 대한 충격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고 그런 마음의 빚을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피 흘리지도 않았다’(‘유배시집 5’ 중에서)고 고백하기도 했다. 독재와 맞서 온몸으로 저항할 수 있었던 시인보다 오히려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어쩌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그런 성향은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우리들의 양식’에서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들은 모두 저렇게 어디론가 떨어져 간다.’이다. 시인은 일흔 해의 삶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평균수명의 연장을 이야기하지만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옛말이 반드시 그른 것은 아니다.

 

한 시인의 부음 앞에 박제화된 해석으로 그의 시를 가르쳐 온 문학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 그의 시를 물끄러미 다시 읽고 그것을 이웃에 넌지시 알리는 일일 뿐이다. 시인이 저세상에서 민중의 고통과 슬픔을 잊고 편히 쉬시길 빈다.

 

 

2012. 3.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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