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기는 여름과일, ‘참외’ 예찬
“자신이 어떤 과일을 좋아해 즐겨 먹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근년의 일이다.”라고 하면 못 믿겠다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믿기 어렵지만, 이는 특정한 과일에 대한 취향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일상에서 과일을 상복(常服)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의 귀한 과일들
가장 흔한 과일인 사과만 해도 그걸 일상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 밥벌이하게 되면서였다. 어린 시절엔 사과도 귀하디귀한 과일이었다. 여느 날에는 구경도 못 할 그 과일은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쯤에야 겨우 맛볼 수 있었다.
귤을 처음 먹어본 게 고등학교 시절 같으니 더 말할 게 없다. 요즘에야 흔해 빠진 과일이지만 그 시절엔 왜 그게 그리 귀했는지. 철 따라 나는 과일도 마찬가지다. 배는 제수로 쓰이니 더러 구경이나 할 수 있었지만, 포도나 딸기 같은 것은 그림책에나 나오는 과일이었다. 아마 오늘날처럼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과일이 아니었으니 그랬을 게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과일이 감이었다. 집집이 한두 그루씩, 동네에 감나무는 지천이었다. 우리는 감꽃이 떨어질 즈음 그걸 주워 먹으면서 자랐고, 여름철에는 땡감을 따 옹기에 넣고 삭혀 먹었다. 가을철이면 절로 익은 홍시를 먹었다. 마을의 감나무밭에 가면 절로 떨어져 발효되어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홍시가 천지였다.
여름철에는 마을 곳곳에 원두막을 세운 참외나 수박밭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아닌 노지(露地)에서 익어가는 참외나 수박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을 삼키곤 했지만, 눈만 호강했지 그걸 먹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동네의 어깨 벌어진 형들은 가끔 참외나 수박 서리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겐 서리의 경험이 없다.
우리는 어릴 적에 참외를 ‘외’라고 했다. 이중모음을 잘 발음하지 않는 경상도이다 보니 실제 발음은 ‘이’였다. 오이는 ‘무리’라고 했다. 그게 ‘물이’, 즉 ‘물외’라는 뜻이었다는 걸 깨우치게 된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외’를 참외라 부르고 ‘물외’를 ‘오이’라 부르게 되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된 ‘물외’는 ‘참외’인 ‘외’에 대하여 구별하여 부르는 말이었다. (최근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울산 사람이 이 말을 쓰고 있는 걸 확인했다.)
‘외’에서 ‘참외’로
밭에서 익어가고 있는 참외를 구경할 수는 있었지만 그걸 여름내 즐겨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가끔 흠집 난 참외를 먹으라고 주는 이웃 덕분에 맛을 잊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가까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숟가락으로 참외 속을 긁어서 천천히 드시다가 가끔 한 숟갈씩 내 입에도 넘겨주셨는데 그때 입안에서 녹던 달콤한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거의 여름내 참외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구미로 옮겨온 2012년부터다. 장모님께서 오직 자식들 먹이려고 비닐하우스 한쪽에 참외 농사를 지으셨고, 그러지 못할 때는 이웃집에서 참외를 상자째 사 보내시곤 했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 4년여 동안 나는 여름내 참외를 먹을 수 있었다.
장모님께선 늘 참외와 갈치를 즐겨 먹는 맏사위의 식성을 헤아려 주셨다. 그뿐인가 누룽지 잘 먹는다고 그것도 챙겨주시던 당신께선 2015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나는 이태째, 아내가 일부러 챙겨 사 오지 않는 한 참외를 거의 즐기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위는 가신 장모를 고작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2015년이었을 것이다. 여름내 참외를 즐기다가 어느 날, 내가 참외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즐기지만 나는 수박보다는 참외가 좋다. 과육이 좀 여물거나 물러도 좋고, 속이 신선해도, 농한 듯 부드러워도 좋다.
지난 5월 중순 ‘제3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에 갔다가 누군가 건네준 성주 참외를 껍질째로 우적우적 씹으면서 나는 잠깐 장모님을 생각했다. 돌아가신 지 2년이 가까워지지만, 아직도 아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다.
참외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분류학적으로는 멜론(Cucumis melo)의 한 변종이다. 1차 원산지는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2차 원산지는 중국, 이란, 터키, 인도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에서만 재배, 생산할 수 있어서 영어로는 ‘한국 멜론’(Korean melon)으로 불린다.
참외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중국의 화북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측된다. 외[과(瓜)], 참외[진과(眞瓜)] 등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 경기도 등에서 생산되지만 역시 주산지는 경북이다.
참외 주산지 성주와 칠곡
특히 인근 성주와 칠곡은 참외와 수박 주산지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참외는 고온성 채소로서 대체로 30도 전후의 높은 온도에서 잘 자란다. 기후는 고온 건조한 편이 좋고, 토양은 물 빠짐이 좋으면서 수분을 잘 지니는 땅이 좋다고 하는데 성주와 칠곡이 참외의 주산지가 된 것은 이런 조건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더러 노지(露地)에서 참외를 재배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성주 칠곡에서는 농가 대부분이 비닐하우스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조숙(早熟) 재배를 한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시작하는 참외 농사는 2, 3월 첫 출하 때는 상자에 10만 원 이상, 성수기에도 5~6만 원을 받으니 그 수익이 쏠쏠하다.
여름내 참외를 따내는 농가에서는 수천만 원의 매출은 우습고, 농사를 크게 짓는 이들은 억대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1990년대만 해도 성주의 농민들은 ‘소나타 계’를 들고, 그랜저를 끌고 밭으로 출퇴근한다는 말이 있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거액의 매출을 내다보니 농협에 진 빚도 억대라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수익이 높다고 하지만 그런 수익을 올리기 위해 농민들은 겨울부터 여름내 비닐하우스 안에서 살아야 한다. 두통과 탈수, 울렁증에 허리·어깨 통증까지 수반하는 하우스병( (plastic house syndrome)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돈을 좀 벌려면 몸이 골병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주는 1940년대부터 60여 년간의 축적된 참외재배 기술과 품질로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참외 주산지가 되었다. 1949년 이전에는 주로 자가 소비하는 맥간작(麥間作)으로 참외 농사를 지었고, 1957년부터는 소규모지만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았다.
1960년부터 온상에서 육묘해 재배한 참외를 상품화하여 대도시에 출하하기 시작했고 1967년에는 하우스 육묘한 뒤, 멀칭 터널 재배를 시작했다. 본포(本圃) 하우스 재배의 원년은 1970년이다. 이 무렵에 칠곡 내 고향 쪽에도 하우스 참외 농사가 시작된 거로 기억된다.
부모님이 참외 농사를 짓는 친구와 놀다 보면 겨울철 해 질 무렵이면 으레 그는 ‘꺼지기’(거적)을 덮어야 한다며 부리나케 밭으로 가곤 했다. 비닐하우스 위에 짚으로 엮은 거적을 덮어서 밤새 하우스를 보온했다. 짚으로 엮은 거적은 부직포로 바뀌었고 90년대 말에는 이 보온덮개 자동 개폐 장치까지 개발되었으니 영농 기술의 발전도 눈부시다.
여름철 대표 과일 참외
참외는 비타민C, 베타카로틴, 단백질, 칼슘, 탄수화물, 나트륨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특히 태아의 뇌 기능 발달에 도움이 되는 엽산을 다량 함유한 건강식품이다. 특히 수분 함량이 90% 이상이어서 여름철에 갈증을 해소하고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참외를 많이 먹으면 밤에 오줌을 싼다고 하는 것은 수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칼륨이 많이 들어 있어 수박과 같이 이뇨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외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한다. 영양이나 효능을 떠나 참외는 수박과 함께 대표적 여름 과일이다.
어저께는 아내가 사 온 참외 가운데 제일 작은 놈을 골라 잘 씻어서 주머니에 넣고 산에 올랐다. 물 대신 주머니에 품고 가는 과일이 겨울에는 사과였고 지금은 바나나나 토마토가 되기도 하는데 참외는 처음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숨이 턱에 닿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린다. 정상 아래쪽 너럭바위에 앉아서 나는 참외를 우적우적 깨물어 씹어 먹었다. 단단한 과육과 달콤한 속 맛을 음미하며 나는 오래 그걸 씹고 또 씹으며 우정 중얼거렸다.
“역시, 여름철 과일은 참외가 제일이야.”
2017. 6.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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