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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풍경

순박한 민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by 낮달2018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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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닌 날’의 산수유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숲실마을 앞산에서 내려다본 화전 2리의 들판 . 곳곳에 무리지어 산수유가 피었고, 밭에 파랗게 자라는 것은 마늘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빨리 피는 봄꽃은 산수유다(비슷한 시기에 피는 생강나무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다른 꽃이다). 견문 짧은 아이들이 가끔 ‘개나리가 나무에 피었냐’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 꽃은 개나리처럼 잎보다 먼저 피는 노란 꽃과 가을에 길쭉한 모양의 빨갛게 익는 열매 때문에 더 유명하다.

 

80년대 이후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은 아마 산수유를,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김종길 시인의 시를 통하여 거꾸로 기억할 듯하다. 시 ‘성탄제(聖誕祭)’에서 열병을 앓으며 잦아들던 아들의 어린 목숨을 위하여, 젊은 아버지가 눈 속을 헤치고 어렵게 구해 온 약이 바로 ‘붉은 산수유 열매’다.

▲ 지난해 여물었던 산수유가 시든 채 매달려 있다(왼쪽)(2006년 3월). 다 익은 산수유 열매 (오른쪽 ).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전문

 

산수유 열매는 두통·이명(耳鳴)·해수병·해열 등의 약재로 쓰인다. 한국, 중국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에서 심는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경기 이천시 백사면 일원, 경북 의성군 등이 특산지이다. 구례와 이천에서는 3월 말에서 4월 초에 걸쳐 그 지역 이름을 건 산수유 축제를 베풀고 있는가 본데, 다행히 의성 지역에서는 아직 축제로까지 꾸려지지는 않았다.

▲ 시냇가에 핀 산수유. 흐르는 물과 꽃은 가장 완벽한 조합의 서정일는지 모른다.

의성에는 산수유가 너무 흔한 나무다. 길을 가다 잊을 만하면 눈에 띄는 나무고, 마을 들머리나 산 중턱에 마치 아지랑이처럼 화사하게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대개 다 산수유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 중 사곡면 화전리(花田里) 일대는 옅은 파스텔 색조의 노란 산수유꽃의 행렬이 십여 리가 넘게 이어지는 ‘산수유 마을’이다. 특히 화전 2리 숲실마을은 주말이면 상춘객과 사진기를 둘러멘 도회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화전리 산수유 마을을 찾으리라고 마음먹은 지 꼭 3주 만에야 어제(7일) 숲실마을에 발을 디뎠다. 처음 두 주말엔 비가 내렸고, 세 번째 주말은 황사가 전국을 뒤덮었던 까닭이다. 좀 이르게 온 듯한 봄기운에 서둘러 핀 탓일까. 4월 초순, 화전리의 산수유는 ‘끝물’이었다.

 

모처럼 20도를 상회하는 따뜻하고 화사한 봄날이었는데도 마을을 점령한 듯 들어찬 산수유 숲의 빛깔은 앓고 일어난 사람의 안색만큼이나 수척해 보였다. 서둘러 핀 꽃잎들이 뒤늦은 꽃샘과 잎샘추위에 경을 친 탓인지도 모른다.

▲ 화전 2리로 들어가는 길목 풍경 . 경상도 말로 '쌔리 퍼부었다'고 할 만하다

화전리를 찾은 것은 세 번째다. 첫해는 동료들과 함께 소풍 삼아 들렀고, 두 번째 방문은 사진을 찍겠다고 똑딱이 디카를 들고서였다. 철 지난 숲실마을은 한적했다. 여러 종류의 승용차와 레저용 차량이 줄을 잇고 서 있고, 밭둑에 이젤을 세워 두고 꽃나무를 캔버스에 담는 여인들과 커다란 사진기를 단 묵직한 삼각대를 멘 사람들로 북적였던 지난해의 풍경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좁은 길과 논두렁, 파랗게 펼쳐진 마늘밭과 바투 선 낮은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것은 도회의 상춘객, 정작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옛 풍경에 비기면 군데군데 밭을 갈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여유롭다. 살기 팍팍하던 시절, 약재로 팔기 위해 산비탈에 드문드문 심어 놓았던 산수유는, 그러나 지금은 화전리 주민들의 훌륭한 수입원이다. 사곡에서 출하되는 산수유는 경북 도내 산수유 생산량의 80%(전국의 38%)를 넘는다 한다.

▲산수유 꽃물결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공간은 마늘밭이다 .

여느 산에 저절로 자란 산수유와는 달리 화전리의 산수유는 임자가 있다. 주변 논밭을 일군 이들이 심은 나무들이니 당연히 그들이 주인이다. 화전2·3리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수유는 200년에서 300여 년쯤 묵은 고목으로 3만여 그루에 이른다 한다. 산수유 고목은 산비탈뿐 아니라 마을 한쪽으로 흐르는 물가에, 마을의 돌담길에 화사한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 숲실마을 뒷산에서 내려다본 골짜기 .

화전리의 산수유꽃 행렬이 특별한 것은 주변의 초록빛 마늘밭과 어우러져 연출하는 녹황(綠黃)의 꽃물결 때문이다. 낮고 완만한 산등성이와 긴 골짜기를 메우며 봄을 재촉하고 있는 이 꽃물결은 그러나 남녘보다 늦은 개화 시기 덕분에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게 목마른 도회 상춘객들의 성화와 시달림으로부터 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얼마간 구해냈는지도 모르겠다.

 

화전리 산수유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겨냥해 서투른 분칠을 거듭하면서 망가지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화전리에는 러브호텔은 물론 음식점도 하나 없다. 동전 한 닢 떨구지 않고 왔다 가는 상춘객들을 위해서 마을에서는 환영 펼침막을 걸어 두었고, 마을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성가실 법도 한데, 주민들은 이 ‘든 사람들’을 덤덤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화전리가 여전히 순박한 맨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산수유’를 빙자한 시끌벅적한 ‘축제’가 꾸려지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이 마을이 가진 미덕이다. 그러나 이 미덕도 조만간 ‘개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듯하다. 화전리가 지난 2월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 대상 마을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 마을 뒤편 산기슭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들.

의성군은 올해 기반 조성 사업으로 주차장, 생태탐방로, 마을 쉼터, 공중화장실, 포토존, 전망대 등을 조성할 예정이라는데 그런 ‘개발’의 이익이 정작 지역 주민들을 배제하고 ‘업자’들의 배만 불리면서 마을은 망가지고 마는 예를 떠올리는 것은 기우만은 아니다.

 

씨를 분리한 산수유 열매는 한약이나 차와 술의 재료로 쓰인다. 10여 년 전부터는 산수유 씨를 기계로 발라내지만, 그 이전에는 이로 씨를 발라냈다고 한다. 화전리 노인들의 닳고 비뚤어진 이는 바로 그 같은 고단한 삶의 증거이다. 그들의 상한 이는 가구당 평균 1천여만 원의 소득과 맞바꾼 셈이다.

▲ 숲실마을 입구 풍경 . 여느 때라면 마을로 들어오는 저 길은 주차장이 되고 만다 .

한편, 의성은 이른바 고품질 한지(寒地)형 마늘의 주산지다. 의성 토종마늘은 쪽이 6~7쪽으로 탁월한 저장성, 특유의 향과 매운맛을 자랑한다. 마늘의 매운맛만큼이나 의성의 농민들도 맵고 단단한 이들이다.

▲ 의성 치선리 석탑 . 화전리에서 의성읍으로 나오는 길목에 있다 .

그러나 나날이 옥죄어 오는 개방농정의 파고 앞에 선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에 우리는 말을 잃는다. 2002년 ‘한중 마늘 파동’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던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총리로 기용된 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점은 자못 시사적이다.

 

일찍이 어떤 농업, 농촌, 농민 정책도 정작 농민과 농촌을 구하지 못했다. 농민들의 분노와 절망이 날것 그대로의 진정성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 있다.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절대권력은 재벌이 아니라 땅을 일구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을 향하여 ‘경쟁력’을 요구한다.

 

‘가난한 이들에겐 투쟁이 정의’라고 일갈한 사제들의 절규와 이웃을 향해 총을 난사한 한 젊은 농민의 절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떠오르는 오후. 의성 농업인 회관에 내걸린 한미FTA 반대 현수막과 마당에 쓸쓸히 서 있는 빈 트럭을 바라보는 마음은 스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인가. 시인 박남준은 그의 시 ‘산수유 꽃나락’에서 ‘봄 아닌 봄’에 만난 산수유꽃을 보며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시름 많은 이 나라 햇나락’을 노래한다. 그리고, ‘추수 무렵 넋 놓은 논배미의 살풍경 같은’ 노란 산수유의 꽃 열매가 ‘그리 붉어도 시큼한 까닭’을 알겠다고 되뇌는 것이다.

▲ 의성 농업인회관 . FTA  반대 현수막만이 외롭다 .

이른 봄에 피어나는 이 봄꽃 앞에서 절망과 회한의 추수, 그 탄식을 미리 만나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깨우침은 씁쓸하기만 하다.

 

봄이 와도 아직은 다 봄이 아닌 날

지난 겨우내 안으로 안으로만 모아둔 햇살

폭죽처럼 터뜨리며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 널 보며 마음 처연하다

가을날의 들판에 툭툭 불거진 가재눈 같은

시름 많은 이 나라 햇나락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닌 날

산자락에 들녘에 어느 어느 이웃집 마당 한켠

추수 무렵 넋 놓은 논배미의 살풍경 같은

햇나락 같은 노란 네 꽃 열매

그리 붉어도 시큼한 까닭

알겠어 산수유꽃

 

  - 박남준 <산수유 꽃나락> 전문

 

 

 

2007. 4. 10. 낮달

 

 

 

순박한 맨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여행]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닌 날'의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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