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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뚝새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불러주다’

by 낮달2018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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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이른 봄 모내기 전까지 논밭에서 보아온 이 풀이 '뚝새풀'이란 걸 나는 반 세기가 지나서 처음 알았다.

도회에서 자란 이에 비기면 다소 나을 순 있겠지만, 시골 출신이라고 해서 들이나 산의 풀이나 나무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도회로 나간 뒤엔 시골에서 보낸 시간은 입대할 때까지 두세 해에 그치니 더 말할 게 없다.

 

퇴직하고 이웃 마을로 산책하듯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운동을 시작하니까 마치 시골살이를 새로 하는 듯했다. 산책길은 동네를 벗어나면 바로 논밭이 나타나는 등 더 볼 것 없는 시골이다. 철마다 바뀌는 농작물과 나날이 새로워지는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어렸을 적에는 무심히 지나친 사물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심히 ‘이름 모를’ 꽃과 나무로 퉁쳐 버린 대상을 알아보려고 애쓰게 되었다. 언젠가 쓴 글에서 말했듯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의미 있는 관계의 출발점’이다. 이름을 불리는 순간부터 꽃과 나무는 단순한 객관적 사물에서 ‘상관물(相關物)’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걸 나는 ‘관계의 출발, 혹은 삶의 확장’이라고 표현했다. 아는 이름이 더해질수록 나는 내 삶이, 혹은 생활이 풍성해지는 느낌에 행복해한다. 내 삶과 이어진 세계의 일부라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도 당연히 삶의 확장이라 고 받아들여서다. [관련 글 : 꽃과 나무 알기- 관계의 출발, 혹은 삶의 확장]

▲ 뚝새풀은 모내기 철이 되면 갈아엎어 거름으로 쓰니 농민을 괴롭히는 잡초는 아닌 셈이다.
▲ 마치 일부러 씨를 뿌려놓은 것처럼 논 전체에 뚝새풀이 정연하게 자라고 있다.
▲ 논밭을 물론 습기 있는 밭이나 들판, 도랑 가에서도 잘 자란다는 뚝새풀. 가을에 발아해서 작은 개체로 겨울을 난다.

요즘 모내기할 때까지 묵혀 놓은 논에는 일부러 씨를 뿌린 것처럼 자란 풀들이 무성하다. 4월부터 줄기 끝에 기다란 원기둥 모양의 꽃이삭이 생기며, 거기 볍씨 모양의 작은이삭(소수)이 빽빽이 달렸다. 어렸을 적부터 지겹게 봐온 풀인데, 이름은 몰랐다. ‘모야모’에 물었더니 ‘뚝새풀(Alopecurus aequalis)’이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뚝새풀은 이른 봄부터 모내기 전까지 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볏과의 겨울형 한해살이풀이다. 논뿐만 아니라 습기가 있는 밭이나 들판, 도랑 가 등에서도 자란다고 한다. 추수가 끝난 가을에 발아해서 솜털처럼 작은 개체로 겨울을 나고는 이름 봄부터 쑥쑥 줄기를 올리고 몸집을 키운다. 대개 여러 개체가 모여 나며,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단다.

 

뱀이 나옴 직한 곳에서 자란다고 하여 뚝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지방에 따라 ‘독새풀, 둑새풀, 독개풀, 산독새풀, 독새, 독새기, 개풀’ 등으로 불린다. 한국·중국·일본·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하는데 논에 사는 개체와 밭에 사는 개체가 서로 다른 번식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 뚝새풀(Alopecurus aequalis)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 뚝새풀은 이른 봄부터 모내기 전까지 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볏과의 겨울형 한해살이풀이다.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논에 사는 개체들은 대개 농사 주기가 일정하고 안정된 서식 조건이라 자가수분(自家受粉 : 한 그루의 식물 안에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꽃가루가 같은 식물의 암술머리 또는 밑씨에 옮겨붙는 것)에 큰 씨앗을 선호하지만, 밭에 사는 개체들은 농사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서식 여건이 불안정하므로 여러 경우의 수에 대비해서 타가수분에 작더라도 많은 씨앗을 선호한다고 한다.

 

뚝새풀은 주로 가축의 먹이로 이용된다. 소변이 잘 나오게 하며 종기를 없애주며[이수소종(利水消腫)] 설사를 멈추며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 부기를 내리거나 수두, 설사, 황달 간염, 적목 현상, 독사 물림 등에 쓴다. 맛은 담백하고 성질은 서늘하다.

 

뚝새풀은 논마다 이랑을 따라 정연하게 자라서 마치 일부러 짓는 농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길이 자람을 하지 않아서 늘 그만그만한 상태다. 생장과 번식이 농한기인 이른 봄에 맞춰져 있어서라고 한다. 모내기할 때까지 버려두었다가 모내기 철에 갈아엎어 거름으로 쓰고, 밭에서도 농사를 시작하면서 갈아엎어 주면 된다.

 

아직 모내기는 한참 남았으니, 당분간은 산책길에서 뚝새풀을 만나는 것도 이어지겠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나는 뚝새풀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다. 아마 억세거나 모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그 수더분한 빛깔과 모양새가 친근하게 느껴져서인 듯하다.

▲ 요즘 들과 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들. 왼쪽부터 애기똥풀, 씀바귀, 고들빼기, 봄까치꽃(개불알꽃), 각시붓꽃

논밭의 둑과 길섶에는 요즘 씀바귀와 애기똥풀, 민들레, 동의나물 등이 노랗게 번지고 있다. 제비꽃과 각시붓꽃 등이 보랏빛을 보태고, 개불알꽃(이름이 거시기하다고 동호인들은 ‘봄까치꽃’으로 순화해 부른다)도 거기 동참한다. 사람이 보살피지 않아도 야생화 역시 저마다의 빛깔과 향으로 봄을 즐겨 누리는 것이다.

 

 

2023. 4.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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