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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3 텃밭 농사] ⑥ 겨울나기 끝낸 마늘, 부직포 이불을 걷어내다

by 낮달2018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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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직포를 벗긴 지 꼭 보름 만인 지난 24일의 우리 마늘밭. 제법 마늘밭 꼴을 갖추었다.

지난 2월 9일, 혼자 텃밭에 들러 마늘밭에 덮어둔 부직포 이불을 걷어냈다. 아내가 참고하여 구독하는 유튜브에서는 애당초 설을 쇠고 나서 바로 걷으면 된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망설였다. 음력으로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침에는 수은주가 곤두박질치곤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홍산마늘, 74일 만에 햇볕을 보다

 

나는 마늘을 심은 의성의 장(張)에게 전화를 걸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여긴 추워서 당분간 더 지켜보아야겠다고 했고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랐다. 중순께 영상 10도까지 오르는 따뜻한 날씨가 며칠 이어지자, 나는 주간 일기예보를 챙겨보고 부직포를 걷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걷고 나서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 정도 추위라면 봄을 코앞에 둔 마늘이 능히 견뎌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홍산마늘에 부직포를 덮은 건 지난해 11월 28일이다. 너비가 모자라 찍개로 집어서 늘인 부직포로 얼마간 부실한 이불을 덮고 우리 마늘은 74일 동안이나 추위를 견뎌낸 것이다. 부직포를 걷어내자, 겨우내 숨만 쉬던 마늘 싹들이 햇볕 아래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다.

▲ 74일 동안의 겨울나기를 지나온 우리 홍산마늘. 군데군데 빠끔한 빈 구멍이 적지 않고, 싹도 어설프다.
▲ 1주일 후의 우리 홍산마늘. 조금 생기를 찾으며 살아나고 있다.
▲ 일주일 만인데도 부직포를 벗기고 나자 드러났던 서글픈 꼴을 벗고 마늘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얼어 죽었다고 여길 만한 싹은 보이지 않았지만, 74일 만에 얼굴을 드러낸 우리 홍산마늘은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무엇보다 군데군데 빠끔한 구멍이 보이는데 싹이 나지 않은 데가 눈에 걸렸다. 겨우내 구멍 속에서 죽은 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일단, 겨우 줄기만 남은 마늘이 어설퍼도 생기를 잃지는 않은 듯해 안심했다.

 

무서운 ‘하룻볕’, 보름 만에 싱싱하게 살아난 마늘밭

 

일주일 후인 15일에 들러서 아내는 복합비료를 뿌려주었다. 물론 유튜브의 선배 농사꾼의 지도를 따른 것이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늘은 훨씬 생기를 되찾아서 제법 마늘밭 같아졌다. 이런 걸 일러 오뉴월이 아니어도 ‘하룻볕이 무섭다’라고 하는 것일 터이다.

 

24일, 그러니까 부직포 벗긴 지 꼭 15일 만에 다시 들르니 그간 전체적으로 제대로 자란 놈과 그렇지 못한 놈 사이의 불균형이 얼마간 잡혔는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안정돼 보이고,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 됐다, 아내와 마주 보고 우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 이제 제대로 자랄 일만 남은 우리 마늘. 줄기가 생기를 찾으면서 단단해 보이는 게 기특하기만 하다.

아내는 다음 주쯤에 와서 약을 쳐야겠다고 한다. 그건 물론 내 의견을 물은 게 아니고 아내의 결정이니, 나는 그걸 따라 아내를 거들거나, 일러 주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정작 나는 집에서 만들어 온 원형톱 가이드 바로 합판을 자르는 데에 골몰했다.

 

난생처음 짓는 마늘이라 심고, 겨울나기를 도운 게 고작인데도 제법 꼴을 갖춘 마늘밭의 풍모가 자랑스럽다. 아니다, 뿌린 대로 그 생명을 길러내는 땅의 위대함이 마음에 겹다. 마늘을 캘 때까지는 아직도 서너 달이 남았으니, 남은 기간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보살피면 수확의 기쁨과 감격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듯하다.

 

 

2023. 2.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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