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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굴욕’과 ‘훈장’ 사이

by 낮달2018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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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자유무역협정) 타결

 

지난 3일, 한미FTA가 타결되었다. 타결의 내용은 보도된 대로다. 보수언론들은 ‘주고받은 협상’이었다고 물을 탔고 진보언론을 비롯한 일부 보수지들은 ‘이익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다분히 서로 다른 이 두 보도에서 객관적인 사실은 두 개다. 하나는 협상을 ‘주고받았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챙긴 이익’이 있다는 사실이다.

 

협상 결과, ‘굴욕’과 ‘훈장’ 사이

 

‘이익의 균형’이란 이 협상의 당사국이 각각 챙긴 이익을 더하고 빼면 나오는 지극히 단순한 셈법이다. 물론 일부 내용은 단순히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이익의 과부족을 나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두 시각의 거리는 이렇듯 너무 멀다.

 

이 거리는 여야 정치권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환영’ 일색의 반응을 보였고, 자유선진당까지 포함한 야당은 ‘굴욕과 배신’의 협상이라고 ‘규탄’해 마지않았다. 여야의, 극단에 이르는 상반된 평가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괴물의 정체가 자못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어제는 정말 국민 모두가 굴욕과 배신을 느끼고 수치를 느낀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FTA 협정을 폐기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부시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미국과 쇠고기 졸속 협상을 해서 국민의 분노를 사고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팔아먹더니 이제 국민의 모든 자존심을 내놨다.

이런 한미FTA는 결코 한미동맹에도, 우호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 장래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

 

“간도 쓸개도 빼준 굴욕 외교의 결정판이다. 국내 시장은 활짝 열고, 미국 시장은 빗장을 걸어 잠근 불평등 ‘퍼주기’ 협상을 단호히 폐기해야 한다.”

-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이런 훌륭한 업적을 쌓은 정부와 공무원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줘도 부족한 데 장애 협상이라고 야당이 말하고 있어 참으로 황당하다.

우리나라가 GDP 16조4천억 달러인 세계 최대시장인 EU와 협정체결을 성공시켰고 14조3천억 달러인 미국과도 협정체결을 성공시킴으로써 세계 양대 시장인 EU와 미국 시장의 수입 장벽을 허물고 경제영토를 가장 활발히 확장하는 첫 번째 국가로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이번 합의는 한미 양국의 이익 균형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자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자동차 부분의 일부 양보를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고 있는데, 현지 생산이 늘고 있는 우리 자동차 생산이나 관세 부품 등을 고려할 때 그리 우려할 부분은 아니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야당이 3년간 끌어온 FTA에 대해 비준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우리 내부에서 흠을 잡고 반대할 때 다른 경쟁국들은 무역전쟁에 앞서가고 있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논란의 중심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있다. 그는 2007년 협정문에서 ‘일점 일획도 고칠 수 없다’라고 하던 협정문을 ‘대폭’ 그것도 미국의 요구대로 고치고 귀국했다. 그는 여당으로부터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공무원’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줘도’ 마땅한 애국자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안보정국을 틈타서 국민의 환경주권, 안전 주권, 국익을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불평등 굴욕적 조약’에 합의한 당사자로 그는 야당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굴욕 협상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께 사과하고 협상 당사자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도 재협상 결과에 대한 비판 여론이 따가웠던가. 그는 이와 관련, “시기적으로 이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물러나게 되면 해병대라도 지원하려고 한다. 나이 들고 힘이 없어 총칼은 못 지더라도 밥이라도 짓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구설에 오르고 있다.

 

‘국리’와 ‘민복’은 상충하지 않는다

 

요즘 정부 여당에선 ‘자원입대’가 유행이고 화두인 모양이다. 병역 미필의 안상수 대표는 “전쟁이 나면 군대에 가겠다”라고 했다가 야당으로부터 “영장 나왔을 때는 안 가고 늙어가지고 웬 군대?”라는 비아냥을 당해야 했다. 뜬금없이 ‘해병대 지원’을 해서 ‘취사병’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김 본부장은 또 뭔가 말이다.

 

‘국으로 구경만 하는 건 국민’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침묵은 결코 문제를 판단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늘 ‘국민의 뜻’을 뇌면서도 정작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건 어느 쪽일까. ‘국민이 두렵다’라는 말은 인사치레던가. 늘 ‘국민의 뜻’을 두렵게 여긴다면서도 정작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말도 많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목적이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있다는 사실은 물으나 마나다.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은 상충하지 않는다. ‘나라’의 주인은 곧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나 국민은 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의 문제에 극단을 나누고 있는가.

 

한미FTA만이 아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뜻은 지금껏 드러난 대로 멀리 있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두렵게 여기는’ 건 고사하고 귀담아들으려는 의지도 없다는 데 있다. 파당의 이해나 지지계급의 손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해와 나라의 미래가 모든 정책적 판단과 집행의 잣대여야 하지 않는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굴욕’과 ‘배신’의 협상을 주도한 과실로 ‘해임’될지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해임되든 훈장을 받든 한미FTA의 과실을 고스란히 짐 지고 가야 하는 것은 전체 국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10. 12.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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