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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액션’ 영환데 이 물기는 도대체 뭐지?”

by 낮달2018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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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일요일 조조 상영의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모가디슈’는 에티오피아와 케냐와 접경한 동아프리카 국가 소말리아의 수도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소말리아 내전에 휘말린 한국 외교관이 고립된 도시를 탈출하는 영화로만 알았지, 영화의 고갱이가 ‘남북한 동반 탈출 실화’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영화가 시작되면서였다.

 

내용도 확인하지 못하고서 영화를 봐야겠다며, 혼자서 극장을 찾은 이유를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류승완 감독이나 김윤석, 허준호, 조인성 같은 배우에 꽂혔던 것일까. <기생충>(2019) 이후 거의 2년 만의 극장 나들이였으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영화가 선사하는 전율’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전으로 빚어진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영화의 배경인 소말리아는 1990년 남북 외교전의 현장이었다. 남북은 서로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며 유엔 단독 가입을 추구했고, ‘표밭’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20년 전에 현지에 진출하여 외교 관계를 지속해 온 북한을 견제하면서 남한의 한신성(김윤석 분) 대사가 UN 총회에서 소말리아 대통령의 남한 지지 발언을 끌어내려 동분서주하던 냉전의 시기다.

 

쿠데타로 집권한 바레 장군의 22년간 독재에 맞선 시위가 격렬해지다가 마침내 내전으로 번지면서 남북의 외교전은 누구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상황 앞에서 함께 공동의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한다.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그렇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반군의 모가디슈 진입을 앞두고 시내엔 통신과 전기마저 끊기고 한국 대사관 식구들은 대사관에 고립된다. 돈을 주고 현지 무장 경찰의 보호를 받던 남한 대사관에 무장 폭도들에게 쫓긴 북한 림용수 대사(허준호 분) 일행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 1990년 모가디슈는 유엔 단독 가입을 다투는 남북한 양국의 외교전의 현장이었다. 소말리아 정부 청사 안에서 만난 남북의 외교관들.

관객들은 이쯤 오면 영화가 어떤 경로로 진행될지 눈치채기 마련이다. 영화의 배경은 1990년이지만, 2021년의 관객들은 2000년 이후 이어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등으로 이루어진 화해와 협력의 사례를 통하여 잘 학습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의 예상과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

 

그러나, 때는 지금으로부터 30년도 전이다. 남한 대사관에 도움을 구하는데 모두를 반동분자 만들 거냐며 반발한 북한 대사관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분)와 저들을 받아들이는 게 국가보안법 위반일 수 있다고 부르대는 남한 대사관의 안기부 출신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분)은 그런 냉전 시대를 환기해 주는 인물이다.

 

1990년 배경과 2021년의 관객

 

성공적인 외교로 유엔 가입에 성공하고 그로 인한 승진까지 꿈꾸는 외교관 한신성은, 직분에 얽매이지 않고 동포애와 휴머니즘의 화신이 되는 ‘준비된 주인공’이 아니다. ‘적’의 구호 요청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만큼 담대하지 못한 그는 강대진의 망설임 못지않게 주저를 거듭한다.

 

그러나 그는 ‘갈 곳이 없다’는 림용수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양측 공관원들과 그 가족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대한민국 외교사는 그 동거가 열이틀 동안 이어졌다고 전한다. 같은 공간을 나누었지만, 양측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한다.

 

강대진은 몰래 숨어서 북측의 여권을 기초로 가짜 전향서를 타자하다가 태준기에게 들켜 드잡이질을 벌인다. 그러나 한신성이 여분의 인슐린을 림용수에게 건네주면서 양측의 본능적인 경계와 학습된 적의는 누그러진다.

▲무장 반군들에게 쫓겨난 북한 대사관의 림용수 대사와 공관원,그리고 가족들은 한국대사관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한다.
▲ 공동운명체가 되어 탈출을 논의하는 남북의 외교관들.

양측은 모가디슈를 빠져나갈 방법을 함께 논의한 끝에 남은 이탈리아 대사관에, 북은 이집트 대사관에 각각 요청하여 탈출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다. 어느 한쪽만 가능해지면 어떡하냐는 림용수의 질문에, 한신성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그것은 각자도생하자는 말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살 사람이라도 살아야지요.”

 

영화의 뒷부분은 이들의 불꽃 튀는 탈출기다. 시내로 진주한 반군의 경계를 뚫고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네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탄 22명의 남북한 공관원과 가족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일방적인 공격 앞에 방탄용으로 책과 각종 가구를 차체에 덧댄 승용차에 타고 이들은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살아서 목적지에 닿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배우들의 호연을 굳이 이르는 건 사족이다. 한신성 역을 맡은 김윤석이나 조인성과 정만식, 구교환 등 조연은 물론이고, 북한 대사 허준호의 연기는 압권이다. 허준호는 마치 이북에서 갓 내려온 북한사람 같은 모습으로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구부정한 어깨, 각진 독특한 표정, 낮으면서 결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는 적에게 구명을 요청하는 외교관 역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북한 외교관의 모습은 관객에게 분단 현실을 아프게 환기하면서도 일종의 안도감을 선사해준다. 관객들도 적의 도움 앞에 무너져 버린 동족의 모습 보기를 원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예기치 않은 동거와 동반 탈출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 오히려 대범하고 담담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남북 관계의 판타지나, 신파를 배제한 채 현실을 냉정하게 묘사”(씨네 21)함으로써 영화는 미덕과 함께 리얼리티를 얻었다.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네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탄 22명의 남북한 공관원과 가족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모가디슈는 총탄 속을 뚫고 탈출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흔치 않은 액션 영화다. 감독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든 간에 그 동반 탈출 과정에서 연출되는 휴머니즘은 오히려 부수적일 만큼.

 

1990년 모가디슈의 협력은 어떤 미래로 이어져야 할까

 

그러나 남북 양측이 모가디슈 탈출 과정에서 보여준 유대와 연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상부상조는 남북 공존의 진실을 시나브로 깨우쳐준다. 그것은 오히려 가볍게 액션 영화를 즐기고자 하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가 되어 버리고 말 만큼.

 

돌발 상황 앞에서 남북 대사관이 상부의 지시와 무관하게 공동으로 연출한 이 화해와 협력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구조기가 케냐의 몸바사 공항에 착륙하면서 남과 북은 냉전의 현실로 복귀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서를 급하게 조정하여 따로따로 내린 그들은 각각 남북 요원들의 마중을 받으며 외면한 채 헤어지는 것이다.

 

귀가했을 때, 가족들은 점심 식사 중이었다. 나는 말없이 밥을 떠넣고 서재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아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제야 나는 아직 영화의 자장(磁場)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의 충격을 이야기하지만, <모가디슈>는 그런 종류의 영화와는 좀 다르다. 그런데도 나는 귀가하고 나서야 영화에서 놓여났다. 영화가 끝날 때쯤 목에 차오르는 듯한 거북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협력에서 다시 현실로의 복귀하는 그 익숙한 경로가 못마땅해서였을까.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전 없는 남북관계가 거슬려서였을까.

 

살벌한 외교전과 무관하게 이듬해인 1991년 9월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참혹한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져 왔던 이념은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앞에선 허망했다. 1990년에 모가디슈에서 나눈 남북의 유대와 연대가 이후, 남북 화해와 협력의 출발이었다면, 30년 뒤 우리가 준비할 미래는 어때야 할지를 나는 새삼 곱씹고 있다.

 

 

2021. 8. 3. 낮달

 

 

"분명 '액션' 영환데 이 물기는 도대체 뭐지?"

[리뷰]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sta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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