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꽃 중의 꽃’ 모란(牡丹)과 작약(芍藥)

by 낮달2018 2023. 4. 29.
728x90

모란은 나무(목본), 작약은 풀(초본)이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우리 동네에서 만난 모란. 모란은 예부터 '화왕'으로 불리어 왔다.

모란을 처음 보게 된 건 언제쯤이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꽃을 실체와 그 이름을 같이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꽃을 ‘안다’라고 할 수 있으니, 설사 보았다 해도 무심코 스쳐 지나간 것은 기억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모란의 이름을 불러준 때가 있었겠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지 그것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부귀화의 상징, 화중왕 모란, 우리는 ‘목단’으로 불렀다
 
시골을 떠나 진학한 도시의 중학교에 모란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애매하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언제쯤 배웠는지도 아리송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랑의 시를 공부하면서 모란이 화투장의 ‘목단’이라는 걸 처음 알았던 건 분명하다. 그러나 역시 실제 모란을 본 적이 없으니, 화투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그런 꽃이거니 했을 뿐이었다.

▲ 화투장의 목단. 목단이 '모란'을 이른다는 사실은 알게 된 것 다 자라서다.

목단(牧丹)이 ‘모란’으로도 읽히는 것은 발음을 쉽게 하고자, 또는 발음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이려고 하면서 소리에 변화를 준, 이른바 ‘활음조(滑音調) 현상’ 때문이다. [‘지이산(智異山)’을 ‘지리산’, ‘한나산(漢拏山)’을 한라산, ‘보녕((保寧)’을 보령으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애당초 꽃 빛이 붉어서 ‘단(丹)’이라 하고,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고 ‘수컷 목(牡)’ 자를 붙였다.
 

<나무위키>에서는 목단의 한국 한자음은 ‘칠 목(牧)’ 자를 썼으나 활음조 현상으로 ‘모란’이 되면서 중국식 한자음인 ‘수컷 모(牡)’ 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듯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목단(牧丹)’ ‘모란(牡丹)’을 각각 달리 쓰고 있다.


<삼국유사>와 <화왕계>에 나오는 모란
 
모란은 중국 원산으로 신라 진평왕 때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당 태종이 보내온 모란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진평왕의 딸)은 그림의 꽃에 나비가 없으니 모란이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씨앗을 뿌려 꽃이 피자 여왕의 말이 적중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모란은 그윽한 향기를 지닌 꽃이다.
 
모란은 꽃이 크고 그 빛깔이 화려하여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꽃 중의 왕[화중왕(花中王)]으로 임금을 상징하며, 부귀화(富貴花) 등의 별칭으로 알려져 왔다. 설총(655~?)의 ‘화왕계(花王戒)’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한다. 강희안(1418~1465)의 전문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화목(花木) 9등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했는데,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모란은 미나리아재빗과(작약과)의 ‘낙엽이 지는 넓은 잎을 가진 키가 작은 나무[관목(灌木)]’다. 높이는 2m 정도 자라며 꽃은 5월에 핀다. 꽃은 홍자색을 기본으로 백색·홍색·담홍색·주홍색·농홍색·자색과 황색이 있다. 꽃이 피는 기간은 2∼3일이지만 꽃잎이 많은 종류는 7∼10일간 피기도 한다. 꽃은 아침부터 피기 시작하여 정오에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 우리 동네 중학교 뒤쪽의 단독주택의 마당에 핀 모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꽃은 거의 졌다.
▲ 부곡동의 산책길, 어느 집 화단에 핀 모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주인의 배려로 들어가 찍은 사진이다.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에서 어느 집 정원에 핀 한 그루의 모란을 각각 만났다. 그런데, 아직 4월인데도 이미 절정을 지났는지 꽃은 얼마간 시들어 있었다. 한 그루는 울타리 밖에서도 훤히 보였고, 또 한 그루는 집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화단에 피어 있었다. 꽃은 이내 시들었고, 나중엔 꽃받침만 남았다.
 
김영랑(1903~1950)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은 ‘희망과 소망’의 상징이다. 불모의 겨울을 극복하고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는 봄의 막바지에 피는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시인이 봄과 모란을 상실하는 순간의 정서를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노래하는 이유다. 시인은 그 ‘소멸의 서정’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역설로 표현하며 시상을 마무리한다.

▲ 모란은 붉은 색, 흰색, 보라색 등 빛깔이 다양하다.

젊은 시절엔 작품 자체의 서정성과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이른바 ‘유미주의’ 경향의 이 시를 한 시대의 시적 경향으로만 이해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 시의 울림은 좀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봄을 여읜 설움”과 서운하게 무너진 “내 보람”, “찬란한 슬픔의 봄”에도 절로 머리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다.
 
모란은 목작약(木芍藥)이라고도 부르는데 ‘작약과 비슷한 나무’란 뜻이다. 모란과 작약은 다 같이 그 꽃 모양이 크고 화려하며 잎 모양이 단정하여 꽃 중의 꽃이라고 기려져 왔다. 중국에선 이 두 꽃을 다 사랑하여 모란과 작약을 접목과 교배 등을 해서 친족 관계에서 혈족 관계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모란을 ‘목작약’이라 하고 작약을 ‘초목단(草牧丹)’이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 작약. 모란과 친족 관계지만, 모란이 목본(나무)인데 비해 작약은 초본(풀)이다. ⓒ 국립생물자원관
▲ 작약도 품종이 매우 다양하다.

모란은 나무, 작약은 풀이다
 
작약(芍藥)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다년생 초본식물)이다.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백작약·적작약·호작약·참작약 등 품종이 다양하다. 모란과 작약의 결정적 차이는 모란이 나무고, 작약은 풀이라는 점이다.
 
모란은 새순이 나뭇가지에 돋지만, 작약은 땅속에서 붉은 싹을 틔운다. 겨울나기도 나무와 풀이 확연히 갈린다. 모란은 잎이 떨어진 가지로 월동하지만, 작약은 풀이라서 땅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뿌리만 남아서 겨울을 난다. 키는 모란이 2~3m로 크지만, 작약은 60cm 정도밖에 안 된다.
 
개화 시기는 모란이 조금 빨라 4~5월이고, 작약은 5~6월이다. 5월이 되면 의성 조문국 유적지 경덕왕릉 맞은편 언덕에 조성된 작약 단지에 흐드러지게 핀 작약꽃이 여행자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고대국가의 유적지, 드문드문 서 있는 고분 사이로 핀 화려한 꽃의 향연을 즐기러 올해는 의성을 찾아볼까 싶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 사적지 고분 언덕에 조성된 작약 단지에 작약이 흐드러졌다. 2018년 5월 23일.

 

2023. 4. 29.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