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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뱅이굿’의 이은관 명인, 타계

by 낮달2018 202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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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2014년 3월 12일

▲ 2013년, 96세의 나이로 시애틀을 찾아 '배뱅이굿'을 노래하고 있는 이은관 옹 .

새벽에 자리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이은관(李殷官) 옹의 부음을 확인했다. 아, 그이……, 향년 97세라고 했다. 이태만 더 살았더라면 백수(白壽)인데……. 나는 아내를 툭 건드렸다.

 

“여보, 이은관 옹이 세상을 떠났다는구먼. 배뱅이굿의 이은관.”
“배뱅이굿? 아, 왔구나, 왔어. 그 영감님?”
“그래. 아흔일곱 살이래. 장수했네.”
“아, 사는 김에 백수하시지……. 아깝네.”

▲ 이은관 (1917 ~ 2014)

내가 이은관의 ‘배뱅이굿’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부모님과 한방에서 잤는데 새벽에 잠에서 깬 어른들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그이의 ‘배뱅이굿’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구경하지 못하고 ‘앰프’라고 하여 삐삐선으로 보내주던 유선방송 시절의 이야기다.

 

삐삐선 앰프에 실려 오던 ‘배뱅이굿’

 

모르긴 해도 그게 어른들의 정서에 감기는 음악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나는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재바르게 읊어대던 그의 가느다란 고음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기억한다. 아침 방송마다 이은관의 배뱅이굿이 흘러나왔던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부모님 슬하를 떠났다. 이은관의 배뱅이굿 따위와는 다시 상종할 기회 없이 나는 대중가요와 미국에서 들어온 팝송 따위를 흥얼거리며 10대를 보내게 되었다. 배뱅이굿을 즐겨 듣던 아버지는 1985년에, 어머니는 지난 2002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10년도 넘어 이은관 옹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부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유튜브에서 그의 ‘배뱅이굿’을 들으면서 나는 몇 가지 자료를 돌아보았다. 배뱅이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지만, 상사병으로 죽은 여자라는 건 정말 몰랐다.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다.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추어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 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唱劇)이니 남도의 판소리를 닮았다. 서도(西道) 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불린 민요나 잡가를 일컫는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도 소리 예능에는 ‘배뱅이굿’과 함께 평안도 민요인 ‘수심가’, 시창(詩唱)인 ‘관산융마’가 있다.

 

배뱅이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정승 집안의 무남독녀를 태어난 배뱅이는 탁발 나온 상좌 중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사병을 앓다 열여덟 살에 죽는다. 부모가 팔도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딸의 넋을 불러 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때 지나가던 젊은 건달 하나가 교묘한 방법을 써서 거짓으로 넋을 불러와 배뱅이의 부모를 우롱하고 많은 재물을 얻게 된다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지금 전승되는 배뱅이굿은 평안도 김관준 계통을 이은 ‘이은관 배뱅이굿’과 황해도 문창규 계통을 이은 ‘양소운 배뱅이굿’이 있다. 이 가운데 ‘이은관 배뱅이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 소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647년 유인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황해도 계통의 ‘배뱅이굿’ 채록본이 발견되어 그 유래가 복잡해졌다. 지금 불리고 있는 것은 갑오개혁 훨씬 이후의 것으로 본다.

 

배뱅이굿, 굿 아닌 서도 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

 

이은관 명인은 1917년 강원도 이천(지금은 경기도)에서 출생하였다. 황해도 황주의 이인수 선생에게서 서도민요와 배뱅이굿을 배웠으며, 최경식 선생에게서 경기민요와 시조를 배웠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배뱅이굿’ 영화에 배뱅이 역의 조미령과 함께 박수무당 역으로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발매된 사운드트랙(OST)은 6만 장의 팔아치웠다고 한다.

 

1984년에 이은관은 ‘서도 소리 중 배뱅이굿’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0년에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지난해까지도 무대에서 소리를 할 정도 노익장을 자랑했다. 지난해 <국악방송>에 나와 ‘배뱅이굿’을 노래하고 있는 이 옹의 모습에서 부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의 건강이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이은관 명인은 꽤 여러 종류의 '배뱅이굿' 음반을 남겼다.

이은관 옹은 꽤 여러 종류의 ‘배뱅이굿’의 음반을 남겼다. 1978년의 엘피(LP) 음반에 이어 1990년(오아시스레코드), 1993년(서일음향), 1994년(지구레코드), 2001년(하나음반), 2005년(지구레코드), 2007년(하나음반), 2010년(수도음반) 등이 그것이다.

 

‘다음’에서 내려받은 이은관의 ‘배뱅이굿’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그려본다. 아버지께선 살아계시면 이 옹보다 한 살 위인 아흔여덟, 어머니는 백한 살이시다. 여러 곡절을 겪다가 어렵게 살던 때에 돌아가셔서 정작 우리는 두 분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다.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았고 미욱한 자식들의 회한만이 긴 것이다.

 

어제 막내 처제가 시모상을 입었다. 오래 투병하다가 그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제 친가는 말할 것도 없고 처가 쪽 동기간에 생존해 계신 어른은 몇 없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은 잊히고 가족사는 새롭게 씌어진다. 이은관 옹의 영면을 빌면서 나는 고향 산천에 모신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한식 무렵에 고향의 산소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014. 3.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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