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 제정 ‘이육사 기자상’, 첫 수상자에 동아일보 김순덕 기자 선정에 부쳐
지난 17일,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회’는 경북 안동에서 제1회 이육사 기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의도했는진 모르지만, 그날은 1944년 육사의 순국일(1.16.)의 다음 날이다. 그날, 갓 마흔이 된 의열단원 이육사(1904~1944·본명 이원록) 시인은 베이징 일본대사관의 지하 감옥에서 1년 반 뒤에 올 해방을 맞지 못하고 저항과 투옥으로 점철된 생애를 마감했다. [관련 글 : [순국] 이육사, 베이징의 지하 감옥에서 지다]
육사 순국일 다음날, 김순덕 ‘이육사 기자상’ 수상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1930년대 <조선일보>와 <중외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기자정신을 잇기 위한 ‘이육사 기자상’ 수상자를 공모했다. 현재 신문·방송·인터넷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기자나 PD, 언론발전에 공로를 세운 전직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이 상의 시상금은 2천만 원.
심사위원회는 대구 경북지역 출신 중견 언론인 7인으로 꾸려졌으며, 초대 심사위원장은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매일신문 논설위원실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홍종흠(79)씨가 선임됐다. 홍 위원장은 “기자 이육사의 투철한 저널리즘 정신에 걸맞은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심사위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었다.
‘육사의 행적 기림’과 ‘약산 폄훼’,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옹호’ 사이
그러나 “시대를 진단하고 민의를 반영해 정도(正道)를 지킨 기자 이육사의 의로운 행적을 기리고자”(발기인인 권동순 전 매일신문 기자) 제정한 이 기자상은 첫 번째 수상자로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를 선정해 논란을 빚고 있다. 평소 ‘친일 반민족 행위자’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옹호해 온 김순덕 기자는 올 새해 벽두(1.5.)에 발표한 칼럼(‘문재명 세력’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없다)에서도 비슷한 태도로 드러냈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리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연설했다. 금성출판사 자습서로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해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에 대해 “마음속으로나마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했던 반면, 2020년 7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6·25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홈페이지 정보란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하게 했던 대통령이었다.
-위 칼럼 중에서
김순덕이 폄훼한 약산 김원봉이 누구였던가. 이육사가 가입한 의열단을 설립한 의백(義伯, 단장)이었고, 1933년 육사가 1기생으로 수료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교장이었다. 그는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고, 임시정부의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다.
약산은 해방 후 좌우 연합전선 구축에 애썼으나 여운형이 암살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본격화되자 월북하여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그 뒤 북한에서 국가검열상·내각 노동상·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숙청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서훈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 됐다. [관련 글 :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 출범/ ‘광야’, 목놓아 부를 수 없는 노래]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김순덕의 ‘민주주의’
김순덕은 6·25 전쟁영웅 백선엽을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만들고, 북한 정권 수립에 이바지한 김원봉을 칭송한 점을 거론한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규정하고, “그 ‘문재명 세력’이 감히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지금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가 옹호한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는 어느 수준인지 따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옹호해 마지않는 백선엽은 누구인가. 백선엽은 전쟁 초기 전세를 뒤집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1950)’ 등 여러 차례 승전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이른바 ‘전쟁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당시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고자 설립된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면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중국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 이는 대통령 직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 인명사전>이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한 이유다. [관련 글 :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 독립군 토벌부대 출신 군인은 어떻게 창군 주역이 됐나]
그런 김순덕에게 ‘이육사’의 ‘의로운 행적’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그는 ‘시대를 진단하고 민의를 반영해 정도를 지킨
기자’가 맞는가.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회가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좀 거시기하다.
“권력을 향해 촌철살인의 정론 직필을 가감 없이 구사해 오면서 투철한 기자정신을 충실하게 지켜왔다. (…)칼럼을 통하여 시대정신에 부합된 우리 시대 언론의 지표를 명확하게 제시, 이육사의 애국적 기자정신을 오늘날에 다시 구현해 냈다.”
김순덕의 ‘촌철살인’, 혹은 ‘정론 직필’
권력을 향한 촌철살인? 어느 정치평론가의 언급처럼, 그 촌철살인은 전임 정부에게만 한정된다. 그가 ‘문재명 세력’이 현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는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그것을 증빙하는 셈이다. 어떤 세력에는 관대하고 다른 세력에는 추상같아서 대상에 따라 잣대가 뒤바뀌는 정론 직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순덕 같은 이에게 기자상을 주는 건 주는 사람이나 단체의 자유이긴 하다. 그러나 거기 어떻게 ‘감히’(!) 이육사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가. 대구 경북 출신 언론인이라고 해서,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이름을 아무 데나 빌려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유족이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첫 수상자부터 논란을 부른 선정까지 허용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언론인 김순덕에겐 이육사 기자상이 영광스럽겠지만, 편협한 이념과 냉전 논리에 매몰되어 역사를 재단하는 보수 언론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상을 준 사실은 육사에게는 치욕이지 않을는지. 논란 앞에서 “칼럼 한두 편 가지고 논의를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언론 활동 전반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라고 한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장의 해명도 그 스스로 정당성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다 내가 사는 지역이 보수 정당의 아성이 되고, 그들만의 잔치로 새고 지게 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나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정론 직필을 지향하는 언론마저 그 우편향의 정치 체제에 투항해 버린다면, 역사는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2023. 1.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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