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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원로 배우 김지영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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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지영(1937~2017.2.19.)

 

배우 김지영(1937~2017) 씨가 19일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연기자로 살아 한국영상자료원 기록만으로도 출연 영화가 200편이지만 늘 ‘조연’으로만 기억되는 배우, 팔도 사투리 연기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선보인 배우, 김수용 감독과 임권택 감독의 말투를 가장 잘 흉내 냈다는 배우, 만년에야 그 진가를 조금씩 알리기 시작한 배우 김지영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200편의 영화, 그러나 조연으로만 기억되는 배우

 

유족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지난 2년간 폐암을 앓으면서 연기를 계속했지만 결국 급성 폐렴으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1955년, 김승호의 극단 대중극회의 무대에서 시작한 연기자의 삶이 무려 62년이다.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천에 자란 고인은 연극무대를 거쳐 1960년 <상속자>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김지영은 결혼과 함께 연기를 떠났으나 병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다시 연기에 뛰어들어야 했다. 옷 한 벌로 버티면서 가계를 꾸리다 보니 조연이 들어와도 단역을 맡아야 할 만큼 고단한 삶이었다.

 

1980년대에 영화를 하다가 드라마로 옮겼는데 방송의 텃세가 심했다. <수사반장>부터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대사가 정확하다고 피디(PD)들이 많이 써줬는데 분장실을 못 쓰게 해서 매번 세트 한구석에서 화장할 정도였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방송이 끝나면 모니터를 해가면서 ‘칼을 갈고 배웠다’. 공채 탤런트와 다른 연기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 김지영이 선택한 것이 사투리였다. 인천에서 자란 그가 8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치열한 노력과 연습의 결과였다.

 

김지영은 1990년대 이후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숱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를 펼친다. 그러나 늘 단역과 조연에 그쳤던 그는 노년에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비로소 주어진 배역과 한 몸이 되는 살아 있는 연기의 기품을 보여주게 된 것이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스틸컷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2005),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마파도2>(2007), <해운대>·<국가대표>(200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 등의 대표작이 있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 독보적 사투리 연기

 

그는 이상인 감독의 독립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에도 출연했다. 학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출연했는데 그것 때문에 경찰서 가서 경위서를 쓰고 나와야 했다. 운동권 아들과 노점상 어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의 감동은 1990년대 학생 운동권에 회자하였었다.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와 연기를 김지영은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을 꼽았다. 신성일과 김지미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김지영은 둘이 낳은 아들(한지일)의 아내로 출연했다. ‘좀 무지하고 바보 같은 여자지만 그나마 이재(理財)에 눈을 떠서 남편이 엄청난 재산가의 자식이길 갈망하는 인물’이었다.

▲ <길소뜸>(1985)에서의 김지영. 신성일과 김지미가 낳은 아들의 아내 역을 맡아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했다.
▲ <파이란>(2001)에서 바닷가 세탁소 여주인으로 출연한 김지영.

임권택 감독이 ‘이 영화에서 김지영 씨 하나 건졌다’라고 했을 정도로 이 쉽지 않은 캐릭터를 김지영은 제대로 소화해냈다. <길소뜸>으로 대종상 조연상 받게 됐다는 소식까지 귀띔으로 들었는데 나중에 어찌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고 한다.

 

그에게는 변변한 수상 경력조차 없다. 그것은 그의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최소한의 비중을 지닌 배역을 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성격 배우’라는 이름으로만 평가받은 노회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명품 조연’으로, ‘신 스틸러(scene stealer)’란 이름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그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역량에 걸맞은 배역으로 그의 필모그라피를 추가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영화계의 손실이다.

 

나는 영화 <파이란>(白蘭, Failan, 2001)에서 만난 김지영을 매우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파이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녀가 의탁해 온 바닷가 세탁소를 찾아온 건달 최민식을 타박하던 여주인 역의 김지영은 이 영화에서 위태롭게 지탱해 오던 슬픔의 둑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관련 글 : 배우의 힘, 최민식의 <파이란>]

 

“어떻게 인자 오나, 야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인자사 와. 사람이 어떻게 기럴 수 있는 기야.”

 

그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배웅’할까

 

죽을병에 걸린 남편을 뼈가 부서지라 일해서 살려 놓았더니 그는 다시 술을 마시고 2년 만에 갔다. 그리고 그는 1남 3녀를 기르기 위해 자신을 삶을 소진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폐암 투병 사실을 숨기고 연기를 하느라 힘들어했다고 한다.

 

“같은 여자로서는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삶이 안타까웠으나,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너무나 존경했다. 우리 엄마지만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사신 분이었다.”

무릇 모든 어머니는 자식들의 이런 헌사를 받아 마땅하다. 배우 김지영은 더 말할 게 없다. 평생을 조연으로 타인의 삶을 그려냈지만 그걸 기쁨으로 여기고 의연하게 살았던 이 배우를 우리 영화계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배웅하게 될까.

 

위대한 배우 김지영 선생의 영면을 빈다.

 

 

2017. 2. 19. 낮달

 

* 참고 : <시네21>의 인터뷰 기사 ‘50년 연기 경력 <마파도2>의 김지영

 

 

배우의 힘, 최민식의 <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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