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자진 퇴출기

by 낮달2018 2022. 12. 28.
728x90

나의 ‘<오마이뉴스> 시대’(2006~2022)를 갈무리하면서

▲ 지난 10월, 가족과 함께 들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여기서 관람한 이건희 컬렉션 기사를 쓰고 기사 쓰기를 멈추었다.

15년간의 기사 쓰기, 멈출 때가 되었다

 

지난 10월 17일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관람 기사를 쓰고 난 뒤, 나는 <오마이뉴스> 기사 쓰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더는 기사를 보내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자진해 시작한 뉴스게릴라 구실을 스스로 내려놓은 셈이다.

 

별 기대 없이 쓴 기사 한 편이 채택되면서 시작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5년은 얼추 내가 교단에 선 시간의 거의 반에 가깝다. 그동안 정식 기사는 모두 379편을 썼고, 그만그만한 상도 제법 받았다. 적지 않은 원고료를 타서 생광스럽게 쓸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관련 글 :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5, 그리고 글쓰기]

 

올 1월에 ‘202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뽑혀 쓴 소감에서 나는 ‘나이 들면서 예전 같진 않지만, 앞으로도 글감들을 뒤적이며 궁싯거리는 시간을 이어가겠’다고 썼다. 그러나 그 약속, 이라기보다 다짐은 올해를 갈무리하면서 거두어들이고자 한다.

 

▲ 스스로 소년기에 못잖은 성장의 시간이라고 여긴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5년의 흔적들이다.

인간의 삶에서 나아감과 물러남이 분명해야 한다는 건 오래된 명제다. 이형기 시인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한 까닭도 같다. 그러나 나는 굳이 내 결정을 진퇴의 문제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오마이뉴스>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비워주어야 할 만큼 중요 인물도 아닐뿐더러, 그런 비중을 지니지 않은, 15년쯤 묵은, 숱한 시민 기자 중 1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면서 이제 더는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는 그만 주절댈 때도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았다. ‘뉴스게릴라’로 불리기는 하지만, 이들 ‘시민’은 기사 쓰기의 의무 따위는 지지 않으며,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렇지 않을 땐 무제한으로 쉴 수 있다.

 

반대로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선 이들 시민이 송고한 기사를 취사선택한다. 기사가 될지 말지는 전적으로 편집자들의 독점적 권한이라는 말이다. 이는 기자 자신이 아무리 잘 쓴 기사라고 여겨도 편집자의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사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사 가치는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주 화면 윗부분(오름)에 걸리거나, 그 아래 중간 부분(으뜸), 또는 맨 아랫부분(버금)에 게재된다. 주 화면이 아닌 부 화면에 실리는 기사는 ‘잉걸’이고, 기사로 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기사는 ‘생나무’로 처리된다.

 

뉴스게릴라로 연차가 쌓이면, 내가 보낸 기사가 어디쯤 걸릴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예측이 늘 적중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망하는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에서 기사 판단 권한은 전적으로 편집부에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가끔 예측이 바뀐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나는 그런 시스템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기사가 내 의도와 다르게 첨삭되거나, 기사의 분량의 문제가 되는 사례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편하게 기사를 써서 송고할 수 있었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독자들이 기사를 잘 읽지 않는다면서 기사의 분량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한 건은 근년에 들어와서다. ‘사는 이야기’나 ‘서평’ 기사를 보냈는데, 기사를 좀 줄여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부당한 요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사마다 그런 요청을 받는 건 일종의 스트레스여서 나는 글을 쓰면서 일종의 ‘자기검열’을 해야만 했다. 늘어진 4천 자짜리 기사보다 깡총하게 다듬어 줄인 3천 자 기사가 훨씬 좋은 기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건조한 ‘사실(팩트fact)’ 위주의 기사가 아닌데도 그런 데 얽매여야 하는 건 적지 않은 고역이었다.

 

시스템의 변화와 매너리즘, 혹은 자기검열

 

글쎄, 기사 분량에 대한 요구가 계속된 게 한두 해쯤 되었던가 모르겠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그런 요구가 줄어들면서 나는 얼마간 편안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게 <오마이뉴스> 기사 채택 시스템의 변화가 시나브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밝혔듯, 내 글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 맨날 비슷한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회의에 곧잘 빠지곤 했다는 점도 고백해 둔다.

▲ 2021년 8월에 이 영화의 리뷰를 써서 보냈으나 이 리뷰는 '기사가 되다 말았다'.

지난해 8월, 내가 쓴 영화 <모가디슈>(류승완 감독)의 리뷰는 ‘잉걸’로 간신히 기사의 자격을 얻는 데 그쳐, 주 화면에서는 읽을 수 없었다. 글쎄, 기사가 편집자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게 ‘잉걸’이 된 데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알고 지내는 편집부 기자에게 따로 ‘기사가 되다 만’ 사유를 알아봐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관련 글 : 분명 액션영환데 이 물기는 도대체 뭐지?”]

 

애당초 책임 있는 답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그게 답을 받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예상대로 어떤 답도 오지 않았고, 나는 굳이 답을 재촉하지 않는 대신, 그걸 잊어버리기로 했다. 편집자의 기사 검토 과정에 이전과는 다른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15년차…, 뜻밖의 전개와 당혹

 

그리고 이후, 예상보다 ‘저평가받아(이는 물론 나의 잣대에 따른 주관적 판단이다) 기사 게재 위치가 달라진 내 기사는 거의 열 편에 가깝다. 머리기사로 배치되기 위해 대기하던 기사는 정작 예상한 등급보다 아래 등급으로 출고되곤 했다. 나는 편집자의 권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내 기사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살펴보고 그걸 대승적으로 수용하려고 했었다.

 

올 4월에 나는 은퇴한 벗들과의 교유, 그리고 쓸쓸한 노년의 초상을 다룬 기사 한 편을 ‘사는 이야기’로 송고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생나무’로 판정받았고, 나는 기사를 회수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기사가 되”는 <오마이뉴스>에서 내 일상은 틈입을 거부당한 것이었다. [관련 글 : 일흔 앞둔 은퇴자들, 복사꽃밭에서 낮술을 하다]

▲ 이 아름다운 벗의 도화원에서 은퇴한 초로의 사내 셋이 동영부인으로 만나 봄날을 즐긴 이야기는 결국 '사는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이후 몇 편의 기사를 더 쓰면서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시민 기자 15년 차에 맞닥뜨린 이 뜻밖의 상황에 당혹했고, 내가 거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느꼈다. 그리고 10월 중순께 기사 한 편을 보내고 나서 나는 더는 기사를 쓰지도 보내지도 않았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지금은 종료된 서비스다) 시절에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 가운데 800여 편이 기사가 되었었다. 나는 정식 기사로 쓰기에 좀 사적인 이야기는 편하게 블로그에 썼는데, 그게 기사가 될 만했는지 편집부에서 주 화면에다 배치하고 원고료까지 주었었다.

 

그 뒤, 기사 대신 편집부의 평가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선산 톺아보기’ 시리즈를 스물몇 편, 올가을에 시작한 마늘 농사를 다룬 ‘텃밭 일기’ 등을 여러 편 썼다. 기사 검토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글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쓰면서 나는 오마이뉴스 블로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관련 글 : 청화산 중턱 폐사지, 무너진 불탑은 복원될 수 있을까]

▲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추정하는 선산 청화산 주륵사지 폐탑 풍경. 나는 느긋하게 이런 풍경을 찾아다니며 소일하고 있다.

편집부의 검토라는 평가 과정과 무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기사를 보내던 시절이 어쩔 수 없는 평가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매우 불편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기사가 될 만한지 따지면서 일상을 바라보며, 기사에 대한 평가에 연연하고, 동의하기 어려운 저평가를 찜찜하게 수용하는 시간을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부담 털어낸 해방, 사적 글쓰기로 복귀

 

그리고 두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것은 뉴스게릴라로 살면서 내가 져야 했던 모든 부담을 털어낸 해방의 시간이었다. 자기검열도 필요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자신의 주관적 정서에 오롯이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적지 않은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오해 없으시기를. 나는 뉴스게릴라로 활동한 지난 15년을, 기사를 쓰며 독자와 함께 나눈 시간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위안과 못지않은 값진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비록 더러 자신의 아둔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뉘우치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내 소년기에 못잖은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삶과 세상에 대한 어쭙잖은 인식과 태도가 드러난 그만그만한 글을 통해 나는 내 ‘개인적 글쓰기’가 ‘사회적’인 작업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통하여 맨얼굴로 독자를 만나는 순간의 두려움을 이해했고, 세계와 마주 선 자아 정체성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어디쯤 있는가를 깨닫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며칠 뒤면 2022년도 저물 것이다.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은 스러지고, 다시 우리 삶의 연차를 하나 더 보태는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삶도 저물어가면서 세대도 교체될 것이다. 이 송년의 시간과 더불어 이 장황한 글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자진 퇴출의 변으로 삼으며  나의 ‘<오마이뉴스> 시대’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2022. 12. 28. 낮달

 

 

덧붙임 :

담담하게 쓰고자 했는데, 좀 심각한 사연으로 읽힌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글이 시원찮아서다. 나는 이후로도 10만인 클럽의 일원으로 <오마이뉴스>가 가는 길을 지켜볼 것이다. 혹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 없어진다면 다시 기사 쓰기에 도전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섣부른 약속으로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기엔 나는 아직 충분히 남은 힘이 있거나, 혹은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