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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민중은 쫄지 않았다!

by 낮달2018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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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한미FTA 원천무효! 대구경북민중대회

어제 오후 2시 30분부터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2011 대구경북 민중대회’가 열렸다. ‘한미FTA 원천무효! 이명박 퇴진! 한나라당 해체!’를 외치는 이 집회에 지역의 시민조직과 함께 참여했다. 행진을 포함 3시간 남짓 베풀어진 대회의 이모저모를 스케치했다.

 

# 단풍과 깃발

 

대구는 더위가 유명하지만 사실 추위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경북 북부지방에 옮아와 살면서 대구가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국채보상기념공원 주변에 단풍은 바야흐로 지고 있긴 했지만, 그 화사한 절정의 기품이 상기도 남아 있었다.

 

일찍 서리가 내리는 북부지방에서 흔히 보는 칙칙한 적갈색이 아니다. 아주 밝고 따뜻한 붉은 빛 단풍에 북부에서 온 촌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도의 차가 있지만, 경북 북부는 단풍은 물론이거니와 나뭇잎도 모두 떨어지고 없다. 그런데 대구에는 아직도 은행나무 가로수도 아직 넉넉하게 잎을 달고 있다. 우리는 이 계절의 간극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집회에는 당연히 깃발이 넘친다. 그것은 참가 단체나 조직의 표상이고, 그걸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며 구성원들을 모으는 표지 노릇을 한다. 유난히 농민회 깃발이 많았다. 한미FTA가 영세한 농축산업에 직격탄을 날리는 협정인 것이다.

 

안동·의성·영주·상주·경산·청송 등 농민회 깃발이 아직도 푸른빛이 남은 은행나무 가로수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였다. 그러나 그 힘찬 움직임과 ‘민족농업 사수’ 따위의 구호와는 반대로 나는 비애를 느꼈다. ‘농자천하지대본’은 고사하고 근대화 과정에서부터 농업은 늘 희생양 노릇을 하면서 쇠잔해 온 것이다.

 

“저놈들 개 팔자가 우리보다 훨씬 낫네그려.”

 

행진 가운데 반월당 부근의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면서 지역 농민회 원로의 혼잣말에 그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화려한 쇼윈도에 전시된 갖가지 빛깔과 모양의 강아지들은 바야흐로 게으르게 몸을 눕히고 밤을 맞고 있었다.

 

# 쫄지 마!

 

‘쫄다’는 “(속되게) 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는 뜻의 동사 ‘졸다’를 힘주어 발음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 ‘짜장면’이 잘못이었듯 이 말은 표준어 반열에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인가. 사람들은 아무도 ‘졸다’고 하지 않는다.

 

‘쫄다’가 부상한 것은 우리 시대의 분위기 탓일 거다. 나꼼수의 구성원들이 쓰게 되면서 이 말은 현 정부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겁박하는 상황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이날 집회에도 ‘쫄다’가 등장했다. 그렇다. 이제 ‘나꼼수’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우리 시대의 트렌드 같다.

 

“쫄지 말고 모여보자! FTA 폐기된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겁박들은 서민들을 ‘쫄게’ 만들었다. 산책하듯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기소된 사람이 천 수백 명이었고, 단지 동시대인으로서 연대 의식으로 희망 버스를 탔던 사람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오는 시대다. ‘쫄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쫄지 말고 뭉치면’ 사람들의 희망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두고 보자 선량들아!

 

개인이 곧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을 흔히 ‘선량(選良)’이라고 부른다. ‘뛰어난 인물을 뽑음. 또는 그렇게 뽑힌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주민들의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선량들이 지역 주민들의 여론 따위에 신경을 쓰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미FTA 비준안은 여당과 일부 보수야당 의원들 151명의 찬성으로 날치기 처리되었다. <경향신문>이 1면에 이들의 사진을 실어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지역 주민들이 ‘두고 보자’고 하는 것은 다음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때문이다.

 

이날 집회에도 이들에 대한 응징을 공언하는 손팻말(피켓)이 곳곳에 보였다. 대도시인 대구 지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북의 농업 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이들 선량이 찬성표를 던진 배짱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욕을 하다가도 투표소에만 가면 지역을 인질로 삼은 정당에다 붓두껍을 누르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사람들은 공언대로 다음 총선에서 과연 이들을 응징할 수 있을까.

 

# 상여…, ‘죽음’만이 ‘죽음’은 아니다

 

본 대회가 끝나고 행진이 진행되면서 민중대회장 한편에 모셔져 있던 상여가 맨 앞으로 나왔다. 대회 주빈들이 상복 차림으로 펼침막을 앞세우고 상여를 선도했다. 집회에 상여나 상복, 만장 등이 등장하는 것은 익숙하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죽음’이고 그에 준하는 ‘결기’다.

 

근조 민주주의,

근조 농업 어업 축산업,

근조 영세 자영업,

근조 민중 복지…….

근조 한나라당,

 

여러 개의 상장(喪章)이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날치기 기습 처리로 민주주의가, 한미FTA 비준으로 농어업과 축산업과 영세 자영업이, 그리고 민중 복지가 조종을 올린 것이다. 이들은 모두 민중들이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상장의 의미는 좀 다르다. 이는 한미FTA 비준을 기습 처리한 한나라당을 ‘죽음’과 같은 무게로 응징하겠다는 결의다. 이미 보도된 대로 대통령의 영정을 준비한 것도 같은 이유다.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는 꽤 까칠한 금기다. 사람 이름을 붉은 글씨로 쓰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권력의 영정을 준비한 것은 이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 준다.

 

상여는 행진의 마지막 구간인 반월당 네거리 부근에서 불태워졌다. 불을 통한 정화(淨化)의식일까. 죽은 농어업과 축산업을, 혹은 민중 복지와 민주주의를 불태움으로써 그것을 재생과 부활의 제의로 삼은 것일까. 그러나 어둠살이 내리는 번화가 네거리, 사위어가는 불길과 흩어지는 연기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농민들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는 마음은 절대 편치 않았다.

 

# 불신과 기만의 이름들…

 

 

“1% 부자들의 꼼수! 한미FTA 폐기!”

 

이날 집회에서 한 여성이 들고 있는 구호가 눈길을 끌었다. 이 구호는 ‘99% 민중의 저항으로 저지하자’는 구호와 짝을 이룬다. 어느 여당 의원은 ‘한미FTA를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지만 그것이 보장한다는 장밋빛 미래가 결코 민중들의 것이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바보 천치처럼 죽어가는 농어업을 놓지 못하고 살지만, 이들은 알 것은 다 안다.

 

그래서일까. 행진 내내 선도자와 대중들 간의 선후창은 정부의 선전과 이에 대한 대중들의 야유와 조롱으로 계속되었다. 선도자가 ‘한미FTA의 긍정적 효과’를 하나씩 뇌면 대중들이 ‘지랄하고 자빠졌네’라 응수하는 방식이다.

 

“한미FTA로 지역경제 살려낸다?”

- 지랄하고 자빠졌네.

“한미FTA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 지랄하고 자빠졌네.

 

비장감 도는 집회와 시위에 해학을 가미한 형식이지만 그 본질은 정부의 정책과 홍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다. 단순한 불신이 아니라 거기에는 짓밟히는 이들만의 ‘한’과 ‘설움’이 실려 있다. 편도 차선을 따라 진행되는 행진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평을 해대는 연도의 시민들에게 그 한과 설움은 단순히 남의 것이기만 할까.

 

 

 

2011. 12.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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