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해마다 거듭되는 ‘나무 한살이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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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丹楓)은 나무가 더는 활동하지 않게 되면서 나뭇잎이 붉거나 노랗게 물드는 현상, 가을의 관습적 표지다. 가을철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 나무는 겨울나기를 위해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잎이 바람에 쉽게 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떨켜 층을 형성하여 나뭇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만들어 낸 녹말(탄수화물)을 떨켜 층 때문에 줄기로 보내지 못하고 나뭇잎 안에 계속 갖고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 잎 안에 녹말(탄수화물)이 계속 쌓이게 되면서 엽록소가 파괴된다. 그리고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카로틴(Carotene)과 크산토필(Xanthophyll, 이상 노란색), 안토시아닌(Anthocyanin, 붉은색)과 같은 색소가 나타나 잎이 물드는 것이다.
가을날, 조락에 앞서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단풍은 해마다 반복되는 나무의 한살이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표지로 여겨진다. 꽃이 먼저든 잎이 먼저든, 나무는 무성해지는 잎을 통하여 자라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마침내 한 해의 순환을 마치는 것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이들 나무의 한살이는 인간의 일생과 다르지 않다. 그 한살이는 태어나서 유년-소년-청년-장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른 인간의 시간표와 겹친다. 가장 아름다운 절정의 삶을 마치고 노년,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인간과 열매를 맺고 마침내 조락의 시간에 이른 나무의 일생이 만나는 것이다.
나무의 한살이를 끝내는 조락에 앞서 보여주는 나뭇잎의 단풍은 황혼에, 노을 속에 타오르며 스러지는 해를 닮았다. 조락에 앞둔 고운 단풍을 바라보며 거기 깊숙이 공감하게 된 것은 노년으로 진입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새삼 돌아보게 되어서일까. 맨발 걷기 가는 길에 만나는 이웃 아파트 담장에서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벚나무 잎사귀 단풍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나태주 시인은 ‘단풍’을 ‘죽어가는 목숨들이 / 밝혀놓은 등불’로, ‘다 못 타는 이 여자의 / 슬픔’이라고 노래했다. 그의 시 두 편을 우물거리며 어느새 11월, 성큼 문 앞에 선 겨울의 기척을 듣는다.
2023. 11.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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