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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세계유산-한국의 서원] ③ 서원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 그리고 ‘만대루’

by 낮달2018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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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屛山書院)

▲ 병산서원 배치도
▲ 병산서원 전경. 정면 외삼문이 복례문이다. <논어>의 '극기복례'에서 따온 이름이다. 초여름 사진은 모두 2020년 6월에 찍은 것이다.

이른바 ‘놀 토(土)’였다. 병산으로 바람 쐬러 가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건넸더니 아내는 순순히 그러자고 한다. 사진을 찍어올 요량이어서 같이 가긴 하지만 순전히 ‘따로 놀 수밖에’ 없는 형편이란 게 맘에 걸린다. 분단장인지 꽃단장을 끝내고 집을 나선 건 얼추 오전 10시가 가까워서다.

 

시가지를 빠져나오는데 비로소 모처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언뜻 든다. 늘 옆에 그림처럼 마주 보며 살다 보니 그 부재(不在)에 대한 느낌이 새삼스럽다. 그렇다. 그게 부부 사이인 것이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다. 하회마을로 들어가다 왼편 길로 꺾어 좁은 산길을 10여 분 달려야 한다. 갈림길 들머리 일부만이 포장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노선버스나 관광버스 등과 만날 때마다 살얼음 밟듯 비켜 지나가야 할 만큼 좁은 길이다. 

▲ 병산서원의 강학당인 입교당. 중앙은 강학당, 동쪽은 명성재, 서쪽은 경의재로 모두 세 칸이다.
▲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의 대청마루. 왼쪽 경의재 현판이 보인다. 뒷문 쪽의 축대 위에 존덕사가 있다.
▲입교당 대청에서 내려다본 만대루. 낙동강이 보인다.
▲ 입교당 뜰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낙동강. 마당은 공사 중이라 굴착기가 보인다.

아직도 포장이 되지 않았느냐는 아내에게 나는 “그 덕에 병산서원이 숨을 쉬고 있다”고 대꾸해 준다.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병산서원 보존의 큰 비결’이라 한 게 바로 이 비포장 산길이다. 접근의 어려움이 보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렷다.

 

그러나 ‘안동 골짝’의 한갓진 서원을 한반도 남쪽의 ‘소문난 곳 찾기를 병처럼 즐기는 백성’들에게 두루 알린 것은 유홍준의 공이고, 그 공은 그예 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답사기 이후, 이 외진 동네를 찾는 차의 번호판은 인천에서 전남까지니 병산은 이미 전국에 이름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해던가,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여길 찾은 구미공단의 회사원들이 서원 앞 강변 백사장에서 요란하게 공놀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저렇게 운동을 하려면 구미 시내의 학교 운동장으로 가지. 왜 이 외진 서원까지 왔노”하고 나는 혀를 찼지만 사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산에 올라서 꼭 전을 펴 놓고 고스톱을 즐겨 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좋은 산에까지 와서 고스톱이나 치는 사람들은 뭐고?”라고 했더니 친구 하나가 받았다. “멋진 산에 와서 즐거이 고스톱을 치는 사람의 기분을 신선에 비길까?” 물론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그들의 호연지기(?)를 나의 방식으로 재단하는 것도 거시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 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병산. 만대루에서 바라보면 마치 7폭 병풍처럼 보인다고 한다.

휘어진 마지막 산길을 돌자, 성큼 앞을 막아선 병산(병풍산이라는 뜻이다.) 아래 낙동강의 수면이 햇빛에 반짝였고 맨 먼저 만대루의 큼직하고 높다란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면 강변의 병산은 마치 7폭 병풍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요즘 서애의 후손은 자신들을 유[劉, 兪] 씨와 구별하기 위해 ‘류’ 씨로 쓴다)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이 서원은 처음엔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이었는데, 서애가 이곳으로 옮겼다.

▲ 사당으로 드는 내삼문 아래에 선 배롱나무 고목. 유홍준은 이 나무의 붉은 꽃을 가리켜 '화려하다 못해 장엄하다'고 표현했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서애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의 사액을 받았다. 병산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살아남았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며, 한국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가운데 하나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만대루(晩對樓)다. 복례문을 지나 뜰에 들어서기 무섭게 눈앞을 가로막는 게 지형을 이용해 지은 2층 누각의 1층 격인 만대루 기둥이다. ‘만대’는 ‘느지막이 마주 하다’는 뜻으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에 나오는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 어숨푸레 푸른 절벽은 느지막이 마주함이 좋다”에서 따온 것이니 저녁나절에 보는 병산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

▲ 만대루.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만만찮은 누각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지붕은 동재(東齋)다.
▲만대루 마룻바닥은 정갈했다. 그만큼 여길 찾는 발걸음이 잦다는 뜻이겠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모든 나무 부재를 맞춰 짰다고 한다.
▲ 복례문에서 올려다본 만대루. 만대루는 정면이 7칸이나 되는 큰 누각이다.
▲ 만대루의 아래층은 통로다. 나무기둥은 본래의 결을 살려 휜 것도 많다.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講學)의 복합공간이다. 만대루는 서원 누각의 기능을 잘 유지하면서, “경관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조경 기법을 잘 살렸다. 인공적 조작과 장식을 억제하고 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성리학적 건축관을 잘 보여주는, 우리나라 서원 누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저물녘 만대루 난간에 기대앉아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만 해도 병산을 찾는 이는 많지 않았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월장을 했던 기억도 새롭다. [관련 글 : 아아, 만대루(晩對樓), 만대루여]

 

만대루에 호젓이 앉아 병산과 저무는 강과 백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때로 우리의 일상의 한 장면을 이르는 구체적 낱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고직사 앞에 있는 일명 '머슴 뒷간'. 지금은 달팽이뒷간으로 불린다. 외삼문 안쪽의 양반 뒷간은 기와지붕이지만, 여기엔 지붕이 없다.

안동시에서 나름대로 안동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내건 구호가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이다. 그런 까닭인지 외국의 지체 높은 양반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길을 트더니 지난해에는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가 다녀갔다.

 

영 여왕의 봉정사 방문이 뜬금없는 입장료 징수를 가져왔다면, 부시가 병산서원에 들러 기념으로 심은 외삼문 앞 중키의 향나무 한 그루는 뜰에 가득한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에서 어쩐지 생뚱맞아 보여서 바야흐로 산과 강, 마을이 연출하는 소박한 질서를 공연히 흐트러뜨리고 있다.

▲ 고직사 지붕 위의 마지막 한 잎. 그러고 보니 깊은 늦가을, 시방은 겨울의 어귀다.
▲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병산서원. 복례문과 만대루의 ㅂ지붕이 보인다. 통로에는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모니터에서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감정의 복기(復碁)’와도 같은 것이다. 잎사귀 하나 달랑 붙인 나목과 열매 하나를 외롭게 달고 있는 모과나무 저편의 새파란 가을 하늘이 쨍쨍하게 시려 보이는 것은 시방 겨울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비를 머금고 있다.

 

 

2006. 12. 8. 쓰고, 2023. 3. 12. 고치고 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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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폭 병풍산의 만추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과 만대루(晩對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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