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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박과 박나물, 혹은 유전하는 미각

by 낮달2018 2019.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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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과 박나물, 그리고 미각의 유전

▲ 아내가 친정에서 얻어온 박. '깎아놓은 밤송이'처럼 예쁘게도 생겼다.

아내가 장모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리고 오면서 박 몇 덩이를 가져왔다. 김치냉장고 위에 얹어놓은 박 두 덩이가 소담스럽다. 흔히들 맵시가 얌전한 사람을 일러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고 하는데, 싱싱한 꼭지를 세우고 처연하게 서 있는 박의 모습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것이다.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더니…….”
“그렇죠. 너무 사랑스러워서 칼을 대기가 망설여진다니까…….”

 

‘초가지붕 위의 박’은 이제 옛말

 

우리 어릴 적에는 박은 초가집 지붕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던 열매였다. 박속은 나물로 먹고 속을 파내고 삶은 박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썼다. 따로 재배할 땅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심어서 지붕 위로 줄기를 올려두면 저절로 자랐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바가지로 쓸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 따로 없었다.  [관련 글 : 박과 바가지, 그리고 뒤웅박 이야기]

판소리 사설 “박타령”에는 가을 들어 박이 여물자, 흥부 내외가 자식들을 데리고 박을 타는 장면이 나온다. 진양조로 읊조리는 그 사설이 어쩐지 구슬프면서도 정겹다. 흥부는 ‘평생에 밥이 포한’이라면서 ‘밥 한 통’만 나오라고 비는데, ‘박 속은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팔’자고 하는 것이다.

 

박은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인도·아프리카가 원산지다. 박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이전에 들어와 있었던 거로 볼 수 있겠다.

 

진한 사람들[辰人]은 박[호(瓠), 표주박]을 朴(박)이라 부르는데, 처음에 큰 알이 마치 박과 같았던 까닭에 朴(박)을 성으로 삼았다.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
    -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권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의 성을 알을 닮은 박이라 붙였다는 얘기니 이미 그 시절에 박은 재배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언제부터 박 덩굴을 초가지붕으로 올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박은 그렇듯 서민들의 삶의 자리에서 친근하게 자라고 있었다는 얘기다.

▲ 초가지붕 위의 박.&nbsp; 예전엔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었지만 지금 이런 풍경은 거의 없다. ⓒ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박은 초가지붕이 없어지면서 사라지는가 했다. 그러나 박은 초가지붕에 올라앉는 대신 밭으로 갔다. 아내가 얻어온 박도 장모님의 밭에서 익은 것들이다. 박은 남았지만, 바가지는 달랐다. 값싸고 튼튼한 플라스틱 바가지에 자리를 내어 주고 만 것이다.

 

바가지는 합성 플라스틱의 도전 앞에 맥없이 무너져 겨우 장식용 표주박 종류만이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전근대의 사대부들이 지향한 안빈낙도의 삶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구차하고 보잘것없는 음식’을 이르는 말에 ‘단사표음(簞食瓢飮)’이 있다. 이는 ´대바구니 밥과 표주박의 물´이란 뜻이니 오늘날 바가지의 위상은 꼭 그것과 부합할지도 모르겠다.

▲ 제사상에 올리는 탕국에다 무 대신 박을 쓴 박 탕국. 무덤덤한 묘미가 있다.
▲ 아내가 볶아낸 박나물. 우리의 입맛에는 조상들이 누천년에 걸쳐 굳히고 이룬 미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튿날 저녁상에 아내가 요리한 박나물과 박 탕국이 올랐다. 아내는 박속의 씨는 긁어내고 속살을 잘라내어 이 과육을 홍고추와 마늘을 넣고 기름에다 볶아냈다. 대체로 담백한 맛이지만 과육에서 우러난 물기가 박의 단맛과 어우러지면서 달착지근하기도 하다. 달되 그 달기가 넘치지 않고, 조금씩 씹히면서 매끄럽게 입안에서 녹아나는 박나물의 독특한 맛을 우리 내외는 천천히 즐겼다.

 

핏줄 따라 흐르는 ‘미각의 유전’

 

박나물을 소고깃국에 넣어서 끓인 탕을 나는 더 즐긴다. 제사상에 올리는 탕국에 무 대신 박을 쓴 음식이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우리 집에서는 탕국에 무 대신 박을 썼다. 탕국은 제삿밥의 된맛을 중화하는 음식인데 무나 박은 거기 걸맞은 재료다. 무의 시원한 맛과 비겨 뒤지지 않는 훨씬 무덤덤한 맛이 박 탕국의 묘미다.

 

아내는 원래부터 우리 전래의 음식을 무척 즐기는 편이지만 나는 입이 짧아 이런 음식들과 그리 친하지 못했다. 갖가지 나물로 만들어내는 음식을 일상으로 즐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나는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입맛도 변하는가 보았다. 어느 날부터 그런 토속적 음식이 당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는 양친이 즐겼던 음식을 무심히 따라가고 있다.

▲ 박으로 바가지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플라스틱이 그걸 완전히 대체한 결과다. 그러나 우리집에선 쌀독에 작은 표주박을 쓴다.

입맛은 정직하다. 미각은 식욕을 구성하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기호고 본능이다. 우리의 핏속에 우리 고단한 역사의 기억이 화인처럼 아롱져 있듯 우리의 입맛에는 조상들이 누천년에 걸쳐 굳히고 이룬 미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나브로 핏줄을 따라 유전하고 있다.

 

딸애는 박나물 맛을 즐기는 우리 내외의 숟가락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낯설어하지만 나이 들면서 아이는 우리의 미각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체득해 갈 것이다. 그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식생활 문화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2012. 8.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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