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국립미술관 과천관) 관람기
서울이 “모든 욕망의 집결지”(김승옥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라 함은 서울이 그 욕망의 해소가 가능한 공간과 시설을 품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탐욕과 향락으로 이어지는 저열한 욕망 따위는 내버려 두자. 시민들은 일상의 권역 안에 자리 잡은 박물관, 미술관, 극장, 음악관, 그리고 각종 기념관 등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여가를 즐길 수 있다. ‘도민’이나, ‘군민’, 또는 소도시의 ‘유사(?) 시민’으로 불리는 지방 사람들은 도시에 그런 편익 시설이 있다는 걸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술관과 국립극장… 시골 사람의 서울 문화생활 맛보기
서울에 드나들면서 아들애의 집에 묵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먼저 종묘와 창덕궁 등 가 보지 못한 고궁을 둘러보았었다. 올해 5월에 아이는 우리 내외를 삼성 리움미술관에, 진료차 혼자 상경한 7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데려갔고, 8월에는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을 함께 관람했다. 아이는 시골뜨기 아비에게 수도 서울의 시민 문화생활의 일단을 맛보기 해 준 셈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10일 연휴 때에는 아이는 가족들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MMCA(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아래 <특별전>)로 이끌었다. <특별전>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샤갈, 달리, 피사로, 모네, 고갱, 르누아르, 미로의 회화 7점과 피카소의 도자(陶瓷) 90점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올 9월 21일에 개막하여 내년 2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무료다. 그러나 예약은 15일 전에 이루어지고, 하루 8회(10:00~18:00), 회차당 관람 인원 70명으로 제한되었다니 어리바리한 우리라면 예약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휴의 마지막 날, 과천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이 특별전에 ‘모네와 피카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거장들이 맺었던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거장들은 미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사제, 선후배, 혹은 동료로 만나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 주며 20세기 서양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간 이들”(팸플릿, 아래도 같음)이었다.
난생처음 찾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이건희 특별전>
그러나 이 화가들이 함께 나눈 우정과 예술의 서사는 전시된 작품들과 직접 관계가 없다. 피사로와 고갱은 사제 사이였고, 모네와 르누아르는 인상주의로 묶이고, 피카소, 미로, 달리 등 파리의 스페인 화가들은 ‘에콜 드 파리’로 불리었으며, 피카소와 샤갈은 도자기를 함께 만들던 사이였다. 이러한 관계는 이들 그림의 어떤 경향성과 이어질 수는 있지만, 일반 아마추어 관람객들이 그 관계의 맥락을 찾아내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도자는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조형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에서 피카소는 접시나 컵 같은 간단한 생활 도자기를 만들다가 점점 복잡한 화병이나 주전자로 옮겨갔고, 손잡이 등을 동물의 머리 부분처럼 추상적인 형상으로 만들어갔다. 그는 도자로 인간, 동물, 자연이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1원형 전시실에서 베풀어진 전시를 관람하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우리는 말로만 듣던 이들 유럽 거장들의 그림 원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지만, 그것으로 감동했거나, 지면으로 보던 것과 다른 어떤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다. 흔치 않은 기회를 맞아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평균적인 교양과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2원형 전시실 원형정원에서 전시되는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를 우리는 흥미롭게 관람했다. 그것은 “자연 속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반영하여 자연과 조화하는 예술 형식인 ‘정원’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러나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가 선보인 이 전시를 우리는 그냥 전시실 중앙의, 천장이 트여 하늘이 바라보이는 야외 공간을 꽃과 나무로 장식한 휴게실인가 여겼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시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풀과 나무의 정원과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다다익선>까지
6전시실에서 전시되는 <다다익선:즐거운 협연>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 소장품인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다시 켜는 것을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였다. <다다익선>은 과천관 로비에 설치된 나선형 비디오 타워이다.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대의 TV 수상기가 7.5m 원형 기단에 18.5m 높이의 5층 탑처럼 세워진 형태다.
전시는 “<다다익선>의 제작 배경과 그 뒤 현재까지 작품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카이브, 그의 작품세계와 관련 자료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난 7월 서울관에서 관람한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등에서 확인했듯이 영상 미디어 작품은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정치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주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인식으로 작품에 다가가지 않는 한, 미디어아트는 오히려 작가와 대중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나 하는 느낌이 있긴 하다. 그러나 비록 잠깐씩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는 데 그치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전시 <다다익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과천관 옥상에서 관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등을 바라보면서 전시회를 관람한 소감을 나누었다. 좋네요. 잘은 몰라도……. 거장들 작품의 진가는 전문가들이 잘 가르쳐 주겠지. 우리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세계적 작품을 구경한 거로 족하지. 그냥, 이 숲속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와 전시를 본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등등.
전시 30분 전부터 전시관 앞에 줄을 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개중에는 미술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흥미와 호기심, 평균적인 시민의 시선으로 전시회를 바라보는 이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전시회와 음악회는, 연극과 뮤지컬 공연은 이들 ‘대중의 참여’로 빛나고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하며 도시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것이었다.
서울의 보편적 일상이 된 ‘문화 소비’, 그리고 소외된 ‘지방’
전시회에서 유명 작품을 관람했다고 해서 당장 심미안이나, 예술적 안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예술을 바라보는 인식과 교양이 평준화되어가고, 그런 문화 소비가 보편적인 일상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지식인들에게 독점된 것이 아닌, 시민의 기본적 욕구를 실현하는 일상이 됨으로써, 그 사회의 문화 수준도 일정하게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 영상 작품의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수상 소식을 들으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한 김구 선생을 떠올린 뜻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냉전으로 회귀하는 듯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산 무기가 ‘케이(k) 방산’으로 떠오르는 것보다 음악과 영화, 음식 등 ‘케이(K) 문화(컬쳐)’로 주목받는 것이 더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아이가 “구미에는 시에서 세운 미술관이 없지요?”하고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다. 인구 기준 경상북도의 두 번째 도시 구미에는 아직 미술관이 없다. 1960년대부터 조성된 국가산업공단 덕분에 도시 규모를 키워 온 도시엔 2020년에 문을 연 성리학역사관이 유일하게 공립 박물관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세 차례나 연임한 보수 지역 정당 출신의 전 전임 시장이 추진한 박정희 기념사업만 차고 넘쳤다. 그래서 그 결과는 ‘애물단지’(879억 들여 만든 애물단지 ‘새마을 공원’… 이게 끝이 아니다)거나 역사가 빠진 ‘역사 자료관’(159억짜리 ‘박정희 역사 자료관’에 역사가 빠졌다)일 뿐이다.
연초에 금오산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볼 기회가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가늠하다가 문득 시청 등 공공기관과 아파트, 비슷한 규격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원룸촌을 빼면 시가지에는 변변한 공적 건축물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것은 공단을 배경으로 단기간에 규모를 키웠지만, 이 도시가 규모에 걸맞은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의 쓰린 방증이었다.
외형이 아니라, 내용을 갖춘 문화로 성장하지 않는 한, 도시는 천박한 콘크리트 숲에 불과할 뿐이다. 그게 어찌 구미만의 문제랴. 국립미술관을 떠나면서 나는 도시 규모에 걸맞은 문화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소외된 숱한 지방 도시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2022. 10.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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