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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성지가 된 ‘The JoongAng’, ‘순례자’로 붐비는 까닭

by 낮달2018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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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칼럼 ‘한 달 후 대한민국’의 놀랄 만한 ‘역주행’

▲5 년 전에 보도된 < 중앙일보 > 기사 ⓒ 중앙일보 갈무리

 

<중앙일보> 2017년 4월 13일 자 칼럼, 성지가 되다

 

▲ <중앙일보>는 언젠가부터 '더 중앙'이 됐다.

<중앙일보>, 아니 <The JoongAng>이 다시 오랜만에 ‘성지순례’의 대상, 즉 ‘성지(聖地)’로 떠올랐다. 그것도 5년 전에 낸 기사의 ‘역주행’이 눈부시다. 누리꾼들이 찍은 ‘성지’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기자가 자신의 고정란인 ‘이정재의 시시각각’에 쓴 칼럼 ‘한 달 후 대한민국’(2017.4.13.)이다.

 

누리꾼들이 쓰는 ‘성지’가 예루살렘이나 메카, 헤브론과 룸비니 따위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래도 정확하게 이 뜻을 풀이한 한 주간지 기사를 인용하여 살펴본다.

 

“성지(聖地)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여기선 종교적 뉘앙스는 거의 없고, ‘인터넷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처음 발생한 장소’를 뜻한다. 단지 의미만 있어서는 성지가 되기 어렵다. 성지가 새로 만들어낸 코드를 읽고 재해석한 누리꾼의 ‘반응’이 결합되어야 한다(따라서 댓글을 달 곳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인터넷 성지가 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반응을 확인하는 재미’에 누리꾼이 정기적으로 오가야 성지가 된다.”

     - 정용인, ‘성지순례는 계속된다, 빠밤!’(<주간경향> 2022.7.18.)

 

‘2017년 4월 13일’이 무슨 날인데, ‘한 달 후 대한민국’을 예측해야 했을까. 한 달 후인 5월 13일은, 19대 대선(5월 9일)과 당선자 취임(5월 10일)으로부터 사흘 후다. 당시 대선 상황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우세가 굳어지고 있었던 때다.

 

그런데 이 칼럼니스트는 새 대통령이 취임한 사흘 뒤를 한 편의 칼럼으로 예측했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나라가 결딴나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그렸다. 그는 그런 극단적인 예측이 마음에 걸렸는지, 글의 첫 부분에서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라고 전제하고서 글을 시작한다.

 

차기 대통령 취임 후 나라가 결딴나는 모습을 예측한 <중앙일보> 칼럼

 

그가 제시하는 한 달 후의 상황,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한국은 거의 나라가 결딴난 모습으로 그려진다.

 

(1) 시장은 망가지고,

(2) 주가(KOSPI)는 1000 밑으로 주저앉았고,

(3) 원화 값은 달러당 2000원을 넘기고,

(4) 사람들은 생수와 라면을 사재기하기 위해 마트로 몰려들고,

(5) 대북 폭격설(오늘 미국이 북한을 때린다)로 전쟁의 공포가 이날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급히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그는 아직 교체 전이다)을 찾아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전에 우리에게 통보해주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김관진은 잘라서 한 달 전부터 ‘문재인이 되면 통보 없이 때리고, 안철수가 되면 통보하고 때리고, 홍준표가 되면 상의하고 때린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한다.

 

또 문재인은 간신히 38%의 득표로 대통령이 됐고, 미국의 북폭설로 홍준표에게 20% 표가 몰리지 않았다면 안철수가 당선했을지도 모른다고도 썼다. 취임 일주일이 다 되도록 문재인은 트럼프의 축하 전화도 받지 못했다. 취임사에서 ‘남북 대화, 북한 방문, 개성공단 재개’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 트럼프를 자극했을 수도 있다고 문재인은 생각한다.

 

문재인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김관진은 단호히 즉각 대응 사격, 지휘부까지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은 안 된다. 대응 사격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시하는데, 김관진은 바로 사표를 던졌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도 동조했다.

 

그리고 상황은 “나라는 절체절명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문재인의 청와대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분노를 터뜨릴 뿐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상대를 향해.”로 끝난다. 그리고 필자는 문재인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는 “하필 절체절명의 한반도에 문재인과 안철수, 안보 신뢰 자산이 가장 부족한 두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판”이라면서 자기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다. 남은 한 달, 이들이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나라 운명이 갈릴 것이므로 두 사람(아마 문재인과 홍준표를 가리키는 듯)이 끝장 토론을 벌여보라고 주장한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이번 투표야말로 정말 국가 존망이 내 손에 달린 것일 수 있다”라는 비장한 톤으로 마감된다.

 

굳이 명념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의도로 이런 해괴망측한 글을 썼는지는 짐작할 수 있겠다. 숱한 누리꾼이 이 기사에 댓글로 이 칼럼니스트를 조롱했다. 물론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글의 성격상 그 예는 따로 들지 않는다.

 

“칼럼니스트라는 이름 달기에 쪽팔리지도 않냐?”

“이딴 글거고(쓰고?) 월급 받아요? 참 먹고살기 쉽구나.”

“이런 거지 같은 글 싸고도 칼럼이라고 돈 버는데… 자괴감 드네요.”

“99% 피땀 흘려 기사 쓰는 기자 동료들에게 똥칠하고 있는 당신. 참 대단하다.”

 

한 달 뒤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했지만, 물론, 그가 예측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명 컬럼은 사람들에게서 잊히어 갔다. 5년이 지나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이 2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 성지 순례기 . 5 년 전 칼럼에 붙은 댓글들 ⓒ 중앙일보 갈무리

5년 후인 현재의 정국을 예견한 칼럼이었다며 역주행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상회하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가 일어난 시점이다. 누리꾼들은 대중들이 까맣게 잊어버린 5년 전의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의 명칼럼을 찾아냈고 그게 1달이 아니라, 5년 후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라며 환호작약했다.

 

이상이 5년 전의 기사 하나로 <The JoongAng>이 성지로 등극하게 된 경위다. 7월 16일 밤 7시 40분 현재 이 글에 붙은 댓글은 5년 전 댓글 포함, 1086개다.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성지순례 후기를 읽어볼 수 있다. 굳이 해설을 추가할 이유가 없어, 금방 눈에 들어오는 댓글 몇 개만 소개하고 줄이기로 한다.

 

“정재씨 로또 번호 좀 찍어주세요. 5년 후에 사볼게요!”(sixp****)

“성지순례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예언가가 있었군요!”(sh62****)

“……그래도 오늘도 밥은 먹어라.”(aica****)

“이분 아직도 살아있습니까? 쪽팔려서 죽은 줄 알았는데”(corr****)

“5년의 오차가 있었지만, 정확한 예언에 감탄을 금치 못해서 댓글 남깁니다.”(cma0****)

“성지순례 왔다 덩대야 로또 좀 되게 해주라”(if-r****)

 

2022. 7.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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