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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영월에 ‘흐르는 시간, 멈춘 시각’ 10년

by 낮달2018 2019.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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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10회 동강 국제사진제’를 다녀와서

▲ 기획전 <미국 사진 반세기>가 열리고 있는 동강사진박물관 본관.  올해는 별관도 문을 열었다.

‘2011년 제10회 동강 국제사진제’가 개막한 것은 지난 7월 22일이다. 얼띠게도 나는 한 달 전에야 그걸 알았다. 그리고 벼르던 끝에 가족들과 함께 며칠 전에 영월을 다녀왔다. 내가 이 국제사진제에 걸음 하기 시작한 것은 세 해 전인 2009년부터다.

 

사진 전시회를 즐겨 다니곤 하는 딸애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가족여행 길이었다. 그 ‘영월로의 짧은 여행’을 통해서 우리 가족은 동강 국제사진제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인 지난 2010년에는 나는 <오마이뉴스>의 기사로 이 전시회를 소개하기도 했다.

 

뒤늦게 안 ‘동강 국제사진제’

 

지난 8월에 <한겨레> 기사를 통해 동강 국제사진제 소식을 접한 후, 날짜를 궁글리기만 하다가 며칠 전(6일)에야 겨우 말미를 냈다. 이웃인 정선과 평창까지 다녀올 요량으로 우리는 새벽밥을 지어먹고 아침 8시께에 영월을 향해 출발했다.

 

강원도와의 도계에 가까운 지역이라고 하지만, 안동에서 영월까지는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적지 않은 거리와 시간을 넘을 만한 무엇이 우리를 영월로 이끌었을까. 사진에 대한 열망이나 사진제에 대한 갈증? 물론 아니다. 영월에 무슨 잊지 못할 가족의 추억이나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사에서 밝혔듯 사진기를 메고 다니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한 보조 자료로 사진을 찍을 뿐, 사진 촬영에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연히 사진전을 굳이 찾아다니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딸애나 아들 녀석은 좀 다르긴 하다.

 

아이들은 ‘로버트 카파 전’이나 ‘매그넘 전’ 등에 일부러 시간을 내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들은 전시회를 즐기면서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넓히고자 하는 사진 애호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그런 태도를 긍정하는 편이다. 그들의 문화적 욕구에 우리 내외가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서적 교감은 일종의 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 2011 제10회 동강 국제사진제의 팸플릿과 포스터
▲ 국제사진제의 역대 포스터. 2009년부터 ‘동강 사진축제’는 ‘동강 국제사진제’로 바뀌었다.

그것이 굳이 한가위를 앞두고 강원도 산골 마을을 찾은 이유다. 우리 가족은 한갓진 답사객에 그칠지 모르지만 나는 이 한적한 시골 소읍을 찾은 우리의 발길이 동강 국제사진제를 운영하는 영월군에 대한 소박한 상찬과 응원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하고 바란다.

 

시골에서 꾸려온 ‘국제사진제’ 10년

 

강원도 산골 마을 영월이 베풀기 시작한 ‘동강 사진제’는 올해로 열 살이 되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사진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제다. 인구 고작 4만의 영월이 십 년째 국제사진축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경이’를 넘어 ‘경의’가 바쳐져야 할 일이다.

 

애초에 사진제는 해외 사진가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002년 ‘동강 사진축제’로 출발했다. 동강 사진축제가 ‘동강 국제사진제’로 전환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한편 ‘동강 사진상’은 2006년까지는 국내와 해외로 나뉘어 시상했지만 2007년부터 해외 부문의 시상을 잠정 중단했다. 전시에 주력하면서 외연을 넓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거라고 했다.

 

10살이 된 올 사진제는 전시도 풍성하다. 국제 사진 기획전 ‘미국 사진 반세기’, 2011 동강 사진상 수상자전 ‘오형근’, 동강 국제사진제 10회 기념전 ‘10년의 기억’, POYi 국제 보도 사진전, 거리 설치전 ‘영월 바라기’, 보도 사진가전 ‘얼굴, 인생을 읽다’, 테마 기획전 ‘적과의 동침’ 등뿐 아니라 강원도 사진가, 영월군 사진가 초대전, 전국 초등학생 사진 일기 공모전 등이 베풀어지고 있는 것이다.

▲  ‘POYi  국제 보도 사진전 ’ 이 열리고 있는 영월군 학생체육관
▲ ‘POYi  국제 보도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영월군 학생체육관 내부.

해마다 들르는 우리의 관람순서는 비슷하다. 영월 읍내에 들어오자마자 만나는 영월군 학생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POYi 국제 보도 사진전’부터 우리의 순례는 시작되었다. 예년과 달라진 것은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무료’였다고 하니까 친절한 근무자는 입장권은 다른 전시까지 볼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입장권’이라고 하기에는 3천 원은 소액이다. 그것도 사진제 전체 전시를 볼 수 있는, 놀이공원 등에서 쓰는 이른바 ‘자유 관람권’에 해당하는 입장권이다. 그것은 이 시골 마을이 십 년째 어렵게 벌이는 사진 축제에 대한 예의에는 걸맞지 않은 가격이다. ‘착한 가격’이 주는 기쁨만큼이나 민망함도 적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단돈 ‘3천 원’으로 누리는 ‘호사’

 

그뿐인가. 가물에 콩 나듯 찾아오는 관람객을 마음으로 맞이하고 그들의 관람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그 방문을 기꺼워하는 전시장 근무자들의 조심스러운 응대를 받는 것도 대도시의 전시장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호사다. 그것도 3천 원으로 살 수 있는.

 

POYi(Pictures of the Year International)는 미주리 대학교의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이 주최하는, 세계 포토 저널리스트들에게 권위 있는 콘테스트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사진 축제다. 전시회에서는 스포츠, 지역 이슈, 분쟁 및 전쟁, 일상, 글로벌 비전, 아이티 지진, 자연 현상, 뉴스, 걸프만 기름 유출, 사람들, 올해의 포토 저널리스트 등 모두 1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158점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회가 외곽의 학생체육관에서 베풀어지는 것은 전체 전시 가운데 출품작들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인 듯했다. 사진박물관처럼 네 개의 벽면을 사용하는 전시장에 비기면 마룻바닥에 빨간색과 파란색 칠의 농구 코트가 그려져 있는 체육관을 칸막이로 구획한 이 전시장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 일야 야피모비치 작 ‘런 다운’.  승용차가 팔레스타인 소년을 밀고 있다.
▲  참혹한 아이티 지진의 현장 .  젠 데이고 작
▲ 라티프 작 ‘파키스탄 홍수’.  주민들이 헬기에 매달리고 있다.

보도사진이 갖는 특장이랄 수 있는 사실성은 관객을 압도해 버린다. 사진제 기획전인 ‘미국 사진 반세기’가 흑백의 손바닥만 한 사진인데 비기면 대형의 사진 속에 재현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역사와 무관한 일상적 삶에 묻힌 사람들에게 현실을 새롭게 성찰할 기회를 던져주는 것이다.

 

특히 2010년은 세계 각지에서 내전, 정치적 봉기, 국경 분쟁―아프가니스탄 전쟁, 태국의 반정부 시위, 카슈미르의 종교 분쟁 등―이 이어진 한 해였다. 이들 분쟁과 전쟁의 전면과 이면에 렌즈를 들이댄 사진기자들의 눈에 비친 폭력과 전쟁은 그 정교한 사실성으로 가혹한 현실을 환기해 준다.

 

강진이 수도를 강타하면서 초토화된 섬나라 아이티의 비극, 30만 명이 넘게 죽고, 100만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한 이 전대미문의 비극을 향한 카메라의 눈은 비정해 보인다. 그러나 여러 장애를 무릅쓰고 재난의 현재를 그려낸 사진기자들의 포토저널리즘이 미흡하나마 전 세계적 관심과 지원을 끌어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체육관에서 불과 2, 3분 거리에 있는 동강사진박물관 본관 1,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미국 사진 반세기 전’이다. 이 기획전은 사진의 역사 가운데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사진의 기본 틀을 일궈낸 선구적인 사진작가들의 이야기’(사진제 팸플릿)에 초점을 맞춘 전시다.

▲ ‘미국 사진 반세기 전’에 전시된 루이스 하인의 작품
▲ ‘미국 사진 반세기’전에 전시된 아서 로스스타인의 작품 ‘이민자 가족’

보도 사진전이 그 사실적 충격과 대형 사진의 색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동적 전시라면, 이 기획전은 4면의 벽에 조그맣게 걸린 소형의 흑백사진들이 풍기는 은은한 향기의 정적인 전시다. 그래서 고가의 렌즈를 끼운 고급사진기를 멘 몇 명의 관객을 빼면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에게 이 전시회는 그리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박물관 입구 오른편에 올해 완공한 박물관 별관이 있다. 올 동강 사진상 수상자인 ‘오형근 전’과 동강 국제사진제 10회 기념전 ‘10년의 기억’이 열리고 있는 공간이다. 국제사진제인 만큼 부족한 전시 공간을 보충하기 위한 투잔데, 생각만큼 그리 너르지 않다. 영월군에서는 이 별관을 전시 공간과 함께 관객들의 체험공간, 카페테리아 등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하니 내년쯤이면 이 별관의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동강 사진상 수상 작가 오형근의 연작 ‘화장소녀’(왼쪽)과  ‘소녀연기’
▲ 오형근 연작  ‘아줌마’.

오형근 작가는 한국사회의 특정 인물군의 유형을 다루는 초상 작업을 일관되게 진행해 온 이다. ‘그는 모델을 이상화하거나, 고상하게 꾸미려 하는 초상의 기법과 시도를 탈피해,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욕망과 이에 따르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기호들의 형상으로 인간의 얼굴과 외양을 파악’(팸플릿, 이하 같음)하고 있다고 한다.

 

‘오형근 전’, 사회와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

 

결국 ‘오형근 전’에 전시된 작품 ‘화장 소녀’, ‘소녀연기’, ‘아줌마’ 등의 사진은 ‘정체된 한국의 초상사진을 사회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새롭게 제시’하는 셈이다. 이러한 해설의 도움 없이 바라보는 그의 사진은 ‘재미없는’ 사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렌즈에 포획된 여성들은 아름답거나, 매력적이거나 최소한 개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오래된 사람들의 통념이고 관습이다. 날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만나게 되는 숱한 여성들의 얼굴에 잘 길든 사람들의 시야에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소녀들과 여성들의 얼굴을 만나는 것은 고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렌즈 앞에 숨김없이 그 진면목을 드러낸 여성들의 얼굴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욕망의 주체이면서 대상’인 소녀들의 화장법, 소녀들이 연기하는 소녀의 모습, ‘아저씨들의 나라’에서 ‘아줌마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불안감과 정서적인 흔들림’을 알 듯 모를 듯 느낄 수 있을 터이다.

 

해마다 느끼는 것은 ‘동강 사진상’ 수상 작가들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공모전 수상작 등이 보여주는 ‘예쁘거나 멋있는 사진’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전문작가의 일관된 주제를 따른 모색의 결과라는 점에서 특정 주제를 다룬 한두 작품과는 다를 테지만 말이다. 일견 재미없고 밋밋한 사진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이런 연작들이 가진 깊이를 이해하는 데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것도 이 전시에서 얻은 가외 소득이다.

▲  얼굴, 인생을 읽다 전’에 걸린 손홍주 작  ‘차승원’
▲ ‘얼굴, 인생을 읽다 전’에 걸린 이란 사람.  박종우의 작품이다.
▲ 김원태 ‘상동의 어제와 오늘’(영월 사진가 초대전). 폐광 후 2만5천이 1600으로 줄었다.
▲ 야외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보도사진가전,  '얼굴, 인생을 읽다'

박물관 주변의 야외 전시장에서 베풀어지는 보도 사진가전 ‘얼굴, 인생을 읽다’는 낯익거나 혹은 낯선 유명, 무명 인물의 얼굴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마음의 창’(최재영), ‘배우, 그들이 말하는…’(손홍주), ‘Faith in Faces - 숨겨진, 혹은 드러낸 얼굴들’(박종우)의 작업에 드러난 정치인과 예술가, 배우들, 불교와 이슬람권의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삶의 긴장과 불안을 미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인근 정선 아우라지로 가야 했으므로 우리는 나머지 전시회를 건성으로 지나가거나 생략해 버렸다. 그 점에서 우리는 영월과 동강 국제사진제를 찾은 불성실한 방문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모두 이 강원도 산골 마을이 십 년째 운영해 온 사진제가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기를 바랐다.

 

영월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진 축제를 서울의 유수한 전시 공간에서 열리는 ‘로버트 카파’나 ‘매그넘’ 전에 비길 수는 없겠다. 그러나 거기 만원이 훌쩍 넘는 입장료를 물고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동일한 무게와 부피로 이 시골 마을에서 재현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덧붙이는 글 | ‘2011년 제10회 동강 국제사진제’는 9월 25일까지 열린다. 한가위를 쇠고 나면 한 열흘쯤의 말미가 남아 있다. 글쎄, 세련되고 이름난 사진전은 아닐지 모르지만, 경상도나 강원도, 혹은 충청도 어름에 사는 독자라면 적막한 강원도 산골, 영월에서 ‘흐르는 시간, 멈춘 시각’을 넌지시 들여다보시길 추천해 마지않는다.

 

2011. 9. 10. 낮달

 

 

영월에 '흐르는 시간, 멈춘 시각' 10년

'2011년 제10회 동강국제사진제'를 다녀와서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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